최근 점심시간을 이용해 병원에서 각종 영양주사를 맞는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주사 종류는 마늘주사, 신데렐라주사, 백옥주사 등 용도에 따라 다양하다. 마케팅회사에 근무하는 강모 씨(30)는 “점심시간이 되면 불편한 직장상사 혹은 동료와 함께 밥을 먹기보다는 혼자 끼니를 간단히 해결한 뒤 병원에 가 영양주사를 맞는다”며 “시간도 알뜰하게 활용하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영양주사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전날 과음을 했거나 야근을 한 직장인들 사이에서 포도당 수액을 맞는 게 유행이었다. 이는 접대나 회식이 많은 영업사원들의 피로개선 방법 중 하나였다. 일본에서는 이미 10년전부터 ‘덴테키(물방울) 10’이라고 불리는 ‘10분 링거서비스’가 하나의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포도당 주사가 인기를 끌자 몇 년 전부터 피부과와 성형외과 등이 수액에 비타민 등 각종 성분을 넣어 팔기 시작했다.
여러 비타민을 섞어 만든 이른바 칵테일주사는 1970년대 미국 내과 의사인 존 마이어스 박사가 수액에 마그네슘·칼슘·비타민B와 C를 섞어 혈관에 주입한 게 시초다. 만성피로·알레르기·천식·두통·관절통·우울증 증상 개선에 주로 사용됐다. 하지만 2009년 미국 예일대 의대 예방연구센터가 성인 34명을 대상으로 칵테일 주사의 근육통 치료 효과를 살펴본 결과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럼에도 각종 비타민주사의 인기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것 중 마늘주사는 귀족주사, 보혈주사로도 불리우며 피로 개선 및 숙취 해소용으로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다. 몸에 좋은 마늘을 농축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 정체는 비타민B1이다. 비타민B1을 주사하는 과정에서 코에서 잠시 마늘냄새가 나는 느낌이 들어 마늘주사로 명명됐다.
비타민B1은 운동 후 근육피로를 유발하는 젖산을 에너지로 전환시키고, 심장근육의 수축력을 강화하며, 심장박동수 증가를 억제해 피로 개선 및 운동효율 향상에 도움된다. 1960년대 일본에서는 마늘의 알리티아민 성분에서 유래한 푸르설티아민 주사가 개발돼 운동선수에게 자주 사용돼왔다. 마늘주사에서 마늘 냄새가 나는 것도 푸르설티아민 성분 때문이다.
비타민B1은 대부분 체내에 들어온 직후 수분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과잉섭취의 위험이 비교적 적지만 주사 등을 통해 필요 이상으로 주입할 경우 혈관통, 구역 등 부작용이 동반되기도 한다. Y내과 원장은 “마늘주사는 특별한 부작용을 유발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한 번에 5만원씩을 주면서 일부러 맞을 필요는 없다”며 “유난히 피곤하거나 숙취가 심할 때 한번씩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약처럼 중독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차라리 잠을 푹자고 밥만 제때 먹어도 주사를 맞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타민C·D 주사도 직장인 사이에서 인기다. 고용량 비타민C 주사는 한 번에 비타민C 1만㎎을 주입한다. 약국에서 팔리는 먹는 비타민C 용량이 1000㎎임을 감안하면 알약 10개를 한꺼번에 복용하는 것과 같다. 원래 이 주사는 암 환자를 대상으로 처방됐다. 항암치료 전날과 다음날 비타민C 주사를 맞으면 구토, 손·발저림, 피로감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몇년 전부터는 이 주사가 피로물질 제거 주사로 더 부각되면서 일반인들도 많이 찾는다.
