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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I의 함정, 사실은 보험회사에서 만들었다?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5-05-26 10:34:11
  • 수정 2021-06-13 18: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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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체중 위험성은 간과하는 대신 비만만 ‘잡는’ 이유? … ‘돈’이 되기 때문
최근 다이어트 열풍이 불면서 항상 체크하는 게 체중이다. 운동에 앞서 체질량지수(BMI,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수, ㎏/㎡)를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몸상태를 가늠한다. 그리고 ‘정상 범위’ 안에 들기 위해 나름의 조치를 취한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막연히 ‘의료계에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같은 체질량지수에 집착하는 사람이 적잖다.

그런데 최초로 인간의 체중과 건강을 연관지어 기준을 만든 이들은 의학자, 과학자도 아닌 보험업계 사람들이다. 1895년 미국 생명보험사 메트로폴리탄(현 메트라이프)이 고객의 나이·키·몸무게 자료로 작성한 ‘신장체중표(height-weight-table)’가 최초의 체중기준표다. 

이 지표는 정상체중 범위를 정해놓고 그 이상의 체중을 가진 가입자에게 할증 보험료를 받는 데 활용됐다. 이는 점점 의학교과서에서 인용되고, 학자들의 연구 변수로 쓰이면서 ‘뚱뚱한 사람은 일찍 죽는다’라는 이데올로기가 세간에 퍼지게 됐다.

3~4년마다 개정을 거치던 신장체중표는 1983년판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과학적 신뢰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많은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 마지막 판을 내며 메트라이프는 “이 표에서 권장하는 체중은 질환이나 질병의 발병을 최소화하는 게 아니며 할증료를 계산하거나 서명하는 데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대신해 나타난 게 최근의 BMI이다. 현재 세계 거의 모든 건강·다이어트 업계에서 통용되는 이 지표 역시 건강과 체중 관계를 의학적으로 연구한 결과의 산물이 아니다. 1800년대 중반 벨기에 천문학자·수학자였던 아돌프 케틀레가 사회물리학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개발한 것으로 의학·건강과는 별 연관성이 없는 지수였다. 이렇듯 19세기 보험업계와 수학자가 만든 지수가 21세기 세계인들을 웃고 울리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사망·유병률을 토대로 잡아야 할 BMI 기준은 나라마다 다른 상황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학계에서 실제 나타나는 연구 결과에 상과없이 무조건 낮고 좁게 잡는다.  

한국의 경우 대한비만학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에 따르면 BMI가 18.5~22.9에 속해야만 정상이다. 18.5 이하는 저체중, 23이상은 과체중, 25이상은 비만이다. 

하지만 정작 여성이 원하는 ‘정상’ 범위는 이보다 더 아래여야 한다. 대한비만학회가 종합병원 방문객 1061명을 대상으로 비만 인식도 조사를 벌인 결과 정상체중(BMI 18.5~25)에 속하는 여성들 가운데 26%가 자신이 비만이라고 답했다. 이들 중 52%는 최근 1년간 다이어트를 시도했다. 

젊을수록 정도는 심하다. 2006년 영국 연구진이 전 세계 22개국 남녀 대학생 1만85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 여대생의 평균 BMI는 22개국 중 가장 낮았지만 다이어트를 시도해봤다는 응답률은 22개국 중 가장 높았다.

이처럼 마른 사람조차 다이어트에 뛰어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4월 시장조사 전문기관 트렌드모니터가 1050명에게 다이어트에 관심을 갖는 이유를 물었을 때 가장 많은 사람(39.3%)은 ‘건강관리 때문’이라고 답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다”라는 막연한 믿음에 의한 답변으로 볼 수 있다. 학회는 비만은 당뇨병·고지혈증·담낭질환·수면무호흡증·관상동맥 질환·고혈압·골관절염·대장암·유방암·난소암 따위의 발생 빈도를 증가시킨다고 설명하니 살을 빼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의외로 뚱뚱한 사람이 건강하지 않다는 속설에 반하는 연구결과도 많다. 노르웨이에서 1984년 10년간 180만명을 추적 조사해 발표한 연구 결과가장 높은 기대수명은 BMI 26~28에서, 가장 낮은 기대 수명은 BMI 18 미만에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비만으로 간주되는 범위의 사람들이 가장 건강하고, 정상에 가까운 저체중에 속하는 사람들이 가장 건강하지 않은 셈이다.

1998년 미국에서 발표된 인종·성별 사망률과 BMI 관계 연구에서도, 2000년 발표된 유럽 7개국 8000명을 대상으로 40년간 추적 조사해 기대수명을 평가한 연구에서도 2007년 한국인 여성 33만명을 대상으로 10년간 사망률과 BMI 간의 관계를 추적한 연구 조사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BMI 기준상 과체중에 속한 사람이 가장 오래 살거나 질병발생률이 낮았고, 저체중·비만에 속한 이들이 가장 건강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저체중과 비만 중에서도 마른 사람이 뚱뚱한 사람보다 더 위험했다. 

이런 숱한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계속 말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대택 국민대 체육학과 교수는 “사회가 저체중의 위험은 간과하면서 과체중·비만의 위험만 강조하는 것은 ‘그게 돈이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비만’을 하나의 상품으로 잡은 의료·보건 영양·체육학계와 미디어가 최대한 많은 이들을 비만 환자 범위에 집어넣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쓰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우리나라 비만인구가 미국의 비만인구 비율을 앞섰다는 당황스런 결과까지 나왔다. 하지만 이는 국내 BMI기준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 연안의 국가 기준이기 때문에 WHO에서 직접 지정한 BMI 수치 비만도 기준과는 조금 다른 데서 비롯된 결과다. 우리나라의 경우 BMI지수가 25이상이면 비만으로 판단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 BMI지수의 기준은 30 이상을 넘어야 비만으로 보고 있다. 

그 결과 BMI 수치 25이상으로 비만 판단을 받은 대한민국 인구는 남성 38.7%, 여성 28.1%로 BMI 수치 30 이상을 비만으로 정한 미국의 성인 남성 33.5%, 여성 33.4%보다 비만인구 비율이 높게 나왔다.
 
일본은 최근 BMI 비만기준을 남성은 27.7로, 여성은 26.1로 상향 조정했다. 이 기준이 상향되면 사망률이나 질병발생률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경도 비만의 인구가 불필요하게 비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거나 스트레스 받을 가능성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조치는 체중감량이나 무리한 다이어트와 같은 사람들의 과도한 집착을 줄일 수 있고, 비만치료가 더욱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BMI 수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상당수다.

이대택 교수는 “건강은 체중과 BMI로 대표되는 수치만 갖고서는 절대로 판단할 수 없다”며 “이들 수치는 몸의 상태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는 될 수 있겠지만 특정 범위를 설정해놓고 쫓아갈 목표는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체형도 마찬가지다. 그는 “선호의 문제일 뿐인 몸매와 체형을 건강과 결부시켜 ‘마른 몸이 곧 건강한 몸’이라는 인식이 확고해질수록 고유의 체질과 유전 특질을 지닌 개인들의 건강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건강한 몸이란 연예인의 잘 빠진 보디라인 아니라 잘 먹고 잘 움직이고 잘 배출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몸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그 무게와 구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교수는 ‘건강해지려면 살을 빼라’라는 사회 통념이 ‘자기에게 알맞은 체중을 찾아라’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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