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계면활성제(Surfactant)는 유해물질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져 말 그대로 ‘공공의 적’이 됐다. ‘농약에 포함된 계면활성제가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발표됐는데 “농약중독과 이에 따른 사망이 실제로는 계면활성제의 독성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놔 주목을 끌었다.
계면활성제가 심각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넘쳐난다. 계면활성제가 모발과 두피에 손상을 주어 심각한 탈모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백내장과 뇌질환은 물론 암과 불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섬뜩한 주장도 있다. 심지어 농약 중독이 계면활성제의 독성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계면활성제를 완전히 포기해버리거나 독성이 약한 천연 계면활성제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언론과 인터넷이 지적하는 계면활성제의 문제는 대부분 세제·샴푸·치약·화장품 등에 많이 사용되는 '로르산' 계열의 계면활성제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로르산 계열의 계면활성제를 순수한 '합성 물질'이라고 보기 어렵다. 식용으로도 사용되는 코코넛유나 야자유와 같은 천연 식물성 기름에서 추출한 포화 지방산인 로르산(lauric acid)으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화장품, 세제, 샴푸, 치약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생활용품에 계면활성제가 포함돼 있다. 한때 SNS를 타고 생활용품 속 계면활성제가 암, 자궁질환, 탈모를 유발한다는 소식이 퍼지며 소비자의 불안을 키우기도 했다. 임이석 테마피부과 원장의 도움말로 계면활성제의 명과 암을 알아본다.
계면활성제는 물에 쉽게 녹는 친수성과 기름에 쉽게 녹는 친유성을 동시에 갖는 화합물이다. 계면(界面)은 한자 그대로 ‘경계를 이루는 면’으로 기체와 액체, 액체와 액체, 액체와 고체가 서로 맞닿는 면을 말한다. 양친매성 분자인 계면활성제는 물과 기름의 경계면에 달라붙어 표면장력을 약화시켜 분리돼 있는 두 물질을 섞이게 하거나 경계면으로의 흡착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계면활성제에는 △음이온 계면활성제 △양이온 계면활성제 △양쪽성 계면활성제 △비이온성 계면활성제가 있다.
음이온 계면활성제는 물에 용해될 때 친수기 부분이 음이온으로 해리된다. 세정력, 기포력이 우수해 세안용 비누, 세안크림, 면도크림, 샴푸, 치약, 세정제품 등에 사용된다. 보통 기포가 잘 나는 알킬황산에스테르염(AS)과 자극이 적은 폴리옥시에텔렌알킬에테르황산에스테르염(AES)를 조합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양이온 계면활성제는 음이온 계면활성제에 비해 세정력이 약하고 자극도 심하지 않은 편으로 모발에 흡착해 유연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헤어린스에 이용된다. 샴푸 후 음이온 계면할성제가 두피에 잔존해 탈모나 가려움을 유발할 수 있으나, 샴푸 후에 쓰는 린스는 양이온 계면활성제를 함유해 두피에 남은 음이온 계면활성제를 중화해 정전기 발생을 막는다.
양쪽성 계면활성제는 분자 내 양이온성 관능기와 음이온성 관능기를 각각 1개 혹은 그 이상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음이온 계면활성제와 조합해 안전성 향상 및 점도 증가 등의 보조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자극성이 낮으므로 단독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기포와 세정력 측면에서는 음이온성에 비해 떨어지지만 저자극성이고 특히 눈에 대한 자극이 적어 베이비샴푸의 주요 원료로 사용된다.
비이온 계면활성제는 분자 중 이온으로 해리되지 않는 수산기(-OH), 에테르결합(-O-), 아마이드 결합(-CONH-), 에스테르 결합(-COOR) 등을 갖고 있다. 비이온성 계면활성제의 친유기, 친수기 밸런스 차이에 따라 용해도·습윤력·침투력·유화력·가용화력 등의 성질이 달라진다. 유화력이 우수해 크림·로션 등의 유화제 또는 화장수, 스킨, 향료 등에 가용화제로 사용된다.
이런 계면활성제는 크게 천연계면활성제와 석유에서 만들어진 합성계면활성제로 나뉜다. 목적에 따라 샴푸, 주방용품 등 세정용으로 쓰거나 화장품의 수용성원료 또는 오일이 잘 섞이게 하는 유화제로 사용된다. 합성계면활성제는 분자량이 낮고 기포력은 좋으면서도 저렴하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세정용 화장품에는 천연 대신 합성계면활성제가 사용된다. 흔히 인체에 해롭다고 하는 계면활성제는 바로 합성계면활성제를 말하며 대부분 석유에서 추출된다.
합성계면활성제는 대부분 ‘세정제’와 ‘유화제’에 속한다. 오염물질(기름때)과 오염된 표면의 장력을 약화시켜 서로 분리시키는 성질을 이용해 세정제를 만든다. 영양크림, 로션 등 화장품은 수용성 성분과 지용성 성분 배합을 위해 필수적으로 두 성분을 유화시켜야하므로 합성계면활성제가 사용된다.
