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KRAS 억제제로 지난 5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비소세포폐암(NSCLC) 단독요법제로 승인받은 암젠의 ‘루마크라스정’(Lumakras 성분명 소토라십 Sotorasib)가 새로운 병용요법으로 대장암에서도 효과를 입증했다.
암젠은 16일(미국 현지시각) 유럽임상종양학회(ESMO 2021)에서 루마크라스와 EGFR 억제제 ‘벡티빅스주’(Vectibix, 파니투무맙(panitumumab) 병용요법이 KRAS G12C 돌연변이 대장암 환자에서 뛰어난 효과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CodeBreak 101로 명명된 1b/2상 연구에서 소토라십+파니투무맙 병용요법이 이전에 2가지 이상 치료를 받은 대장암 환자 31명이 등록됐다. 임상시험 결과 유효성 분석이 가능한 26명의 환자 중 27%가 종양이 위축되는 치료반응을 보여 루마크라스 단독요법의 9.7%보다 훨씬 높았다. 루마크라스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대장암 환자 18명에서 병용요법의 객관적치료반응률(ORR)은 33%로 더 높았다. 전반적으로 이 병용요법의 질병통제율(disease control rate, DCR)은 81%였다.
루마크라스는 KRAS로 불리는 암 관련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차단하는 약물로 처음 승인됐다. KRAS 유전자는 세포의 성장과 분열에 관여한다. 그렇지만 이를 표적으로 삼는 게 어려워 여러 제약사들이 40여년 동안 표적억제제 개발에서 고배를 마셔왔다. 그러다 암젠은 KRAS와 GTP 결합을 방해할 수 있는 저분자 결합 포켓(binding pockets)을 찾았고, 덕분에 연구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보통 신약 개발이 10~15년 걸렸다면, 루마크라스는 임상에 진입한지 3년도 안 돼 FDA로부터 승인받았다.
암젠은 지난 5월 28일 KRAS G12C 돌연변이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2차 치료제 단독요법제로 승인받았다. 이들 환자의 약 36%(ORR)에서 폐종양이 줄어들 수 있다는 임상결과가 바탕이 됐다.
그러나 대장암(결장직장암 colorectal cancer, CRC)에 대한 데이터는 훨씬 덜 인상적이어서 암젠은 대장암에서 단독요법제로는 더 이상 개발하지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 루마크라스+벡티빅스 병용요법이 고무적인 결과를 내놓자 조만간 3상 임상시험에 들어가 대장암의 3차 치료제로 승인받는 것을 새 목표로 삼았다.
대장암은 증상이 초기 단계에서 나타나지 않고 증상이 일부 감지되더라도 비특이적인 양상을 보인다. 게다가 환자의 약 25%는 진단과 동시에 전이성 양상을 보이고, 50%는 향후 전이성으로 진행한다. 항암치료 후에도 전이가 진행될 경우 무진행생존기간(PFS)이 2개월을 넘기 힘들고 ORR도 2% 미만에 그친다.
전이성 대장암 표적치료제는 크게 혈관내피성장인자(Vascular Endothelial Growth Factor, VEGF), 상피세포성장인자수용체(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EGFR)를 타깃으로 한 것으로 나뉜다. 루마크라스 등장으로 KRAS가 새 타깃으로 추가됐다.
전이성 대장암은 항암제가 환자에게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유전자검사가 사전에 이뤄져야 한다. 유전자 변이 여부에 따라 최적의 약제를 선택해 맞춤치료했을 때, 긍정적인 치료 예후와 생존 연장을 기대할 수 있다.
전이성 대장암 환자의 치료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는 RAS, BRAF, MSI가 있다. 약 50%의 전이성 대장암 환자는 RAS 정상형(wild-type)이며, BRAF 돌연변이는 약 5% 정도인 것으로 확인된다. KRAS G12C 변이는 대장암 환자의 5% 이하에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소토라십의 경쟁자로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소재 미라티테라퓨틱스(Mirati Therapeutics)가 개발한 KRAS G12C 억제제 항암 신약후보물질인 아다그라십(Adagrasib, 코드명 MRTX849)이 있다. 작년 10월 발표한 1b/2상 임상시험 결과 재발성 비소세포폐암에서 ORR은 45%로 산출됐다. DCR은 96%로 나타났다. 치료반응률 45%(43~62%)는 암젠의 32~50%를 압도하는 수치다. 이밖에 릴리, 존슨앤드존슨(J&J), 베링거인겔하임 등도 KRAS 억제제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