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에 사용될 B형 혈액이 A형으로 둔갑하고, 혈액값을 미지불한 병원이 79곳에 달하는 등 대한적십자사의 혈액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은 26일 열린 대한적십자사 국정감사에서 “혈액관리본부 산하 경기혈액원은 지난 6월 2일 헌혈의 집에서 혈액형이 적혀있지 않은 혈액백 2개를 받고 모두 A형으로 적었지만, 실제 두 혈액백은 각각 AB형과 B형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혈액원은 한국인 중 A형이 가장 많은 점을 고려해 A형 혈액백의 경우 업무 편의상 혈액형을 따로 적지 않는다. 이같은 관행에 따라 혈액형이 적혀있지 않은 혈액백 2개를 A형으로 기재했지만 이후 혈액무게를 측정한 결과 착오가 발견됐다. 이에 따라 혈액전산시스템에서 혈액번호로 혈액형을 조회해 AB형과 B형 라벨을 새로 만들었지만 담당 직원이 이를 뒤바꿔 붙여 또 혈액형이 바뀌게 됐다.
혈액백은 앞면에 혈액형과 혈액번호 라벨을, 뒷면에 혈액번호만 있는 라벨을 붙인다. 이번에 문제가 된 혈액백은 앞뒤 라벨의 혈액번호가 달랐지만 확인 절차 없이 냉동고에서 보관됐다. 출고 직전까지 확인되지 않다가 병원에 출고된 뒤에야 앞뒤 라벨의 혈액번호가 다른 게 발견돼 회수 조치됐다. 결과적으로 실수와 태만이 겹치면서 B형 혈액이 A형으로 둔갑했다가 다시 AB형 라벨을 붙이고 유통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기관은 2012년에도 혈액 표기가 바뀐 혈액을 출고해 수혈까지 하는 사고를 일으켰다. 김 의원은 “2년 전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개선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며 “대한적십자사는 혈액관리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적십자사의 실수로 잘못 출고된 혈액은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데 담당자를 징계 조치하지 않고, 문제 발생시 부서장 보고 및 이중 확인 등의 당연한 절차를 이제 시행하는 것은 혈액관리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국정감사 결과 일부 혈액검사 센터가 일요일 검사 건수를 의도적으로 제한해 센터 직원들의 편의를 도모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 의원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앙혈액검사센터는 2010년, 중부혈액검사센터는 2011년, 남부혈액검사센터는 2012년부터 일요일 검사 건수를 1350건으로 제한했다.
중앙센터의 경우 최근 대한적십자사 자체 감사를 통해 일요일 검사 제한에 대해 지적받은 바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검사 건수는 그대로 제한하고, 혈액원이 요청할 때에만 검사를 추가 실시하기로 노사 협의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토요일에 채혈 및 제제가 완료된 혈액 중 3분의 1 가량이 일요일까지도 검사가 완료되지 않아 월요일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혈액 공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며 “혈액원이 혈액검사센터의 눈치를 보다가 제대로 검사 요청이나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관련 사안에 대해 다시 노사 협의를 진행하고, 직원의 편의보다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혈액 수급의 안정에 만전을 기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혈액 미수금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의원에 따르면 지난 4~7월 445곳의 의료기관 중 79곳에서 발생한 혈액미수금이 22억4960만7000원에 달했다. 하지만 상당한 미수금 규모에도 최근 3년간 징계를 받은 것은 경남혈액원 직원 2명뿐이었다.
김 의원은 “서울 W병원 등 9개 병원에서 3개월 이상 미납된 혈액 미수금이 9157만원에 달하고, 매달 2000만원 이상의 미수금이 발생하는 병원도 있다”며 “혈액미수금은 해당 기관의 수입 및 현금 유동성과 직결되는 만큼 적극적인 회수 조치로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류가 아닌 구두로만 완납 약속을 받은 채 대기하는 등 미온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혈액대금 납부협조요청 문서 발송 외에 추가 후속조치를 강화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응급수술 등에 필요한 혈액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량의 혈액이 보존기관 경과, 표지 파손 등의 이유로 파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 7월까지 폐기된 혈액량은 무려 55만9900팩(2.5%)에 달했다. 하루 평균 폐기량은 438팩이었다.
폐기 혈액 중 7만6888건(13%)은 ‘액용기의 밀봉 또는 표지파손, 보존기간 경과, 교환 등’ 혈액보관 단계나 ‘응고, 오염, 양부족, 양과다 등’ 채혈·제제 단계에서 폐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채혈·제제 및 혈액보관 단계에서 폐기된 혈액량은 지난해 한 해 1만6000건에서 올해는 7월까지만 1만5000건으로 크게 늘었다.
김 의원은 “대한적십자사는 혈액의 안정적 수급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의료기관에서의 수요와 보관기간을 고려, 보존기간 경과로 인한 폐기가 최소화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 결과 하루 한명 이상이 헌혈 부작용으로 보상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김 의원이 대한적십자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 헌혈 도중 다치거나 후유증을 겪은 것으로 확인돼 보상받은 건수는 1612건으로 보상금액은 6억5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도별 보상 건수는 2010년 309건, 2011년 343건, 2012년 379건, 2013년 371건이었다. 올해의 경우 지난 6월까지 벌써 210건이 발생해 부작용 건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보상금 지급액은 2010년 7014만원, 2011년 3억8599만원, 2012년 6937만원, 2013년 8233만원이었으며 올해에는 상반기에만 4403만원이 지급됐다.
주요 부작용으로 ‘혈관 미주신경 반응’이 543명(33.67%)으로 가장 많았으며, 헌혈 부위 주변에 멍이 생기는 피하출혈도 171건(10.61%)으로 뒤를 이었다. 일부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치아나 뼈가 부러지거나 얼굴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헌혈 부위의 신경이 손상돼 깁스를 하거나 마비 증상을 보인 사례도 많았다.
지역별로는 동부혈액원(1백99건), 서부혈액원(1백93건), 인천혈액원(1백43건), 경기혈액원(1백31건), 남부혈액원(1백28건) 순이었다.
하지만 헌혈 부작용 사고로 직원이 징계를 받은 건은 전무했다.
김 의원은 “헌혈 부작용 사고에 대해 단 한건의 징계조차 없는 것은 사고는 계속되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음을 의미한다”며 “부작용 전조증상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충원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