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제약의 계열사로 편입된 면역세포치료제 연구개발 전문기업 바이젠셀(대표 김태규)이 지난 25일 코스닥에 상장했다. 첫날 종가는 59500원으로 공모가 5만2700원보다 높았다. 둘째날 종가도 전날 대비 2.18% 상승한 6만800원으로 그리 나쁘진 않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바이젠셀의 유통 가능 물량은 전체 발행 주식 수의 약 46.6%(439만2872주)다. 상장 첫날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된 바이젠셀 주식 수는 485만9204주였다. 이론상으로 보면 풀릴 수 있는 주식이 모두 쏟아져 나온 셈이다. 개인들은 115만5897주를 순매수했지만 기관(77만4339주)과 사모펀드(54만8688주), 외국인(5만4955주)의 순매도세를 당해내지는 못했다. 개인들은 면역세포 ㅊ료제라는 특이한 영역과 바이오벤처 상승 붐에 기대해 주식을 사들인 반면 기관 등은 확고한 기술력이나 기업비전에 회의를 갖는 모양새다.
보령제약 최대주주 29.5% … 창업자 김태규 교수 6.07% … 보령 오너 일가는 표면상 0%
바이젠셀은 2013년 20년 이상 면역학을 연구한 김태규 가톨릭대 의대 교수가 설립했다. 가톨릭대기술지주의 면역유전자 관련 아이알젠텍과 면역세포 치료제 관련 옥셀바이오메디칼이 2013년 합병했다. 보령제약이 2016년 7월 주식 6만주(32.76%)를 15억원에 사들여 최대 주주로 올라섰지만 이후 유상증자, 전환사채 발행 등으로 새로운 투자자가 영입되면서 26일 현재 29.5%로 줄어들었다.
현재 보령제약은 바이젠셀의 최대주주다. 창업자 김태규 교수가 6.07%, 손현정 연구소장 0.8%, 조현일 개발담당 임원이 0.8%를 갖고 있다. 5% 이상 보유 대주주로는 전략적 투자자로 타그리스-유온투자조합1호가 유일하게 6.62%를 갖고 있고 나머지는 죄다 5% 미만이다.
작년 9월 기준 가톨릭대기술지주가 10.64%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상장 과정에서 대부분을 김태규 교수가 6.07%를 인수하고 나머지는 매각(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젠셀은 수요예측 경쟁률 1271.2 대 1, 청약 경쟁률은 886 대 1로 희망공모가는 4만2800원~5만2700원이었는데 최고상단으로 공모가가 결정됐다. 바이젠셀의 총 공모주식수는 188만6480주로, 100% 신주모집이다. 상장 성공으로 약 994억원을 조달했다.
공모 자금은 연구개발, 시설투자, 운영자금 등으로 활용된다. 특히 △기술 고도화 및 임상시험을 통한 파이프라인 경쟁력 강화 △신규 파이프라인 발굴 및 연구개발 확대 △cGMP 시설 구축 및 주요 설비 도입 △사업화 전략 및 글로벌 시장 확대를 위한 운영 등에 투입될 예정이다. 바이젠셀은 기술특례를 통한 상장에 성공했으며 대신증권과 KB증권이 상장 주관사를 맡았다.
면역항암제·면역세포치료제·면역세포유전자치료제 ‘삼각편대’ 플랫폼 구축
바이젠셀은 크게 △항원 특이 킬러T세포 맞춤형 면역항암치료제 ‘바이티어’(ViTier, VT) △범용 제대혈 유래 골수성 억제세포 치료제 ‘바이메디어’(ViMedier, VM) △범용 감마델타T세포 유전자치료제 ‘바이레인저’(ViRanger, VR) 등 3가지 플랫폼 기술로 나뉜다.
