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MBC에서 방영되는 ‘진짜 사나이’ 덕분에 군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제대한 사람에게는 추억을, 군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전달해 주고 있다. 군대 이야기를 나눌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 중 하나가 전투식량에 관한 것이다.
전투식량은 예부터 전략물자로 중요하게 취급됐다. 나폴레옹은 “군대는 잘 먹어야 잘 싸운다(An army marches on its stomach)”라고 말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명장들은 병사들의 배고픔을 해소하는데 중점을 뒀다. 전투식량은 군인들의 생존은 물론 심리적 안정감과 활동성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전투식량을 보급하고 있다. 미국은 무슬림, 채식주의자 군인들을 위한 식량을 따로 공급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술이나 과일음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한국군이 본격적으로 전투식량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베트남전 이후부터다.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미군의 전투식량을 그대로 들여와 보급하거나 단순 모방하는 수준에 그쳤다. 한국전쟁에는 주먹밥, 김밥, 말린 쌀, 비스킷, 미숫가루 등이 대표적인 전투식량이었다. 베트남전 한국군에는 미군에서 지급되는 통조림 형식의 전투식량이 지급됐다. 미국식 먹거리로 구성되다 보니 한국인의 입맛이 맞지 않아 1967년 2월부터 밥과 김치로 구성된 통조림 형태의 K레이션이 보급됐다. 맛은 뒷전이었고 포만감을 줄 수 있느냐 마느냐가 가장 중요한 사항이었다.
전투식량은 1형과 2형, 즉각취식형, 특수식량 등으로 나뉜다. 1형은 뜨거운 물에 데워 먹는 방식으로 쇠고기·김치·햄 볶음밥으로 구성됐다. 2형은 뜨거운 물을 부어서 먹을 수 있으며 쇠고기·햄 볶음밥이 있다. 즉각취식형은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소탕작전 당시 뜨거운 물이나 불이 없으면 식량을 먹지 못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개발됐다. 쇠고기 볶음밥과 햄 볶음밥 2개 종류다. 물을 따로 붓지 않아도 되며 봉투 안에 들어 있는 발열체를 이용해 데워 먹는다. 특전식량은 땅콩강정, 미숫가루 맛이 나는 고열량 압착식, 초코바, 햄 등이 있다.
전투식량 가격은 즉각취식형이 가장 비싸고 특전식량이 제일 저렴하다. 즉각취식형의 경우 발열체를 포함하고 높은 열량을 갖추며 최장 3년을 보관하도록 제조돼 개당 단가가 7975원에 달한다. 온수로 데워 먹는 전투식량 1호는 5440원, 물을 부어서 먹는 전투식량 2호는 5236원이다. 추가 조리없이 그대로 먹는 특전식량으로 4613원이다.
전투식량 1회분 칼로리는 1100kcal으로 성인 1일 권장 칼로리인 2600kcal의 약 절반으로 높은 수준이다. 특전식량은 다른 식량에 비해 탄수화물 비중이 낮고 지방함유량은 약 15% 높다. 전투식량 1형은 기름기가 많아 느끼하고 2형은 짜고 맛이 강해 금방 질린다는 평가가 많다. 부피가 크고 무거워 휴대성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중동에서 6개월 이상 전투를 벌였던 미군의 경우 가볍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전투식량이 중요한 전략 중 하나였다.
미 육군 산하 내틱군사연구개발공학센터는 1990년대부터 몸에 붙이는 전투식량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미국 국방부는 2000년 ‘경피투과방식 영양전달시스템’(패치형 전투식량)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상용화 시기를 2025년으로 잡고 현재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패치형 전투식량의 원리는 금연보조제인 니코틴 패치와 같다. 피부로 비타민, 단백질 등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원리다. 실제 음식을 입으로 먹지 않고 패치를 피부에 붙이는 것만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장기간 공급한다. 패치형이 보급되면 전투식량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수증기나 취식 흔적 등으로 인한 노출 위험이 줄어들게 되며 휴대성, 영양공급의 속도조절, 전신영양공급 가능성, 공복감 해소 등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전투식량은 예전에 비해 크게 발전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세대 장병들을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장병들은 즉각취식형 전투식량을 선호한다. 발열체를 이용해 식사를 쉽게 데울 수 있고 맛도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다. 이것도 입맛에 맞지 않은 군인들은 군 PX(간이매점)에서 판매하는 양념 고추장이나 통조림 등을 따로 구입해 훈련때 먹는다.
육군은 지난달 28일 서울시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전투식량 혁신을 위한 공청회에서 군 전용 전투식량 대신 민간 아웃도어형 식품을 사들여 장병들에게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군은 이미 각 기업에 대한 대략적인 단가 문의를 마쳤으며 아웃도어형 식품 도입에 따른 전투식량 연구개발비까지 책정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한 끼 급식비 수준의 시중 상용품을 구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신세대 장병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시중품을 선택 구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전투식량 시장은 약 240억원으로 두 업체가 시장 전체를 독점하고 있다. 민간 아웃도어형 식품은 업체간 치열한 경쟁으로 전투식량보다 맛이 좋고 메뉴도 다양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통기한이 전투식량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가격이 약 3000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군은 올 하반기부터 민간 아웃도어형 식품을 구입해 1개 군단에서 시험해보고 연말에는 1개 군사령부로 확대 시행할 방침이다. 시험결과가 좋게 나오면 내년 중 전군에 보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