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건복지부가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한 자화자찬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가 빈축을 사고 있다. 대조군과 비교군간 비교분석 결과가 없어 안전성 및 유효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설문조사를 두고 ‘대학생 리포트 수준’에 불과하다는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말부터 3개월간 시범사업에 참여한 보건소 5곳과 일반의원 13곳에서 진료받은 고혈압·당뇨병 재진환자 8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원격의료 시범사업 이용자의 76.9%가 전반적으로 만족한다는 자체 중간조사 결과를 내놨다. 14.93%는 ‘보통’, 8.21%는 ‘별로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복약순응도는 시범사업 참여 전 4.64점(6점 만점)에서 참여 후 4.88점으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증가했다. 응답자의 80.34%가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가 원격의료 시범사업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며 “원격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검증 결과는 제시하지 않은 채 단순히 환자만족도, 복약순응도, 만성질환 관리에 대한 환자 평과 결과만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부는 기술적 안전성 확보를 위해 사용자 인증을 통한 접근통제, DB 암호화 및 보안프로그램 설치 등 필요한 조치를 취했고 시범사업 기간 동안 해킹이나 개인정보 유출 등 보안 관련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시범사업 현장을 공개하지 않은 만큼 신뢰할 수 없다”며 “원격의료 보안기술 가이드라인을 개발했다는 주장도 사실 여부를 확인조차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관계자도 “대면진료만 하던 환자에게 원격모니터링을 추가로 그것도 공짜로 실시한 뒤 만족도를 조사하면 결과가 좋게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하나마나한 연구를 한 것”이라며 “평가를 위한 시범사업이라면 ‘고혈압 당뇨병 환자에 대한 방문진료사업’과 ‘원격의료를 통한 사업’을 비교하는 등 기존에 최선으로 밝혀진 모델과 비교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발표한 연구 모델은 기본적인 평가의 틀을 갖추지도 못한 방식인 데다가 객관적 질병지표의 비교조차 없다”고 강조했다.
시범사업 평가에서 중요한 ‘비용-효과 분석’이 생략된 점도 지적되고 있다. 이번 시범사업은 전통적인 방문서비스에 비해 IT를 활용한 상담이 돈이 얼마나 들고 비용에 따른 효과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분석이 전혀 없다는 설명이다.
개인정보 보안에 대한 평가가 없는 점도 문제다. 의협 관계자는 “원격의료로 발생할 수 있는 오진과 데이터 손실 위험 등 환자 안전에 대한 내용은 언급조차 없다”며 “환자의 개인정보가 민간 IT기업 등 제3자에게 전송되는 과정에서 정보의 유출 및 상업적 이용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개인 내과를 운영하는 S모 원장은 “이번 설문조사 참가자들의 혈압·혈당 등 기본적인 정보는 이미 개원 의원에서 파악된 것”이라며 “대면진료 없이 원격의료만으로는 환자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지만 이번 설문조사는 마치 원격 모니터링을 통해 증상을 정확히 파악한 것처럼 환자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격 모니터링은 진료의 보조 수단일뿐 대체 수단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Y모 씨는 “의료계와 시민사회에서 원격의료 반대 여론이 점차 확대되고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로 문형표 장관의 거취가 불안정해진 상황에서 뭔가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 복지부가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추측했다.
시범사업 대상 환자에게 원격의료 장비 등을 무료로 지원하고 추가 진료비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76.9%라는 만족도는 오히려 낮은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즉 환자가 자신의 돈으로 원격의료 장비를 구입하고 별도의 수가를 지불해야 했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다.
또 시범사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환자들의 경우 평소 자신의 건강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대면진료에 더해 원격의료를 실시하면 만족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정부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진지한 과학적 평가를 통해 도입 여부를 검토 및 평가한 게 아니라 원격의료 도입을 강행하기 위한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이런 설문조사 결과를 자랑스럽다는 듯이 공개하는 것은 국민을 속이고 재벌기업의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환자들은 괜찮다는데도 수익 감소를 우려한 개원의들이 명확한 근거도 없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며 “의사들의 직능이기주의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비판했다.
한편 복지부는 “앞으로 계속 시범사업을 벌일 예정”이라며 “2단계 시범사업에서는 ”복합 만성질환 원격모니터링 서비스, 공용시설·도서벽지·요양시설 등 의료취약지 대상 원격진료·모니터링서비스 등을 추진해 종합적인 평가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