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엘의 ‘비트락비캡슐’ ‘비트락비액’(Vitrakvi, 성분명 라로트렉티닙 Larotrectinib)이 간접비교에서 같은 신경영양티로신수용체키나제(Neurotrophic Tropomyosin-Related Kinase, NTRK) 억제제 종양불문(tumor agnostic) 항암제인 로슈의 ‘로즐리트렉캡슐’(성분명 엔트렉티닙, entrectinib)을 능가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바이엘은 유럽임상종양학회(ESMO2021)에서 비트락비와 암의 위치(암종)에 관계없이 로즐리트렉 대비 사망위험을 57% 감소시켰다고 16일 발표했다. 두 약은 NTRK 유전자 융합이 있는 모든 고형종양에서 쓸 수 있도록 미국에서 가속승인을 받았으며 바이엘은 비트락비가 로즐리트렉보다 훨씬 오래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고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강조했다.
이번 결과는 1대1 임상시험이 아닌 이른바 매칭조정간접비교(matching-adjusted indirect comparison, MAIC)에서 결론이 나왔다. MAIC 분석은 기저치의 특징을 기반으로 환자의 데이터를 일치시켜 정규적인 교차시험의 비교 방식을 개선하는 통계 방식이다. 즉 기저치가 일치하는 환자만을 모집단으로 삼고 그렇지 않은 환자는 샘플에서 버린 상태로 비교한다.
이번 연구를 위해 2020년 7월을 통계 마감 시한으로 잡고 3개의 비트락비 관련 임상시험(LOXO-TRK-14001, SCOUT, NAVIGATE)의 데이터를 통합하고 이를 통계 마감 시한인 2018년 10월로 설정된 3개의 로즐리트렉 임상시험(ALKA-372-001, STARTRK-1, STARTRK-2) 데이터와 비교했다.
연구자들은 성별, 연령, 인종, 종양 유형, NTRK 유전자 하부유형(Subtype), ECOG 신체기능수행점수, 이전 치료 차수(치료받은 항암요법 종류), 전이 상태 및 뇌전이를 포함해 환자를 일치시킬 수많은 요인을 고려했다. 전체적으로 117명의 비트락비 투여군과 74명의 로즐리트렉 투여군이 유효성 분석 대상에 포함됐다.
그 결과 로즈릭트렉 투여군은 중앙값 14.2개월의 추적관찰 기간 동안 중앙값 23.9개월을 살았다. 반면 비트락비는 중앙값 추적기간 16.9개월 시점에서 여전히 생존기간 중앙값에 도달하지 못했다. 이는 사망위험을 57% 감소시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비트락비는 암 진행을 억제하는 개선 효과를 보여줬지만 수치는 통계적으로 아직 유의하지 않았다.
비트락비는 67.3%의 환자에서 치료반응(종양 위축)을 보인 반면 로즐리트렉은 53.6%였다. 그러나 훨씬 더 많은 환자들이 비트락비를 복용하는 동안 암의 징후를 경험하지 않았다. 비트락비는 완전반응률이 20.3%인 반면 로즐리트렉은 6.8%였다. 32.5개월차 시점에서 비트락비 반응은 지속돼 로즐리트렉의 12.9개월보다 더 오래 갔다. 비트락비의 반응지속기간(DoR) 중앙값은 49.3개월로 나타났고 무진행생존기간 중앙값 25.8개월로 연장됐다.
표본군에 속하지 않은 다른 환자까지 포함한 안전성 결과는 모두 대등하고 낮았다.
이같은 연구결과에 대해 로슈 측은 바이엘의 연구가 소수의 환자 샘플을 기반으로 한 후향적 분석이어서 한계가 있다고 반응했다. 교차시험 비교의 한계를 감안할 때 두 약에 대한 1대1 직접 비교, 전향적 연구가 필요한데 현재는 이뤄진 게 없다고 반박했다.
로슈의 자회사인 제넨텍은 뇌로 전이된 종양에 대한 로즐리트렉의 더 나은 반응을 강조했다. 로즐리트렉이 혈액뇌장벽(BBB) 통과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할 때 뇌 전이 환자에겐 로즐리트렉이 비트락비보다 나은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제약사가 허가를 위한 임상시험 규정에 정해진 게 아니라면 굳이 동일 계열 약물과 1대1 직접 비교할 이유는 없다. 이런 연구는 비용이 많이 들고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이점을 보여주다가 실패해 자칫 더 위험해질 수 있다. 두 약은 전체 암환자의 약 1%가량을 차지하는 드문 TRK 융합 암을 적응증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1대1 무작위 대조시험이 거의 불가능하다. 바이엘은 비트락비가 로즐리트렉보다 더 나은 약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동기에서 이번 간접비교에 나섰다.
비트락비는 미국에서 2018년 11월 26일, 국내에서 2020년 5월에 각각 허가받았다. 로즐리트렉은 2019년 8월 15일에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았고 국내서는 2020년 10월에 허가됐다.
바이엘은 월 약가가 3만2800달러로 책정했으며 후발인 로즐리트렉은 그 절반에 가깝게 할인한 월 1만7050달러로 매겼다. 로즐리트렉은 ROS1 양성 국소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에 대한 적응증을 추가해 2021년 상반기에 2200만스위스프랑(24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지난주 투자기관인 제프리스(Jefferies)의 애널리스트인 피터 웰포드(Peter Welford)는 연간 최고매출이 4억7500만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이엘은 작년과 올해 비트락비 매출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올 1월 RBC Capital Markets의 분석가인 브라이언 아브라함(Brian Abraham)은 연 최고매출이 월가 추정치와 유사한 7억5000만달러일 것으로 추정했다.
NTRK 유전자는 TRK 단백질을 통해 신경계 생리, 발달, 기능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 없는 유전자가 합쳐지는 NTRK 유전자 융합이 일어나면 융합 TRK 단백질을 만들어 비정상적인 신호를 전달하게 된다. 결국 하류 경로가 과활성되면서 세포 성장과 생존에 문제를 일으키며 암으로 이어진다.
모든 암은 NTRK 유전자 융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지만 암종별로 빈도의 차이가 있다. 비교적 흔한 비소세포폐암이나 직결장암에서 NTRK 유전자 융합이 일어난 경우는 0~2%로 매우 적다. 반면 분비성 침샘암, 분비성 유방암, 유아형 섬유육종 등 주로 희귀암에서 NTRK 유전자 융합이 더 자주 발견된다. 전체적으로는 모든 암의 약 1%가 NTRK 유전자 융합에 의해 초래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서는 50명 안팎의 암 환자가 이에 해당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유형의 환자에게 잘 들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워낙 표본모수가 작아 이를 억제하는 두 약이 널리 쓰이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