‘바이티어’는 사람의 혈액에서 채취한 T세포를 ‘항원 특이적인 살해 T세포(cytotoxic t lymphocytes. CTL)로 분화 및 배양하는 맞춤형(자가) 면역항암 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술이다. NK/T세포 림프종을 치료하는 ‘VT-EBV-N’, 급성골수성백혈병을 목표로 한 ‘VT-Tri(1)-A’, 교모세포종을 겨냥하는 ‘VT-Tri(2)-G’ 등 3가지 세포치료제 후보가 존재한다.
가장 주력인 VT-EBV-N은 현재 국내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며 2019년 개발단계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2023년 2상 완료 후 조건부 품목허가를 취득해 조기 상업화에 나선다는 목표다. 연구자주도 임상 1상에서는 VT-EBV-N 투여 후 5년(2010년~2015년) 이상 장기 관찰한 결과, 안전성뿐만 아니라 유효성도 검증됐다. 기존 화학요법, 방사선요법 치료군의 무재발 생존율이 26%(2년)인 데 반해 VT-EBV-N 치료군은 무재발생존율은 90%, 전체생존율은 100%(5년)를 확인했다. 일반적으로 암에서 5년 이상 무재발생존은 완치를 의미한다. VT-Tri(1)-A와 VT-Tri(2)-G은 각각 임상 1상, 전임상 중이다.
‘바이메디어’는 면역기능을 억제하는 제대혈 줄기세포 유래 골수성 억제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술이다. 골수성 억제세포 양산 기술을 활용한 범용 면역억제 세포치료제로서는 세계 최초로 인체 적용 임상(First-in-Human Trial)을 승인받았다. 파이프라인은 이식편대숙주질환(GVHD) 치료제 ‘VM-GD’,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VM-AD’ 등이다. 각각 임상 1/2a상, 전임상을 진행 중이다.
‘바이레인저’는 동종 면역반응이 없는 γδT세포(감마델타T세포)를 이용한 범용 면역세포치료제로 개발하는 기술이다. 바이젠셀은 감마델타T세포의 대량 증식 및 배양보조세포를 이용한 장기 배양 원천특허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특정 암을 표적하는 Chimeric Antigen Receptor(키메릭 항원 수용체)를 접목함으로써 감마델타T세포 기반 세포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한다는 전략이다. 고형암 및 혈액암을 겨냥한 ‘VR-CAR’ 파이프라인이 현재 전임상을 진행 중이다.
글로벌 면역항암제 시장은 2018년 193억 달러에서 연평균 16.4%의 성장률을 보이며 2024년 480억달러(약 55조원)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젠셀은 2024년 NK/T세포 림프종 치료제 ‘VT-EBV-N’를 출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글로벌 면역억제제 시장도 연간 16.8%의 빠른 성장률을 기록하며 2018년 142억달러에서 2024년 361억달러(약 41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회사는 VT-EBV-N출시를 시작으로 바이티어, 바이메디어, 바이레인저의 각 파이프라인 개발을 순차적으로 완료하면서 제품 라인업과 적응증 시장을 확대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각 플랫폼의 범용성이 커서 파이프라인의 확장과 각 품목의 적증증 확대가 유연하다는 게 이 회사의 장점이다.
보령제약그룹, “바이젠 상장과 손자 기업승계와는 무관” … 보령바이오파마에 무게중심
보령제약 관계자는 창업자인 김승호 회장의 장손자인 김정균 회장의 기업승계와 관련, “바이젠셀의 상장 과정에서 보령제약 법인 외에 임원이나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가진 적이 없다”며 “보령에서 바이젠셀에 파견했던 이사회 멤버도 지금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보령제약의 승계는 바이젠셀보다는 보령바이오파마의 상장에 초점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령바이오파마는 지난해 10월 강동구 고덕강일지구 6블럭 고덕비즈밸리지식산업센터에 입주하기 위해 부지를 마련했으며 올 가을 기공식에 들어가 이르면 내년말, 늦어도 2023년 상반기에 완공할 예정이다.
