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각종 미디어를 통해 렌틸콩, 퀴노아, 병아리콩(칙피) 등 수입산 ‘슈퍼곡물’이 건강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관련 효능을 설명하는 인터넷 쇼핑 광고가 우후죽순으로 늘었고 만병통치약인 듯 설명하는 광고도 적잖다. 일부 쇼핑몰에서는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지방대사 촉진, 노화방지, 갱년기 우울증 완화, 항암 효과 등 마치 의약품 수준의 효과가 있다며 과다선전을 하고 있다.
슈퍼곡물에 대한 관심은 소비까지 이어지고 있다. 관세청이 조사한 지난해 렌틸콩 수입량은 약 1만2196t로 전년 대비 약 33배(3232%)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퀴노아는 2012년까지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약 111t이 들어왔으며 병아리콩은 1487t로 2013년보다 약 5배 수입량이 늘었다. 슈퍼곡물의 수입량은 1년전에 비해 적게는 2.5배, 많게는 9.5배나 증가했다.
수입산 곡물의 약진과 비교해 국내산 콩류의 판매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마트가 지난해 상반기와 올해 상반기 콩류 매출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에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9% 감소했으며, 올해도 약 19.1%가 줄었다.
슈퍼곡물은 높은 단백질 함량과 다양한 영양성분을 강조하며 국산 콩류와 차별화를 두고 있다. 서양식으로 샐러드나 수프용으로 쓰이던 게 최근에는 한국인 식생활에 맞게 변형돼 백미와 섞어먹는 잡곡밥 형태로 활용되면서 전통적인 잡곡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렌틸콩은 식이섬유, 엽산, 단백질과 칼륨이 풍부하다. 렌틸콩 100g은 사과보다 약 21배 많은 식이섬유를 갖고 있으며, 시금치보다 2배 높은 엽산 함유량을 지녔다. 단백질 함량은 100g당 9g으로 쇠고기 130g과 비슷하다. 삶은 렌틸콩 100g은 칼륨 369㎎를 함유해 노란콩(325㎎), 검정콩(355㎎)보다 높으며 지질은 0.38g으로 다른 곡류에 비해 낮은 편이다.
퀴노아는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해 다이어트식으로 안성맞춤이다. 퀴노아 내 단백질은 동식물 조직 단백질과 비슷해 어린이 이유식이나 노인의 건강식으로 제격이다. 글루텐(식물성 단백질의 혼합물로 당과 지질을 함유) 성분이 없는 글루텐 프리 곡물로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먹어도 좋다.
병아리콩은 중앙아시아, 남부유럽 등에서 주로 사용되는 곡물로 밤이나 땅콩처럼 고소한 맛이 난다. 콩 특유의 비린내가 없고 포만감이 높다. 렌틸콩, 퀴노아 등과 함께 단백질, 칼슘, 식이섬유 등이 풍부해 채식주의자들이 즐겨 먹는다.
슈퍼곡물 수입자들의 주장과 달리 국산 콩류도 외국산 곡물과 비교해 영양학적 성분은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성분은 풍부하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영양분석 결과에 따르면 서리태, 백태, 약콩(쥐눈이콩) 등 국산 콩류는 슈퍼곡물에 비해 탄수화물은 적고 단백질 등 주요 영양소 함량 수준은 비슷했다.
국산 콩류의 100g당 열량은 서리태가 414㎉, 백태가 391㎉, 약콩이 381㎉ 등이었다. 반면 슈퍼곡물의 대표주자인 렌틸콩은 353㎉, 퀴노아는 367㎉, 병아리콩은 400㎉로 양쪽 사이에 열량 차이는 미미한 수준이다.
혈당관리에 영향을 주는 혈당지수(Glycemic index, GI)는 외국산 곡물이 높았다. 미국 농무부 산하 해외농업국(United States Department of Agriculture, USDA) 자료에 따르면 렌틸콩의 혈당지수는 29로 강낭콩(24), 대두(16)보다 높았다. 혈당지수가 높으면 탄수화물이 포도당으로 빠르게 변해 혈당이 높아지고 이를 낮추기 위한 인슐린과 지방을 저장시키는 효소가 분비돼 살이 찌기 쉽다.
100g당 단백질 함량은 서리태 33.2%, 약콩 34.8%로 나타났다. 렌틸콩은 22.4%였고, 병아리콩은 18.3%에 그쳐 국산 콩이 최대 2배 단백질 함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 필수 영양소로 꼽히는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미네랄 등의 함량도 큰 차이가 없었다.
식품 전문가들은 슈퍼곡물 열풍에 대해 우려한다. 용어만 보고 특정 식품이 무조건 우수하다고 여기면 편협한 소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슈퍼곡물이란 단어는 학계에서 정의된 용어가 아니며 범주도 명확하지 않다. 관련 연구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효능이 완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한국인의 식단은 서양과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서양인은 샐러드를 한 끼 식사로도 먹는다. 큰 그릇에 계란이나 참치를 넣고 단백질이 풍부한 곡물을 추가한 뒤 각종 채소와 버무려 배불리 먹는다. 하지만 한식의 한 끼는 밥과 반찬을 따로 먹는다. 밥에 부족한 영양소는 반찬으로 채울 수 있다. 각종 수입 곡물을 섞은 밥에 고기를 포함한 반찬, 거기에 영양제까지 복용하는 사람은 오히려 영양과잉이 될 수도 있다.
이윤경 차움 가정의학과 교수는 “한국인은 탄수화물 섭취가 과도한 편”이라며 “쌀밥, 국수, 빵, 떡 등에 풍부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면서 슈퍼곡물을 먹는 건 영양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반찬을 덜 먹고 슈퍼곡물로 조리한 음식을 늘리는 것은 영양 균형을 깨뜨리기 쉽다”고 말했다.
곡류를 과도하게 섭취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렌틸콩에 많이 함유된 섬유소는 체내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단점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이 성분은 장내 박테리아에 의해 발효돼 가스를 생성한다. 과도할 경우 복부팽만감, 복통 등을 유발한다. 신장질환자는 퀴노아에 풍부한 칼륨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칼륨을 과다섭취하면 몸 밖으로 제대로 배출하지 못해 고칼륨혈증이 생기기도 한다. 소화기능이 떨어지는 노인이나 위산분비 기능이 저하된 위축성 위염환자는 고단백질 식품을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