이런 합성계면활성제의 유해성은 널리 알려져 있다. 소듐라우릴설페이트(Sodium Lauryl Sulfate, SLS)는 내분비계교란과 같은 독성영향 보고는 없지만 피부염과 알레르기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 성분은 치료 효과를 시험하는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에서 피부를 자극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그러나 미국 독성물질 국가관리 프로그램(National Toxicology Program, NTP)이 펴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소듐라우릴설페이트는 유전 독성실험에서 유해성을 나타내지는 않았다.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Sodium Laureth Sulfate, SLES)는 피부자극뿐 아니라 건조효과, 경피수분손실, 피부단백질 변성 등의 원인이 된다. 피부 유분을 녹여 자극을 높일 수 있다. 또 모낭과 피부를 직접적으로 손상시키거나 눈가·피부·두피 등에 자극을 줄 수 있다. 또 손·얼굴·팔의 부종 등을 유발할 수 있다. SLES는 샴푸에 주로 사용되는 성분이다. 샴푸를 사용하면 탈모가 생긴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SLES 자체가 탈모 유발 물질은 아니다. 샴푸에는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 최소 농도의 계면활성제만 들어 있다. 샴푸처럼 사용 후 씻어 내는 제품에만 사용하기 때문에 물로 충분히 헹궈주면 탈모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폴리에틸렌글리콜(polyethylene glycol, PEG)은 단독으로는 독성이 약하지만 생산 과정에서 에틸렌옥사이드(ethylene oxide) 와 다이옥산(dioxane)과 같은 독성물질이 최종생성물인 폴리에틸렌글리콜에 포함될 수 있다. 에틸렌옥사이드와 다이옥산은 국제암연구소(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 IARC)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한 위험물질이다.
계면활성제는 강한 세정력과 유화력으로 피부장벽을 파괴한다. 피지막과 각질층으로 이뤄진 피부장벽은 외부의 물리적·화학적 공격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고 체내물질 유출을 방지하며 피부 수분증발을 막는다. 각질층은 크게 각질세포와 세포 간 지질로 나뉜다. 각질세포 사이 공간을 채워 세포 간 결합력을 높여주는 세포 간 지질은 주로 세라마이드, 콜레스테롤, 유리지방산으로 이뤄져 있다. 여러 층의 각질세포 사이를 세포 간 지질이 촘촘하게 메워 견고한 상태일 때 피부장벽은 제 역할을 해낼 수 있다.
합성계면활성제는 강력한 세정력과 침투력을 앞세워 수용성 보습성분은 물론 지용성인 세포간 지질도 녹여 균형을 무너뜨린다. 단단한 각질층을 파고들어 보호막을 파괴하고 촘촘한 구조를 무너뜨려 피부 속 수분증발을 촉진, 피부를 건조하게 만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장품에 포함된 향료, 화학첨가물, 색소 등이 피부장벽이 무너진 틈을 타 피부 속으로 침투해 피부노화를 촉진한다. 아무리 비싼 화장품도 그 안에 합성계면활성제를 품고 있다면 피부는 불순물로 인식할 뿐이다. 피부가 연약한 사람일수록 장기간 사용 시 부작용이 생길 확률이 높다.
이토록 피부에 위협적인 계면활성제로부터 피부를 지키려면 불필요한 사용을 자제하는 게 최선이다. 가능하다면 유해성이 높다고 알려진 계면활성제 성분을 피하는 게 가장 좋다. 우선 화장품이나 샴푸 뒷면에 부착된 성분표와 친해져야 한다.
세정제에 사용되는 소듐라우릴설페이트, 소듐라우레스설페이트, 암모늄라우릴설페이트(Ammonium lauryl sulfate, ALS), 암모늄라우레스설페이트(Ammonium laureth sulfate, ALES)는 공통적으로 ‘○○○설페이트(sulfate)’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유화제에 흔히 사용되는 폴리에틸렌글라이콜로 주로 ‘PEG-숫자’ 형태로 표기된다. 숫자가 작을수록 액상형이고 높을수록 고체형에 가깝다. 액상형이 몸에 상대적으로 유해할 수 있다. 이들 물질이 포함된 제품은 잦은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다.
천연계면활성제로 대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생계면활성제(生界面活性劑)’라고도 불리며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순수한 계면활성제다. 세포의 막을 구성하고 있는 인지질(phospholipid) 성분인 레시틴(lecithin)은 콩이나 달걀의 노른자에 많이 함유돼 있다. 인삼·도라지에서 얻을 수 있는 사포닌(Saponin) 성분과 동물의 내장(십이지장) 등에서 추출한 담즙산(bile acid·지방분해) 성분도 천연계면활성제로 활용된다. 이들 성분은 기포력이 풍부하고 안전한 반면 침투력이나 세정력이 떨어진다는 게 단점이다.
비교적 유해성이 낮은 천연 유래 계면활성제를 사용할 수도 있다. 비록 합성이기는 하지만 자연에서 얻어지는 천연원료를 기반으로 무해한 공정을 거쳐 만든다. 크게 식물성 과당과 야자나무 지방산 등을 축합해 만든 글루코사이드(Glucoside)계열과 코코넛오일·사과·전분 등의 지방산에서 얻은 아미노산(Amino acid)계열로 나뉜다.
일부 화장품 회사에서 극미량의 천연 유래 계면활성제와 다량의 합성계면활성제를 섞은 제품을 마치 천연화장품인 듯 광고하는 경우가 있어 구입 전 성분표를 꼼꼼히 확인하는 센스가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