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IX’ 암세포 사멸 50% 증가시켜 … 암세포 성장 돕는 ‘G9a’ 효소 억제, 새포내 활성산소 증가
황정진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의생명연구소 교수
국내 연구진이 세포가 불필요한 성분을 잡아먹는 ‘자식작용’을 인위적으로 과잉 유발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새로운 표적치료제 후보물질을 발견했다. 황정진 서울아산병원 아산생명과학연구원 의생명연구소 교수팀은 자식작용이 과하게 일어나면 세포가 죽는 현상에 착안, ‘BIX-01294(BIX)’라는 화학물질로 암세포의 과잉 자식작용을 유도해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23일 밝혔다.
자식작용(自食作用)은 세포가 영양소 결핍에 반응, 비정상 단백질 등 불필요하거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세포 성분을 분해해 재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퇴행성 신경질환이나 암이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필요한 세포가 스스로 죽는 ‘세포자살(apoptosis)’과는 기전이 다르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암 치료제는 세포자살을 유도해 암세포를 사멸시킨다. 그러나 암세포는 세포자살에 관계된 유전자가 변질돼 세포가 제대로 사멸되지 않을 때가 많아 기존 항암제 치료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자식작용을 경유한 세포사(死) 원리를 항암제에 적용하면 이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황 교수팀은 2400여개의 화학물질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자식작용 유발효과가 높은 BIX를 선별한 후 유방암 세포주와 정상 유선상피 세포주에 10㎛ 농도로 첨가, 24시간 동안 배양했다. 이후 MTT assay(세포 생존율 측정기법)로 세포사멸 효과를 측정한 결과 암 세포주에서 세포사가 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BIX는 또 암세포 성장을 돕는 ‘G9a’ 효소를 억제하고 세포내 활성산소를 증가시켜 암세포의 과잉 자식작용을 촉진시켰다. 예컨대 G9a효소의 발현 정도가 28배 높은 유방암과 대장암 환자의 종양 세포를 BIX와 배양한 경우에는 세포사가 최대 100% 증가했다.
황정진 교수는 “자식작용을 경유한 세포사 원리가 항암제 개발에 성공적으로 적용되면 암환자가 겪는 부작용과 이상 반응이 최소화되고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며 “후속 연구를 통해 적용 가능한 암종과 치료 반응성이 큰 환자를 선정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를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인용지수 12.042의 의학 전문학회지 ‘자식작용(Autophagy)’ 12월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