전통 제약기업 바이오벤처 인수의 명암 … ‘부업’에 치중하다 ‘본업’ 소홀?
바이젠셀의 플랫폼은 면역항암제, 면역세포치료제, 면역세포유전자치료제 등으로 첨단임에 틀림없다. 기존 화학항암제 또는 방사선치료의 부작용을 극복할 대안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여러 글로벌 제약사들이 임상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유효성을 보이거나, 예기치 않은 부작용 출현으로 좌절을 맛봤다. 바이젠셀이 토종기업으로서 미국 등 해외기업과 교류하고 경쟁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얼마나 될 지도 의문이다.
국내 전통 제약기업들의 바이오벤처 투자도 점차 늘고 있다. 바이오벤처 투자에 성공한 사례는 부광약품이 대표적이다. 줄기세포치료제 바이오벤처 ‘안트로젠’에 39억원을 투자하고 774억원을 회수한 바 있다. 부광은 또 덴마크 콘테라파마와 미국 LSK바이오파마(이영작씨가 설립한 LSK Global PS의 미국법인)에 투자했다.
LSK바이오파마는 경구용 표적항암제인 리보세라닙(Rivoceranib, 중국명 아파티닙 apatinib)의 전임상과 글로벌 임상 1·2상을 공동으로 진행하다가 에이치엘비생명과학에 팔았다.
리보세라닙의 중국내 개발권은 중국 장쑤성 소재 항서제약(恒瑞醫藥, Jiangsu Hengrui Medicine, 헝루이이야오)이 2004년말 획득했다. 아파티닙은 2014년 11월 중국 식약청(CFDA)로부터 진행성 말기 위암 3차 치료제 신약 품목허가를 받아 2015년 8월 중국시장에서 ‘아이탄’(Aitan)이란 상품명으로 본격 판매에 들어갔다. 이 약의 한국 판권은 부광약품, 유럽과 일본 판권은 LSK바이오파마와 부광약품이 보유하고 있다.
에이치엘비는 공동 개발자로서 중국 내 아이탄 매출의 일부를 배분받고 있다. 2019년 7월 16일 골드만삭스 리포트에 따르면 헝루이메디신의 아이탄 매출은 2019년 4700억원, 2020년 5500억원으로 추정됐다.
부광약품은 또 2014년에 인수한 중추신경계 약물 전문 개발회사인 콘테라파마를 올해 코스닥에 입성시키려 추진 중이다. 콘테라파마는 상장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과 기술특례상장방식으로 기업공개(IPO)를 준비해왔다. 그 결과는 오는 9월 중순에 발표될 예정이다.
콘테라파마는 올해 2월 한국거래소가 일부 선진국에 국한된 외국기업 상장법위(적격 해외 증권시장)에 덴마크를 추가하면서 코스닥 시장에 상장이 가능해졌다. 적격 해외 증권시장에 포함된 기업은 기술특례상장 조건을 충족하면 국내 시장에 상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부광약품은 본업에는 덜 충실하고 부업에 더 신경쓴다는 비판도 안고 있다.
반면 투자에 실패하고 발을 빼는 일도 다수 있다. 유한양행은 2015년에 100억원을 투자해 바이오벤처기업 바이오니아의 ‘SAMiRNA’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RNA를 억제하는(RNAi) 신약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섬유증 및 고형암 표적치료제 3종을 라이선스 도입했다. 그러나 주식을 2017년부터 처분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 남은 주식 23만주 전량을 16억원에 매각하면 손을 털었다. 좀처럼 연구개발이 진척되지 않아서다.
실패 위험에도 제약기업들이 바이오벤처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후보물질 탐색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그러나 투자에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가까스로 투자 원금을 회수하더라도 잘못된 투자로 인해 투자기회를 놓치거나 기업이 정체된다면 실패나 마찬가지다. 보령제약이 바이젠셀 투자를 통해 어떤 성과를 거둘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