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과도한 스트레스와 환경호르몬의 증가는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탄생마저 어렵게 만든다. 지난해 기준 난임 진단자는 21만5000명으로 5년새 3만8000명이 늘었으며, 이런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이를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은 부부의 발길을 난임센터로 돌리게 한다. 현재 국내 난임치료는 차의과학대 차병원과 제일병원이 선도하고 있으며, 오는 11월 차병원이 강북 진출을 예고하면서 두 병원간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차병원 관계자는 “오는 11월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옛 대우 본사) 빌딩 2~3층에 연면적 5000㎡ 규모로 난임센터를 개소한다”고 밝혔다. 난임치료센터에는 10개의 전문진료실, 시술실, 연구실, 난자와 정자를 보관하는 냉동보관실 등이 들어선다.
그동안 강북은 제일병원, 강남은 차병원이 난임치료를 양분하고 있던 형국이라 차병원의 이번 강북 진출에 의료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게다가 서울역 바로 인근에 위치해 KTX나 공항철도를 이용, 지방환자의 내원도 수월해져 서울 및 수도권은 물론 지방의 난임치료 시스템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난임치료로 수익을 거둬왔던 강북지역 중소 병·의원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현재 난임치료는 차병원과 제일병원을 제외하면 여성의원이나 한의원 등 중소 병·의원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다. 그나마도 대부분 강남 지역에 몰려 있어 강북지역은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 치열하다. 하지만 차병원의 진출로 강북지역도 난임치료의 ‘레드오션’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여성의원 관계자는 “인근에 이미 제일병원이 있었지만 병원을 운영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는데, 차병원의 난임센터 개소 소식을 듣고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막강한 자금력과 브랜드 인지도를 갖춘 차병원이 들어서면 많은 수의 환자가 병원을 옮기게 되고, 이는 병원간 규모의 경쟁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결국 제일병원과 차병원이라는 고래들의 싸움에 새우등만 터지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두 병원 간 경쟁은 올해 초 차병원이 제일병원의 핵심 의료진들을 영입하며 시작됐다. 지난 1월 차병원은 강인수·궁미경·김진영 산부인과 교수가 진료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세 교수는 20년 이상 난임치료 임상 및 연구에 집중해 온 베테랑이다. 강 교수와 김 교수는 시험관아기시술 단계 전 PGD(착상 전 유전진단검사)를 전문적으로 시행해왔다. PGD는 배아 착상 전 단계에서 수정란의 유전질환을 밝혀 염색체 이상 등으로 인한 반복적 유산을 막고 계획적인 임신을 가능케 한다. 궁미경 교수는 난소기능부전 및 반복적 착상실패 등 난치성 난임 치료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한 병원에서 세 명의 의료진이 동시에 경쟁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국내 난임치료를 선도해왔던 제일병원 입장에서는 차병원에게 핵심 의료진을 뺏긴 게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료계 관계자들은 난임치료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제일병원이 차병원과의 경쟁에서 쉽게 밀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차병원의 이미지가 고급스러움이라면 제일병원은 여성친화적이고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강남이나 분당지역에서 성공을 거둔 차병원의 럭셔리한 이미지가 강북에서도 통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제일병원은 난임치료 권위자인 서주태 비뇨기과 교수(대한생식의학회 회장)와 양광문 산부인과 교수 등 의료진이 여전히 건재하고, 해외 환자 영입에 박차를 가하는 등 나름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제일병원 아이소망센터를 방문한 외국인 난임 환자는 2012년 3872명에서 2014년 8250명(연인원)으로 크게 늘었으며 국적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미국 등 다양하다.
제일병원 관계자는 “경쟁병원이 늘었다고 해서 당장 환자가 줄거나 병원 운영에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50년간 쌓아온 임상 노하우를 바탕으로 묵묵히 환자들을 진료하면 어차피 환자는 자연스럽게 우리병원을 찾게 돼 있다”고 말했다.
난임은 피임하지 않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한 지 1년이 지났는데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35세 이상 여성의 경우 6개월간 임신이 안될 때 난임을 의심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12년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조사’에 따르면 피임 경험이 없는 20∼44세 기혼 여성 969명 중 32.3%가 ‘임신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즉 가임기 기혼 여성 3명 중 1명이 난임을 경험한 셈이다. 또 국내 가임기 부부 7쌍 중 1쌍 정도는 난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난임의 원인이 전부 여성에게만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난임은 어느 한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난임의 발병 원인은 여성측 요인 약 45%, 남성측 요인 약 35%, 양측 요인 10%, 원인불명은 약 10% 정도라고 설명한다.
보사연은 지난달 10일 연도별 난임 진단 대상자 수를 조사한 결과 난임 남성이 2004년 2만2166명에서 2011년 4만199명으로 약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난임 남성 수는 2005년부터 꾸준히 늘었으며, 2010년의 경우 전년 대비 27.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난임 진단을 받은 남성 3명 중 2명은 치료를 포기했다는 점이다. 37.9%는 치료를 아예 받지 않았으며, 25%는 중간에 치료를 중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