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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속 ‘글루텐’은 해롭다? … 아직 한국인 ‘글루텐병’ 환자 없어
  • 정종우 기자
  • 등록 2015-02-16 14:50:44
  • 수정 2016-02-18 03: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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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화불량엔 전분·당류 과잉 섭취 의심 … ‘글루텐프리’ 제품 칼로리 높아 오히려 비만 초래

한국인에겐 글루텐 거부반응으로 발생하는 ‘셀리악병’ 유전자가 없어 굳이 ‘글루텐프리’ 식품을 찾지 않아도 된다.

설 명절을 앞두고 밀가루 반죽에 계란 등을 풀어 전 부치기에 여념이 없을 시기다. 해방 이후 밀가루 수요가 급격하게 늘면서 쌀과 대등한 비중으로 섭취하는 식품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밀가루 알레르기’ 환자가 제법 많다는 항간의 소문에 밀가루음식을 먹은 다음에 알레르기나 소화불량 등의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수년 전부터 생겨났다.

밀가루 생산업체들은 이를 빌미로 글루텐을 제거한 제품(gluten free)을 내놓았다고 요란하게 광고하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글루텐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별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영부인, 영화배우 기네스 펠트로 등 유명 인사들이 글루텐이 포함된 음식은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국내에도 이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난해 7월 미국 시장조사업체 NPD그룹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식사할 때 글루텐을 피한다는 응답자 비율이 전체의 29.4%로 4년 전 25.5%보다 3.9% 높아졌다. 전세계 글루텐프리 시장도 지난해 약 88억달러 규모로 4년새 2배 이상 불어났다.

글루텐은 밀, 보리, 호밀 등의 곡류에 들어있는 불용성 단백질이다. 밀가루를 물에 풀 경우 녹말은 녹아서 뿌옇게 하지만 글루텐은 녹지 않고 점착성이 있는 덩어리를 형성하게 된다. 글루텐 함량은 밀가루의 종류에 따라 다르며 글루텐의 끈기는 식감을 좋게 하며, 가스를 보유해 밀가루가 부풀어 오르도록 작용한다.

글루텐에 민감한 사람이 글루텐 함유 식품을 먹으면 위와 장에서 완전히 분해·흡수되지 않고, 소장에 남아 장 점막의 면역체계를 자극하고 염증을 유발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반응이 계속되면 소장 점막에 틈이 생겨 글루텐은 물론 ‘엔도톡신(내독소, 설사·출혈·백혈구변동 유발)이 침투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가장 먼저 알려진 게 ‘셀리악병’(소아지방변증)이다. 특정 어린이들은 글루텐 포함 식품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알레르기(천식, 비염, 피부발진), 편두통으로 고생하게 된다. 심지어 성장장애, 자폐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외국 언론들은 경고하고 있다. 성인이 돼서도 이런 증상은 계속되기 쉬운데 미국인의 1% 정도가 셀리악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셀리악병은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특정 유전자가 변형된 자가면역질환이다. 인체에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물질이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판별하는 ‘항원제시세포(APA)’가 있다. APA의 표면에는 단백질인 식별센서(HLA)가 붙어 있다. 이 식별센서가 글루텐 성분과 결합할 때 글루텐은 적군이 아닌 아군으로 인식되며 아무 이상 없이 장세포를 통과해 물질대사로 이어진다. 하지만 식별센터가 고장이 나 글루텐을 적군으로 인식하면 장의 점막세포를 파괴한다. 융모가 소실돼 영양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없도록 만든다. 정상적인 식별센서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는 글루텐프리 밀가루가 필요 없다. 글루텐은 오히려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음식의 풍미를 살리는 고마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셀리악병은 생후 2주의 유아부터 만 1세 이하의 소아에 주로 생긴다. 환자는 글루텐이 포함된 음식을 먹으면 소장에 무리가 가 영양분의 흡수력이 떨어져 비타민 결핍이나 영양실조가 일어나고 빈혈, 골다공증, 장암, 장림프종 등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발병 초기에 복부통증, 팽만감, 가스, 설사, 변비, 구토 등을 보인다. 원인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자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적으로 성인이 된 후 갑자기 이 병에 걸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국내에선 아직 발병된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인에게는 찾아보기 힘들다. 바꿔 말하면 동아시아인에겐 셀리악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없다는 뜻도 된다.

2010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글루텐 민감성으로 알고 있는 사람 32명을 대상으로 글루텐프리 식이요법을 실시한 결과, 불과 12명만이 증상이 개선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절반 이상이 글루텐 민감성이 아닌 데도 효과도 없는 식이요법을 실시하고 있었다.

글루텐이 포함된 밀가루음식을 먹어 소화불량이 평소보다 심해졌다는 사람들은 다른 재료인 전분(밀전분)과 당류를 의심해봐야 한다. 잦은 과식, 폭식, 음주 등도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잦은 밀가루음식 섭취는 피부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정제된 밀가루는 혈당지수(Glycemic Index, GI)를 높인다. 혈당치는 일반적으로 식후 한 시간이 지나면 최고치에 도달했다가 서서히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인슐린은 혈당이 지나치게 올라가지 않도록 조절한다. GI가 높은 음식을 먹을 경우 혈당이 갑자기 높아져 이를 떨어뜨리기 위해 인슐린이 많이 분비된다. 이에 저혈당 증세가 나타나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무기력해진다. 밀가루음식을 먹으면 금방 허기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배가 고파지면서 혈당을 빨리 높이는 음식을 또 찾게 된다. 인슐린·피지 분비 증가는 여드름 등 피부 트러블을 일으킨다. 깨끗한 피부를 원한다면 밀가루보다는 당 지수가 낮은 통곡물 재료 위주의 식습관이 추천된다.

글루텐이 탄수화물중독의 원인이란 주장도 있다. 탄수화물중독에 걸리면 당분 섭취를 못했을 때 신경이 예민해진다. 글루텐은 위산에 포함된 펩신(pepsin)이란 소화효소에 의해 엑소르핀(exorphine)이란 물질로 전환된다. 이는 모르핀과 유사한 화학구조식을 가져 중독성을 유발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엑소르핀은 우유, 쌀, 시금치, 선짓국 등을 먹을 때도 만들어질 수 있다. 아직까지 이들을 먹고 중독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이런 주장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밀, 쌀, 옥수수 등은 칼로리가 비슷하다. 100g당 칼로리를 비교하면 쌀이 360㎉, 옥수수가 348㎉, 밀이 330㎉ 순이다. 오히려 글루텐프리 식품에는 글루텐을 제거한 대신 설탕과 지방이 더욱 첨가돼 열량이 높다. 쫄깃쫄깃한 식감이 부족해 첨가물을 더 넣기 때문이다. 외국의 연구에 따르면 글루텐에 대한 신체 저항이 없는 사람이 글루텐프리 식품을 섭취한 결과 81%가 오히려 체중이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다. 영국 영양사협회도 단순히 글루텐을 먹지 않는 것만으로는 체중감량 효과가 없다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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