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 중 별도 심사기준에 부합한 곳)의 의료서비스 질이 일반 종합병원에 비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상급종합병원 제도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된 일선 병원들은 일반병실 비율을 정부 지정 기준인 70%에 맞추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정 기준에 따라 일반병실을 늘릴 경우 손실액이 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리모델링 공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감사원이 2011년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된 44개 병원과 종합병원 34곳(500병상 이상)의 급성심근경색증 및 대장암 등 9개 평가항목의 종합지표 점수를 비교한 결과 6개 상급종합병원이 종합지표를 구성하는 9개 평가항목 중 적게는 2개, 많게는 5개 항목이 종합병원 평균점수보다 낮았다.
상급종합병원은 3차 의료기관 역할을 수행하는 종합병원으로 1차 의료기관과 달리 중증질환에 대한 난이도가 높은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수행한다.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면 의료기관 종류별로 수가를 가산해주는 ‘종별가산제’에 따라 기본진찰료 등 행위별 수가가 일반 종합병원보다 5~15% 비싸게 책정되고, 신뢰도 높은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문제는 주무기관인 복지부가 의료서비스의 질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급종합병원을 지정했다는 점이다. 감사원 조사 결과 복지부는 병원평가 과정에서 수술환자 사망률 등 의료서비스의 질적 수준과 임상의 질 지표는 측정하지 않고 단순히 환자진료체계 등 의료서비스 제공시스템 부분만 갖췄는지 살폈다.
실제로 의료서비스 제공시스템 평가 인증 여부만 심사에 반영할 뿐 급성심근경색증과 관상동맥우회술, 급성기 뇌졸중, 대장암, 췌장암, 위암, 간암 등 9개 평가항목의 적정성 평가결과는 반영하지 않고 있다.
감사원은 “의료서비스의 수준이 낮은 병원이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돼 종합병원보다 더 많은 진료비를 챙기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복지부는 임상 질 평가지표를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진료비는 비싼 데 의료서비스의 질은 낮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일반병상 확대에 따른 재정 손실도 상급종합병원들의 고민거리가 됐다. 의료계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세브란스병원 등 빅4를 포함한 8개 상급종합병원이 정부가 정한 일반병상 비율인 70%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복지부는 ‘3대 비급여 개선안’에 따라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일반병실 비율을 기존 50%에서 70%로 확대하기로 했다. 국내 전체 병원의 일반병실 비율은 74%에 불과하다. 상급종합병원은 64.9%, 이 중 ‘빅5’로 불리는 5대 대형병원의 경우 58.9%로 일반병실의 비율이 가장 낮다. 빅5병원의 경우 일반병상을 70%에 맞추려면 상급병실인 2·3인실 병상의 30%를 일반병상으로 바꿔야 한다.
이전까지 2인실은 하루 입원료인 약 20만원을 환자가 전액 부담했다. 하지만 정부 기준을 맞추기 위해 2인실을 하루 입원료가 6만8000원에 보험이 적용되는 4인실로 사용할 경우 이들 8개 병원의 손실액은 연간 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꼭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공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많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현재 상급병실 가동률이 90%를 웃돌고 있어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며 “공사를 위해 입원 중인 환자를 나가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정부의 상급병실료 개선안은 1~2인실이 많은 대형병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며 “병원 전체의 진료시스템이 바뀌는 사안인데 시범사업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돈을 내고 다른 병실을 쓰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리모델링이 여의치 않아 병상 수만 조절해 병실을 운영하더라도 상대적으로 2인실은 4~5인실에 비해 쾌적하다. 결국 같은 입원료를 지불했는데 누구는 4~5인실에, 누구는 2인실에 배정되면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복지부와 병원들이 합당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병실 이용 관련 민원이 빗발칠 것이라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다.
병협 관계자는 “정부의 제도 개선방안 마련에 이해당사자인 병원계의 참여와 충분한 의견수렴이 없었다”며 “제도 개선에 따른 재정 확충 대안도 전무한 채 일방적으로 병원에 책임을 전가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상급병실제도 개편은 소비자, 공급자, 정부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수익성 증대를 위해 무리하게 상급병실을 늘린 병원 측에도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보건의료연합 관계자는 “현재 상급병실에 입원한 환자 중 60% 이상은 자기 의사와 상관 없이 비싼 병실을 사용하고 있다”며 “특히 빅5의 경우 비자발적 상급병실 이용자 비율이 83.7%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병상을 배정받기 전 상급병상을 경유해야 하는 관례적인 절차 탓에 환자의 비용부담이 증대되고 있다”며 “정부는 단순히 일반병실 비율을 늘리는 데에만 매달리지 말고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해 불필요하게 상급병실을 이용하는 일을 방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