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허투는 지난해 미국임상종양학회 학술대회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관심을 받았던 혁신 항체약물결합체(ADC)입니다. 국내서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하루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고, 개인적으로 HER2 저발현 유방암으로 적응증이 확대되길 바랍니다.”
박연희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12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엔허투 출시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학회를 참관했지만 신약이 기립박수를 받는 것을 보는 것은 딱 두번이었다”며 “2020년 6월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에서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DESTINY-Breast01 임상시험 분석 결과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이 19.4개월로 나온 것은 귀를 의심케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국내에서 엔허투의 유방암 관련 주요 임상인 DESTINY-Breast 시리즈 임상 01~11에 모두 참여하고 있다.
일본 다이이찌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가 공동 개발한 ‘엔허투주100mg’(Enhertu 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 fam-trastuzumab-deruxtecan-nxki, T-DXd)는 2022년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DESTINY-Breast01 2상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이전에 두 개 이상의 항 HER2기반의 요법을 투여 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제로 승인받았다. 또 DESTINY-Gastric01 2상 임상연구에 근거해 이전에 항 HER2 치료제를 포함해 두 개 이상의 요법을 투여 받은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위암 또는 위식도접합부 선암종의 치료제로 같은 날 허가받았다.
이어 2022년 12월에는 3상 DESTINY-Breast03 임상시험을 근거로 이전에 한 가지 이상의 항 HER2 기반의 요법을 투여 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로 적응증을 확대 승인받았다. 3차 치료제에서 2차 치료제로 석달 만에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한국다이이찌산쿄는 지난해 12월 28일 이 약의 건강보험급여를 적용받기 위한 신청서류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하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엔허투는 암세포 표면의 HER2(인간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2, 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2)라는 표적 항원에 결합하는 항체(트라스투주맙)와 세포사멸 기능을 가진 topoisomerase 1 억제제 계열의 항암제인 데룩스테칸을 약물 저장고(Payload)에 담아 링커(Linker)로 항체와 항암제를 결합한 항체약물접합체(Antibody Drug Conjugate, ADC)다.
엔허투는 △기존 미세소관 억제제(microtubule inhibitor: auristatin, maytansinoid) 또는 DNA 손상제제(calicheamicin) 대신 Topoisomerase 1 inhibitor 계열의 약물을 페이로드로 사용한 점 △Topoisomerase I inhibitor인 이리노테칸보다 더 강력한 데룩스테칸을 채택한 점 △항체 당 더 높은 항암약물 결합 비율(1대 8) △전신 반감기가 짧아 페이로드 독성을 줄인 점 △안정적인 링커-페이로드 결합으로 높은 혈장 내 농도 유지 △종양세포에서만 선택적으로 절단되는 링커 △페이로드의 높은 세포막 투과성으로 높은 종양사멸 효과 등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엔허투는 특히 HER2 양성 유방암에서는 선발 ADC인 로슈의 ‘캐싸일라주’(Kadcyla 성분명 트라스투주맙 엠탄신, trastuzumab emtansine, T-DM1)와 직접 비교한 3상 DESTINY-Breast03 임상시험에서 완승을 거두며 단숨에 왕좌를 석권해 주목받았다.
더욱이 엔허투는 캐싸일라가 넘어서지 못했던 위암,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대장암 등에서도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해 HER2 표적 ADC의 지경을 넓혔다.
다이이찌산쿄와 아스트라제네카 2019년 12월에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승인된 엔허투의 성과에 힘입어 현재는 다토포타맙 데룩스데칸(Datopotamab Deruxtecan)으로 알려진 새 ADC를 개발 중이다.
날로 증가하는 유방암과 HER2 양성 유방암 치료제의 혁신
유방암 환자는 전세계적으로 2020년 기준 약 230만명이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여성에서 가장 많이 생기는 암은 유방암, 갑상선암, 대장암, 위암, 폐암 순이다. 그 중 유방암은 24.5%를 차지하며 다른 암과 달리 꺾일 줄 모르고 날로 증가세다. 특히 한국은 40~50대 여성에서 두드러지게 환자가 많고 최근에는 40대로 발병층이 더 젊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유방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0~2기인 경우 5년 생존율이 90% 이상이지만, 전신 전이가 있는 절제 불가능한 4기에서는 34%에 그치고 있다. 전체 유방암의 20~22%를 차지하는 HER2 양성 유방암은 재발과 전이를 잘 일으키고 질병의 진행 속도가 빨라 예후가 더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역사에 길이 남을 유방암 치료제인 최초의 항 HER2 약물인 ‘허셉틴주’(Herceptin 성분명 트라스트주맙 trastuzumab)이 등장함으로써 치료 효과를 획기적으로 향상시켰다. 그러나 허셉틴에 듣지 않거나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새로운 약물의 필요했다.
엔허투는 DESTINY-Breast01 임상에서 이전에 T-DM1, 트라스투주맙, ‘퍼제타주’(Perjeta, 성분명 퍼투주맙, Pertuzumab)을 포함한 2개 이상의 항 HER2 요법을 투여받은 절제 불가성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 대한 지속적인 항종양 효과를 확인했다. 연구 결과, 엔허투는 60.9% 최종 객관적반응률(confirmed ORR)과 16.4개월의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을 나타냈다. 반응 지속기간 중앙값(mDOR)은 14.8개월이었다. 특히 이전 항암치료 약제수의 중앙값이 6(범위 2~27)에 달하는 중증의 환자에서도 지속적인 항종양 효과를 나타냈다. 즉 6가지 약제를 써도 듣지 않는 유방암에 통했다는 얘기다.
