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흥행 열풍을 불러일으키면서 그 장면속에 나오는 달고나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달고나 만드는 주재료가 흑설탕이다.
너도나도 ‘흑당(黑糖)’ 열풍에 동참하면서 흑당 첨가식품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단맛이 강하고 체내 흡수가 빨라 혈당을 급격히 높이기 때문에 비만, 당뇨병, 고혈압, 심뇌혈관질환 등 만성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흑당은 사탕수수·사탕무 즙을 가열해 검은 빛깔이 될 때까지 졸인 뒤 식힌 것을 말한다.
정제과정을 거치지 않아 일반 설탕 대비 건강한 설탕이라고 알려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정제설탕은 같은 즙을 결정 형태로 굳힌 뒤 백설탕으로 만들거나, 여기에 당밀(설탕 가공 시 부산물로 나오는 찐득한 시럽)을 첨가해 황설탕으로 만든 것으로 정제 과정에서 비타민과 미네랄, 아미노산 등 영양소가 사라진다.
이에 열량이 높고 영양가는 떨어지지만 소화흡수는 빨라 건강에 해롭다. 흑당 제품을 홍보하는 업체는 비타민, 미네랄, 칼륨, 칼슘, 철 등 영양을 담아 ‘건강한 당’이라는 장점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이는 극소량에 불과하고 결국 90%이상이 당분이다. 정제 설탕 대비 단맛이 덜한데도 출시된 음료 등은 ‘극강의 단맛’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설탕보다 많은 양의 흑당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흑당 열풍이 시작된 건 대만 음료 브랜드 ‘타이거 슈가’가 국내에 진출하면서 부터다.
주력 상품인 흑당 버블티는 대만 전통 버블티의 한 종류다. 홍차에 우유, 타피오카를 넣고 진하게 조린 흑당 시럽을 넣는다. 다소 과한 단맛을 내는데 생크림을 추가하기도 한다. 흑당 시럽을 홍차에 넣을 때 진한 시럽이 퍼지는 모습이 호랑이 무늬같다고 해서 타이거 슈가로 불린다. 매장에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해당 음료 사진을 올리면 서비스 음료를 주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이에 SNS에선 인증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브랜드는 서울 마포구 홍대 입구에 1호점을 열고 3개월 만에 강남, 용산, 명동, 대학로 등에도 지점을 늘려 나가고 있다.. 점심·저녁 시간엔 흑당 버블티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가게 앞에 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에 질세라 기존 음료 프랜차이즈도 흑당 대열에 속속 진출하고 있다.
2012년 한국에 진출해 버블티 열풍을 일으켰던 공차는 대만 브랜드라는 프리미엄을 활용해 ‘브라운슈가 쥬얼리 밀크티’, ‘브라운슈가 치즈폼 스무디’ 등을 출시했다.
국산 브랜드인 이디야커피, 커피빈, 빽다방, 드롭탑, 요거프레소, 파리바게트 등도 흑당을 첨가한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커피빈은 ‘블랙슈가펄라떼’·‘샷블랙슈가펄라떼’ 2종, 빽다방은 ‘블랙펄라떼’·‘블랙펄카페라떼’·‘블랙펄밀크티’, 드롭탑은 ‘블랙슈가 아이스탑’, 파스쿠찌는 ‘흑당이달고나빙산’, 이디야커피는 ‘흑당 밀크티 빙수’ 등 관련 제품을 선보였다.
하지만 흑당의 영양적 장점이나 건강함을 강조하는 것은 교묘한 눈속임으로 보인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차·커피빈·빽다방 등 주요 6개 브랜드에서 시판 중인 흑당 음료의 당분 함유량은 한 잔 당 30~50g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시한 하루 권장 당 섭취량인 25g을 초과한다.
평균 열량은 300~450kcal로 밥 한 공기(약 300Kcal)에 해당한다. 식사 후에 마시면 밥을 두 공기 먹는 것과 같다. 과자도 마찬가지여서 맛동산 흑당쇼콜라 1봉지의 당은 69g, 칼로리는 약 1400Kcal로 WHO 1일 권장 당 섭취량의 2배를 초과하고 밥 4공기 반에 해당하는 열량을 품고 있다. 어떻게 섭취하든 건강에 해로울 수밖에 없다.
정소영 보건환경연구원 식품의약품부 영양평가팀 연구사는 “자연의 단맛, 건강한 단맛을 앞세워 흑당이 유행하고 있지만 사실은 음료 한 잔에 3g짜리 각설탕이 14개 들어가는 셈”이라며 “당을 과다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가정의학과 의사는 “흑당도 당분이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비만 등을 유발하는 건 마찬가지”라며 “흑당 제품을 건강한 당이라고 인식하면 평소보다 많이 섭취하게 돼 오히려 더 해로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데도 계속되는 흑당 제품의 인기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힘들수록 자극적인 맛에 집중하는 불황형 심리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불황이 지속될수록 소비자는 즉각적 반응을 느낄 수 있는 달고, 맵고, 짠 자극적인 맛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업계는 자극적인 제품은 인기가 오래가지 않는 점을 들어 올해가 지나면 인기가 시들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통상적으로 음료 제품 트렌드는 길어야 1~2년이면 바뀌는 데다 과도한 단맛에 고칼로리 제품이라 오래 인기를 끌 품목은 아니라고 관측했다. 전방위적 경제불황에 코로나까지 확산 스트레스를 자극적인 맛으로 극복해보려는 심리가 건강까지 망칠 수 있어 유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