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럼증은 주위 사물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증상을 통칭하는 말로 일상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증상이다. 의학용어로는 ‘현훈(鉉暈, Vertigo)’이라고 하는데 성인 인구의 25%가 한 번은 경험해봤고 이 중 절반은 어지럼증으로 신체활동이나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통계도 있다.
우리 몸의 균형 감각은 내이의 전정기관·뇌기능·자율신경·근 골격계 등 다양한 신체 기관들이 협업하며 유지되는데 이 기관 가운데 한 곳이라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면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어지럼증은 일시적인 증상으로 나타났다 진정되는 탓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또 잘못 알려진 상식으로 인해 어지럼증을 빈혈로 오해해 자가 치료를 하다가 병을 더 키우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어지럼증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어지럼증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면 반드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뇌가 보내는 이상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승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신경과 교수는 “어지럼증은 함께 찾아오는 다리 풀림이나 구토, 실신처럼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증상이 특히 문제가 되지만 뇌기능 이상 등 뇌질환의 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어지럼증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따라서 어지럼증으로 일상생활에 지속적인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조기에 병원을 찾아 정확한 검사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그에 따라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나승희 교수의 도움말로 잘못 알려진 상식으로 방치 또는 자가 치료를 하다 자칫 큰 병을 자초할 수도 있는 어지럼증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어지럼증은 빈혈이 원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상식으로 인해 어지럼증은 빈혈이 원인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어지럼증이 놀이기구를 탔을 때와 비슷하게 주변이 빙빙 도는 ‘현훈’증상이 나타날 수 있고 몸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어지럼증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앉았다 일어날 때 일시적으로 주변이 핑 도는 느낌의 어지럼증을 느끼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증상들이 빈혈과 비슷해 철분제 복용 등을 통한 자가 치료를 시도하는 환자들이 많은데 어지럼증과 빈혈은 차이가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빈혈은 혈액 내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의 헤모글로빈 수치가 감소하면서 발생하는 증상으로 빈혈의 주요 증상이 어지럼증이라고 알려졌지만 빈혈로 어지럼증이 생길 가능성은 작다.
보통 앉았다 일어날 때 '핑'하고 도는 어지럼증을 빈혈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기립성 저혈압에 의한 어지럼증인 경우가 많으며 혈액 속 산소량이 부족해 발생하는 빈혈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 따라서 빈혈을 어지럼증의 원인으로 단정질 수 없다.
체증이 어지럼증의 원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역감, 구토와 함께 어지럼증이 있으면 체한 것으로 생각하고 체증이 어지럼증의 원인이라고 단정짓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은 체증으로 보기 어렵다. 대한신경과학회에서는 “체할 경우 구역과 구토의 증상이 발생할 수는 있으나 어지럼증이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지럼증은 잘 먹으면 낫는다?
영양결핍이나 기력이 떨어져서 어지럼증이 발생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이유로 어지럼증이 나타나면 보약이나 각종 건강기능식품과 사골, 흑염소 등을 섭취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인체 내 영양분이 부족하면 어지럼증을 느낄 수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지럼증은 영양분의 부족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어지럼증의 실제 원인인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영양결핍이 어지럼증의 원인으로 잘못 인식하고 음식을 많이 섭취할 경우 추후치료에 있어서 방해가 될 수도 있어 조심해야한다.
어지럼증은 추워지면 더 심해진다?
요즘과 같은 겨울철이 되면 어지럼증이 심해진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자율신경계나 심뇌혈관에 문제가 있는 경우 더 어지러움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온이 내려가고 추워지면 신체의 자율신경기능이 증가하게 되고 교감,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무너지며 몸의 긴장도가 증가해 신체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일교차가 심할 때에는 심뇌혈관질환이 증가하기 때문에 어지럼증이 증가할 수 있다.
귀의 이상으로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다?
