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겨울밤, 소주 한잔에 곁들여 먹는 육회의 맛은 아는 사람만 안다. 혹자는 ‘육회로 배를 채우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식감에 괜히 젓가락만 빨게 된다. 양이 부족해 어딘지 아쉬워져 육회를 다시 찾게 되는 게 매력이다. 훌륭한 육질의 촉촉한 고기, 담백하게 퍼지는 맛,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은 저절로 술을 부른다. 더욱이 다음날 속도 편한 것 같아 단언컨대 최고의 안주로 꼽는 마니아가 형성돼 있다.
육회는 연한 날것 소고기에 갖은 양념을 무친 음식이다. 소고기는 양질의 동물성단백질과 비타민 A·B1·B2 등이 함유돼 있고 수분이 65~75%, 단백질이 약 20%, 무기질이 약 1% 등으로 구성돼 몸보신 음식으로도 손색없다.
주로 우둔살을 이용해 만든다. 소의 볼기, 즉 엉덩이 부위로 주로 장조림용으로 애용되는 붉은 살코기다. 결이 곱고 등심처럼 연해 맛이 좋다. 지방질이 적어 양질의 단백질을 낮은 칼로리로 섭취할 수 있는 부위다.
흔히 육회는 시장의 먹자골목에서 소주와 함께 곁들여 먹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같은 날고기를 활용한 음식은 의외로 레드와인과도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서양에서도 우리나라의 육회처럼 날고기를 활용해 요리한 음식이 있는데, 이를 와인과 곁들여 마신다.
일반적으로 소고기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날고기나 날생선 살을 다져 만든 요리를 ‘타르타르’(tartare)로 통칭한다. 우리나라의 육회의 영어식 표현은 ‘비프 타르타르’(beef tartare)다.
한국이나 서양이나 기름기가 전혀 없는 신선한 우둔살이나 홍두깨 부위의 살로 만드는 것은 같다. 서양식 육회는 소고기를 얇게 저며 접시에 깔고 양념이나 소스를 끼얹는데 이를 ‘카르파초’(carpaccio)라고 한다. 얇고 넓게 저민 육사시미를 떠올리면 비슷하다. 고깃살 위에 계란 노른자를 올려놓는 것도 공통점이다.
한국식 육회와 카르파초를 구분하는 것은 양념이다. 육회는 간장, 파, 다진 마늘, 깨소금, 참기름, 설탕, 후추가루 등을 섞어서 양념장을 만들어 소고기와 고루 무친다. 채썬 배를 깔고 무친 고기를 올리거나 육회를 먼저 담고 배채를 계란 노른자와 함께 위에 올리기도 한다.
반면 카르파초는 버진 올리브유, 머스타드겨자, 다진 케이퍼, 생계란 노른자, 다진 양파, 소금, 후추 등을 버무려 만든다. 이때 아이스플랜트를 활용해 장식하기도 한다. 아이스플랜트는 남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이 원산지인 아직 생소한 채소다. 식감이 아삭하고 맛이 짭조름한 게 특징이다. 표면에 자글자글 붙어있는 투명한 결정체는 마치 얼음 같아 이같은 이름이 붙었다. 이 결정체에는 안티에이징 기능을 하는 이노시톨류와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베타카로틴 등 영양성분과 미네랄이 함유돼 있다.
스페인 와인 명가 ‘토레스’의 아시아 지역담당 매니저인 호세프 플라나는 한국의 육회와 어울리는 와인으로 토레스 와이너리의 ‘마스라플라나’(Mas La Plana)를 꼽았다. 그는 “스페인과 여러 모로 닮은꼴인 한국음식은 토레스 와인과 훌륭한 짝꿍”이라며 이 제품을 추천했다.
마스라플라나는 197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샤토 라투르’ 등 쟁쟁한 보르도산 최고급 와인을 제치고 1등을 차지해 스페인 와인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국내 판매가격 기준 한 병에 8만8000원인 이 와인은 병당 100만원을 훌쩍 넘는 고급 와인을 이겨 당시 세계 와인업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호두, 황토색이 감도는 어두운 체리빛을 띠며 빌베리·체리잼의 달콤한 향, 부드러운 탄닌과 풍부하고 감각적인 맛이 특징이다. 탄닌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어지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피니시가 강하지 않고 잔잔하다. 숙성되면서 더욱 풍성해지고 화려해지는 부케가 특징이다.
김승용 쉬운요리연구가는 서양식 카르파초는 피노누아 품종의 레드와인과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피노누아 와인은 가격이 조금 나가는 것과 저렴한 제품의 차이가 크므로 웬만하면 ‘멋진 요리에 어울리는’ 것을 고르길 권했다. 그는 “간의 맛이 적절하게 잘 밴 카르파초와 맛있는 피노누아 레드와인 한 잔과의 매치는 샹송을 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다만 레드와인의 가격이 부담되는 사람은 차선책으로 저렴하지만 맛이 진한 쪽으로 블렌딩된 화이트와인을 선택하는 게 좋다. 예를 들면 양념된 쇠고기 육회는 화이트와인 ‘샤도네이’가, 양념 없이 담백한 육회는 ‘스파클링 와인’과 궁합이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