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ucagon-like peptide-1, GLP-1) 작용제 시장을 놓고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와 일전을 벌여야 하는 릴리가 최근 미국 상원에서 통과된 '생물보안법'과, 이에 앞서 진행된 노보노디스크의 '캐털런트' 인수 영향으로 궁지에 몰리고 있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당뇨병 및 비만치료제 대표 기업인 릴리는 당뇨병 및 비만 치료제로 각각 승인된 GIP/GLP-1 작용제인 ‘마운자로’(Mounjaro 성분명 티어제파타이드 tirzepatide)와 동일 성분의 ‘젭바운드’(Zepbound)의 원료를 중국 ‘우시앱텍’(Wuxi AppTec)에서 만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 6일 미국 상원 국토안보위원회는 중국 BGI 및 우시앱텍과 같은 중국 바이오기업과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생물보안법안을 11대 1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이 상원과 하원 전체회의와 대통령 서명까지 받아 최종 통과되면 우시앱텍과 계약을 맺는 여러 기업들이 계약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실제로 릴리를 비롯해 우시앱텍과 계약을 맺고 있는 다수의 미국 바이오제약 기업들이 원료 공급망을 재편해야 하고, 이에 따른 의약품 공급 부족 사태에 직면할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미국 기업들은 이 법안이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하고 있다.
게다가 릴리의 최대 경쟁사인 노보노디스크의 지주사인 노보홀딩스(Novo Holdings)가 지난 2월 5일, 165억달러에 미국의 대표적인, 세계 2위 수준의 바이오의약품 위탁 개발‧제조기업(CDMO)인 캐털런트(Catalent)를 165억달러에 인수키로 발표했다. 노보노디스크가 다시 노보홀딩스로부터 110억달러에 이탈리아 아나니, 벨기에 브뤼셀,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 등에 소재한 3곳의 충진-완제(fill-finish) 시설을 확보키로 하면서 릴리는 완제품을 찍어낼 생산기반을 잃게 됐다.
이에 릴리는 노보노디스크의 캐털런트 인수가 독점적 거래가 아닌지 미국 반독점당국이 면밀히 조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릴리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 ‘내셔널 리질리언스’(National Resilience) 및 이탈리아 ‘BSP 파마슈티컬스’(BSP Pharmaceuticals)와 CDMO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릴리 대변인은 “우리는 생산을 가속화하기 위해 외부 계약 제조업체의 광범위한 포트폴리오를 활용하고 있으며 세부사항은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릴리의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는 릴리 전체 매출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되는 유망 품목이다. 마운자로는 2023년 한해 51억달러 매출을 올렸고, 젭바운드는 2023년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이후 6주 만에 1억7600만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이 시장을 선점한 노보노디스크 당뇨병 및 비만 치료제 '오젬픽'(Ozempic)과 '위고비'(Wegovy)는 GLP-1 작용제 계열인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 성분의 약제들이다. 2023년 매출은 각각 139억달러와 45억달러다.
미국 골드만삭스는 2029년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 약물의 당뇨병 및 비만 치료제 시장은 4000억달러까지 확장될 수 있다며 마운자로의 2029년 매출을 270억달러로 추정했다. 마운자로가 미국 제약사가 개발한 제품이고, GIP/GLP-1 이중 작용제로서 GLP-1 단일 작용제인 오젬픽보다 기전으로나 현재 도출된 임상시험의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간접 비교에서 보다 적은 투여량으로 다소 나은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2029년에는 오젬픽을 제치고 이 분야 1위에 등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한국바이오협회는 “노보노디스크의 캐털런트 3개 시설 인수는 GLP-1 유사체 생산 역량을 확대하는 데 중점을 둔 거래고, 릴리도 자사 3개 제품에 대한 생산을 캐털런트에 의뢰하고 있기 때문에 노보노디스크 움직임에 매우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며 “릴리는 캐털런트에 기존 거래 계약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