귀 질환으로 발생 가능한 어지럼증으로는 이석증을 들 수 있다. 이석증은 전정기관에 이석이 있어 몸이 흔들림을 감지하는데 이석이 떨어져나가 부유성 석회화 물질이 돼 세반고리관으로 들어가는 질환을 말한다. 주변이 빙빙 돌고 한쪽으로 기울여지며 땅이 울렁거리며 특히 아침에 증상이 심해진다.
전정신경에 염증이 발생하는 전정신경염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심한 어지럼증과 구역, 구토가 자연적으로 발생해 수 시간 동안, 길게는 하루 이상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전정신경염은 저절로 호전되기 때문에 환자가 증상을 견딜 수 있으면 특별한 치료를 하지 않아도 무방하며 전정신경 재활운동을 통해 전정기관을 강화하면 예방할 수 있다.
메니에르병도 어지럼증을 초래할 수 있다. 메니에르병은 귀에 물이 찬 듯이 먹먹하게 느낌이 동반되는 증상으로 초기에는 귀가 먹먹한 느낌이 들고 점차 청력이 떨어지고 이명이 생기게 된다. 그러다 결국 압력이 강해지면서 달팽이관이 터지게 되는데 이때 극심한 어지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가볍게 넘겨서는 절대 안 되는 어지럼증이 있다?
뇌혈관질환의 전조증상으로 나타나는 어지럼증은 절대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극심한 어지럼증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심하게 나타나는 경우 △어지러우면서 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는 경우 △어지럼으로 도움 없이 혼자 서 있거나 걷기 어려운 경우 △구토감이 매우 심하거나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경우 △말이 어눌하거나 상·하지의 위약감이 동반되는 경우 △눈앞이 캄캄하고 아찔한 경우 등의 증상을 하루나 일주일 단위로 자주 경험한다면 반드시 전문의를 찾아 어지럼증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어지럼증은 뇌질환의 전조증상이다?
어지럼증의 원인 중 뇌의 구조적, 기능적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어지럼증을 중추성 어지럼증이라고 한다. 어지럼증을 느끼는 사람 4명 중 1명이 뇌의 문제로 발생하는 중추성 어지럼증에 속한다. 마치 술에 취한 듯 걸을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거나 손으로 물건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또 발음이 어눌해지고 물체가 겹쳐서 두 개로 보이기도 하며 감각 이상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증상만으로 중추성 어지럼과 전정기관의 이상으로 생기는 말초성 어지럼의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따라서 말초성 어지럼증으로 진단이나 치료를 받고 나서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경우라면 뇌질환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뇌졸중·뇌종양·퇴행성 뇌질환 등이 중추성 어지럼증을 발생시키는데 이러한 뇌질환은 치료시기를 놓치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기고 심한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어지럼증 자주, 반복해 발생하면 뇌졸중·뇌종양을 의심해야 한다?
뇌경색과 뇌출혈을 포함하는 뇌졸중은 전조증상이 드물고 건강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발생해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경우 어지럼증이 나타난다면 뇌졸중의 초기 증상일 수 있다.
뇌혈관에 이상이 생겨 어지럼증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지만 어지럼증이 자주,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면 뇌졸중을 의심해야 한다. 이러한 증상은 뇌혈관이 좁아져 혈액순환에 이상이 있거나 뇌혈관이 파열돼 나타나는 신호로 최대한 신속하게 의료기관을 찾아 치료를 받아야 한다.
뇌종양이 있어도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다. 뇌종양으로 인해 두개골 내 한정된 공간에 생긴 종양이 뇌의 일부를 눌러 압력이 상승하면 어지럼증과 함께 심한 두통이 발생하게 되는데 특히 뇌종양에 의한 두통은 구토 증상을 동반하며 새벽 시간에 통증이 심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 환자에게도 지속적인 만성 중추성 어지럼증이 나타날 수 있는데 초기에는 증상이 경미해 치료시기를 놓치기 쉽다. 소뇌 위축이나 운동실조증 등의 드문 질환에서는 초기 단계에서 단독 어지럼증만으로 발병하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