하지만 몸에 좋은 비타민이라도 과하면 각종 부작용을 낳는다. 박현아 인제대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선행 연구결과 비타민C는 강력한 항산화작용으로 산화스트레스를 줄이고 감기 증상을 성인은 하루, 소아는 4일 정도 단축시키는 데 도움되지만 굳이 감기 예방과 치료를 위해 따로 비타민C 섭취를 권장할 필요는 없다는 게 의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라며 “한국인의 비타민C 하루섭취권장량은 100㎎이므로 비타민C를 그램 단위로 복용하면 권장량보다 수십 배에서 수백 배를 더 많이 먹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너무 많은 양의 비타민C를 섭취하게 되면 흡수되지 못한 비타민C가 장내에 남아 메스꺼움, 복부팽만 등이 나타나고 신장에 결석이 생길 수 있다”며 “특히 위장이나 신장이 좋지 않은 사람은 고용량의 비타민C 섭취를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타민D 주사는 야외활동이 부족해 비타민D 결핍이 심각한 환자에게 처방된다. 골다공증 환자들은 칼슘제를 복용해야 되는데 비타민D가 부족하면 칼슘 흡수가 안 되기 때문이다. 개원가에서는 한국인 대다수가 비타민D 결핍 증세가 있다며 노인, 성장기 청소년, 출산 후 여성, 직장인 등에게 비타민D 주사를 권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비타민D는 과잉섭취할 경우 특히 위험하다. 영유아가 비타민D를 과량 섭취할 경우 정신발달장애, 혈관수축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과량의 비타민D 섭취는 고칼슘혈증과 고칼슘뇨증을 일으키고 연조직에 칼슘을 축적시킬 뿐 아니라 신장과 심혈관계를 손상시킨다. 비타민D중독 증상으로 식욕부진, 메스꺼움, 근력약화, 두통, 신장결석, 관절염, 동맥경화, 고혈압 등이 있다.
임승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현대인의 비타민D 부족증은 염려할 수준이지만 무분별한 과잉섭취는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며 “굳이 보충제를 복용하고 싶다면 하루에 1~2알로 제한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낙농제품 등 비타민D가 포함된 식이를 섭취하고 하루 15~20분 정도 일정시간 햇볕을 쬐는 게 보충제 복용보다 건강 유지에 도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예인들이 자주 맞는 것으로 알려진 백옥 주사는 노화예방과 피부미용을 목적으로 개발됐다. 가수 비욘세가 이 주사를 맞고 피부가 하얗게 됐다고 해서 ‘비욘세 주사’로도 불린다. 활성산소를 억제·제거하는 글루타티온에 비타민과 무기질 등이 배합됐다. 하지만 잘못 사용할 경우 백반증, 저색소증, 신장기능 이상 등 각종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20~30대 여성에게 인기인 ‘신데렐라 주사’는 주 성분인 치옥트산이 항산화 작용을 일으켜 피부색을 밝게 만들어준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많은 병원들이 예비신부 피부관리 코스에 이 주사를 넣어 고가에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적은 양의 치옥트산을 알코올과 함께 신체에 주입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보고된 상태다.
개원가가 인터넷 등을 통해 영양주사를 전방위적으로 홍보하는 이유는 대부분 비보험이어서 병원 매출 증대에 도움되고 특별한 의료기술 없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격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한 번에 5만~10만원 선으로 다소 비싼 편이지만 10회 정기권이 판매될 정도로 인기다. 회당 5만원 짜리 주사시술을 10회 맞으면 한번은 무료로 제공하는 방식의 할인서비스도 성행이다.
피부과학회 관계자는 “주사제 특성상 한두번 맞아서는 효과가 없기 때문에 1주일에 2~3번씩 적게는 총 5회, 많게는 20회까지 맞는 것을 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사를 맞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60분으로 점심시간에 짬을 내 이용하기 적합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무엇이 적합한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영양주사를 맞다가는 각종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다.
한 개원의는 “평범한 진료만으로는 병원 경영이 어려운 현실에서 동료 의사들의 이런 행태가 어느 정도 이해되긴 하지만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한다”며 “근거 없는 주사 투여는 의학적 지식이 없는 소비자를 기만하는 비양심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