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진 근육이 탈장 부른다. 뱃속의 소장, 대장 등 장기는 신체의 아래나 앞쪽으로 흘러내리거나 나오지 않도록 복벽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탈장은 이러한 복벽의 약한 부위에 틈이 생겨 이 사이로 장기의 일부가 빠져 나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탈장이 흔히 유아나 아동들에게 잘 일어나는 질환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탈장은 오히려 어린이들보다 성인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는 질병이다.
외과의사가 되고 싶은 의학도라면 반드시 마스터해야 할 ‘3대 수술’이 탈장수술, 충수절제술, 담낭절제술이다. 그만큼 환자 수가 많고 임상현장에서 접하게 되는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탈장은 연령대를 불문하고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하는 질환 중 하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 해에만 7만500여명의 환자가 탈장을 진단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탈장은 신체 내 장기가 제자리에 있지 않고 내장을 지지해주는 근육층인 복벽의 약해진 틈을 통해 빠져나오는 질환이다. 신체의 어느 곳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데 사타구니(넓적다리와 복부가 만나는 부위) 부위에 나타나는 서혜부탈장이 가장 흔하고 대퇴탈장(대퇴부), 제대탈장(배꼽) 등도 발생빈도가 높은 편이다. 대퇴탈장은 대퇴관 후복벽 중 약한 부위로 복강내 장기가 빠져나온다.
서혜부탈장보다 더 아래쪽에 나타나며, 마르고 나이 많은 여성에서 유병률이 높다. 탈장내공(탈장이 생긴 복벽 입구)에 장이 끼어 복강내로 다시 들어가지 못하는 감돈탈장의 발생 빈도도 높은 편이다. 제대탈장은 분만 시간이 매우 긴 임산부, 복수가 많이 찬 간경변증 환자, 출산 횟수가 많은 여성 등 복부가 팽창해 복벽이 얇아진 사람에서 자주 발생한다.
배꼽 주위로 튀어나온 탈장이 만져진다. 반흔탈장은 보통 수술흉터 부위에 발생한다. 수술 후 감염, 당뇨병, 방사선 조사, 고령, 비만, 불완전한 상처 봉합, 수술 중 대량 출혈, 스테로이드 복용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서혜부탈장은 유·소아에서 쉽게 발견된다. 기저귀를 갈거나 목욕을 시킬 때 아기의 사타구니 좌·우측이 심하게 비대칭이면 소아 서혜부탈장을 의심하고 최대한 빨리 수술받는 게 좋다. 유소아 탈장이 많은 것은 엄마 뱃속에서의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다.
임신 7~9개월 기간에 뱃속에 있는 남아의 고환은 음낭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여아의 경우 난소가 골반 내로 자리를 옮겨가고, 이 때 난소와 연결된 자궁원인대가 대음순의 가장자리까지 이동하게 된다. 남아의 고환이 이동하면서 지나온 길을 ‘초상돌기’, 여아는 ‘누크관’이라고 한다. 이들 길은 태아가 자라면서 저절로 닫히는데 간혹 길이 닫히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게 된다.
이럴 경우 남아 있는 초상돌기와 누크관으로 뱃속의 장기가 빠지는 서혜부탈장이 발생할 수 있다. 전체 신생아의 1~5%에서 서혜부탈장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아 서혜부 탈장 환자 중 약 10%는 가족력을 가지고 있으며, 남자아이의 발생률이 여자아이보다 5배가량 높다. 평균 발견 연령은 만 3.3세이며, 전체 환자의 3분의 1은 출생 후 6개월 이내에 발견된다.
임신 37주 이전에 태어난 미숙아는 서혜부탈장 발생빈도가 16~25%로 훨씬 높다. 오채연 고려대 안산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신생아나 영아는 장기가 탈장돼도 증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발견이 쉽지 않다”며 “어릴 때 나타난 탈장은 저절로 나아진다고 잘못 알고 있는 부모가 많은데 장기간 방치할 경우 장 괴사, 천공, 복막염 등 여러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발견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20~30대 건장한 젊은층이 갑작스러운 탈장으로 병원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젊은층 탈장의 주원인은 과도한 운동이다. 여름철 다이어트를 이유로 과도하게 운동량을 늘리거나, 복압을 급격히 상승시키는 동작을 자주 반복하면 복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스포츠탈장’이 발생할 수 있다. 유소아 탈장처럼 스포츠탈장도 서혜부탈장이 가장 많다.
대부분 서혜부 내 얇은 근육이나 인대가 무리하게 뒤틀리면서 찢어져 발생한다. 처음엔 탈장이 생겨도 별다른 증상이 없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백세진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평소엔 아무렇지 않다가 운동할 때에만 사타구니 부근에 뻐근한 통증이 나타나는데, 대부분 금세 회복돼 단순 근육통으로 오인할 가능성이 높다”며 “복압이 높아질 때 사타구니 쪽이 잠시 볼록해지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치료시기를 놓쳐 탈장을 방치하면 빠져나온 장이 제자리로 돌아가지 않아 혈액순환장애 및 장기괴사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탈장은 종류, 발병 부위와 상관 없이 조기진단 후 수술이 최선의 치료법이다. 만성기침, 변비, 요 출구 폐색 등은 복압을 높이는 요인이 되므로 수술 전에 개선해야 한다. 탈장수술은 피부절개 후 튀어나온 장을 복강 내로 복원시킨 뒤 고정 및 봉합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기존 개복수술에서 피부절개를 최소화하는 복강경수술로 표준치료법이 전환되는 추세다. 대부분 수술 당일 퇴원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수술 후 재발률은 약 1.0~5.5% 정도로 수술법에 따른 차이는 없다. 오채연 교수는 “운동 전후 스트레칭을 해주면 복부와 복벽에 갑작스런 충격이 가해지는 것을 줄일 수 있다”며 “운동 중 평소와 달리 배 안에서 묵직한 느낌이 들고 사타구니 쪽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면 전문의에게 근육 문제인지 탈장 때문인지 정확한 진단을 받아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