엔허투는 DESTINY-Breast03 임상에서 이전에 한 가지 이상의 항 HER2요법을 투여 받은 절제 불가능한 또는 전이성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트라스투주맙엠탄신(T-DM1)과 직접 비교(Head-to-Head)해 유의미한 무진행 생존기간(PFS) 개선 효과를 보였다.
2022년 업데이트된 중간분석 결과는 지난해 12월 8일, 샌안토니오 유방암 학술대회(SABC 2022)에서 공개됐다. 1차 평가지표인 독립적 중앙 맹검 평가에 의한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mPFS)은 엔허투 투여군이 28.8개월로 T-DM1 투여군의 6.8개월 대비 22개월 길게 나타났다. 주요 2차 평가지표인 전체생존기간(OS)은 엔허투군이 T-DM1군에 비해 사망위험을 36% 감소시킨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나타냈다.
총 524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특히 아시아인이 약 60%로 다수를 차지했으며 뇌전이 환자가 약 20%, 내장질환이 있는 환자가 70%를 차지했다.
이전 전신 치료 경험이 한 차례였던 환자가 절반 정도를 차지했으며, 세 차례 이상 전신 치료를 받았던 환자도 25~30%에 달했다. 이전에 사용한 전신 치료제로는 트라스트주맙이 거의 100%를 차지했으며, 퍼투주맙이 60%로 뒤를 이었다.
전체생존기간 중앙값은 양 군 모두 도달하지 않았으나, 엔허투 투약군의 사망 위험이 36% 더 낮았다(HR=0.64, 95% CI 0.47-0.87, P=0.0037).
1년 전체생존율은 엔허투가 94.1%, 캐싸일라는 86.0%, 2년 전체생존율은 77.4%와 69.9%로 집계됐다. 1년 무진행생존율은 엔허투가 75.2%, 캐싸일라가 33.9%, 2년 무진행생존율은 53.7%와 26.4%로 집계됐다.
객관적반응률은 78.5%와 35.0%(Nominal P<0.0001)로 이 가운데 완전반응은 21.1%와 9.5%, 임상적이득률(Clinical Benefit Rate, CBR)은 89.3%와 46.4%, 반응지속기간 중앙값은 36.6개월과 23.8개월로 모든 지표에서 엔허투가 캐싸일라를 압도했다.
치료 지속기간(Duration of Treatment DoT) 중앙값은 엔허투가 18.2개월로 캐싸일라의 6.9개월보다 두 배 이상 길었다.
전체 환자 중 20% 이상을 차지한 뇌전이 환자에서도 엔허투 투약군의 무진행 생존기간 중앙값은 15개월로 캐싸일라 투약군의 5.7개월을 크게 웃돌았다.
HER2 저발현 및 음성 유방암에 대한 도전
2022년 6월, 미국 임상종양학회 연례 학술회의(ASCO 2022)에서는 HER2 발현율이 낮은 환자에서도 기존 항암화학요법 대비 우월성을 입증, 2022년 8월 6일 세계 최초의 HER2 저발현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얻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엔허투는 HER 음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초기 임상에서 가능성을 확인하는 등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박연희 교수는 “유방암에서 엔허투의 97.3%의 질병조절률은 유방암은 물론 다른 고형종양에서도 본 경험이 없다”면서 “반응지속기간도 기존의 1차 치료제보다 2차 또는 3차 치료제인 엔허투에서 더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엔허투가 캐싸일라보다 다소 독하지만 유효성 이점이 이를 능가하고도 남아
최근에는 중국 연구진이 ADC 관련 대규모 연구들을 메타분석, 엔허투가 캐싸일라보다 이상반응 발현율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Lancet eClinicalMedicine에 보고했다.
이와 관련 박연희 교수는 “엔허투가 T-DM1(캐싸일라)보다 이상반응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엔허투의 치료적 가치는 이를 넘어선다”고 강조했다. 그는 “엔허투는 효과가 좋아 더 장기간 투여하기 때문에 그만큼 이상반응 발생률도 상승하는 것”이라며 “대부분의 독성은 위장관계 혹은 혈액학 관련 이상반응으로, 관리 가능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또 “치명적일 수 있는 간질성폐질환(ILD)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주로 일본인들에서 많이 발생했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아시아인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미국이나 유럽의 가이드라인에서는 엔허투를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2차 이상에서 반드시 권고해야 하거나 권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이를 따르지 못하는 나라는 의료 후진국이 될 것”이라며 엔허투의 조기 급여화를 주장했다.
한국다이이찌산쿄 김대중 대표는 이날 “순환기 및 대사질환에서 이력을 쌓아온 한국다이이찌산쿄가 2019년 항암 분야로의 출발을 선언한 이후 나온 첫 약제가 엔허투”라며 “앞으로 양대 축을 어떻게 꾸려나갈지 구상을 정리해서 조만간 공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