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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에 감춰진 칼’ 언어폭력, 직장과 가정을 병들게 한다
  • 우승훈 기자
  • 등록 2021-01-20 05:03:42
  • 수정 2021-01-21 02: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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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속되면 스트레스호르몬(코르티솔) 증가 … 대사증후군, 불안·우울증 위험 상승 … 부부간 열등감 자극 언사 삼가야

이성을 중시해야 한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앞세워 살아간다.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은 ‘말’이다. 말은 상대적이다. 요즘 강조되는 ‘소통’도 따지고 보면 상대를 전제로 한다. 상대방에게 좋은 말을 하면 건네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좋다. 
부부 간 말싸움은 ‘칼로 물베기’가 아니다. 가정 화목과 자녀 정신건강을 위해 상대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말을 삼가야 한다.
그러나 일상에선 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다. 상대를 폄하하거나 공격하기 위한 말이 예사로이 횡행한다. 이런 말은 ‘흉기’가 되고 ‘폭력’이 된다.
 
조선시대 임금이었던 연산군은 각종 정사와 야사를 통해 지금까지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폭정을 일삼았던 만큼 감추고 싶은 게 많았을 터지만 구중궁궐에도 비밀은 없어 자신을 비방하는 상소와 투서가 연일 올라왔다.
 
소문의 발원지를 내시와 중신들로 생각한 연산군이 급기야 고안해 낸 것이 내시들과 중신들의 목에 차도록 한 신언패(愼言牌)다. 패에는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 폐구심장설(閉口深藏舌), 안신처처뢰(安身處處牢)라 적혀져 있었다.
 
즉 입은 재앙의 문이고, 화는 입으로부터 생기므로 말을 삼가라.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는 뜻이다.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는 연산군이 요즘 사람들도 귀담아 들을 법한 글귀를 남겼다. 물론 자기를 위해서지만 말이다.
 
몸에 난 상처는 금방 치유되지만 가정과 직장 등에서 언어폭력 등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는 깊이 자리 잡고 오래간다. 심하면 정신적·신체적 질병을 야기하기도 한다. 김병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부터 가정과 직장 등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언어폭력의 심각성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 극복 요령 등에 대해 들어본다.

언어폭력, ‘감정기억’ 탓에 오래 남아 … 뇌 백질 구조에 악영향, 우울·불안 초래
 

수많은 기억 중에서도 머리에 오래 남는 기억 중 하나는 바로 감정이 동반된 기억이다. 이를 ‘감정기억’이라고 한다. 작년 이맘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언젠가 행복했거나 우울했던 때의 기억은 비교적 생생하게 남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좋지 않은 기억의 경우 당시 느꼈던 감정으로 인해 체내에 분비된 스트레스호르몬이 뇌에서 기억을 강화시킨다.
 
언어폭력은 듣는 사람에게 당장 모욕감이나 분노, 불안감, 모멸감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뇌 구조 자체에 감정과 언어를 담당하는 영역을 줄어들게 하는 등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하버드대 및 가톨릭대 의대 최지욱 공동연구팀이 2016년 내놓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언어폭력이 정신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언어폭력의 영향 평가를 위해 건강한 성인 1271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 이 중 특히 부모로부터 언어폭력을 심하게 받으면서 자랐지만 딱히 치료를 받지 못한 16명을 가려내 이들의 뇌 영상을 정상인 16명의 것과 비교 분석했다.
 
연구결과 뇌의 백질 영역에서 두 집단 간에 차이를 보였다. 언어폭력에 노출된 집단의 경우 뇌 내부에서 각 영역을 구조적으로 연결하며 언어 기능과 감정조절 기능을 담당하는 백질 경로가 정상 집단에 비해 좁아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언어폭력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말을 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우울·불안 위험이 크다는 결론이다. 특히 연구진은 언어폭력에 노출되는 것이 가정폭력을 목격하거나 성적 학대에 노출되는 것 못잖게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한다고 밝혔다.

스트레스호르몬 과다분비, 대사증후군·월경전증후군·인격장애 등 유발
 

언어폭력은 뇌 구조 변화에 그치지 않고 신체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언어폭력으로 인한 불안·우울·분노의 감정 상태가 만성화되면 스트레스호르몬의 하나인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된다. 이럴 경우 식욕 증가, 체지방량 증가, 근육량 소실, 골밀도 감소, 불안, 우울, 큰 감정 기복, 성욕 감퇴, 면역력 저하, 기억력 감퇴와 학습능력 저하, 월경전증후군(부종 및 신경질적 증상), 생리주기 변화, 폐경전증후군(안면홍조, 야간발한 등) 등이 초래된다.
 
코르티솔은 면역체계를 담당하는 백혈구의 일종인 임파구의 수를 감소시켜 신체의 면역기능을 저하시킨다. 이로 인해 감염질환이나 암에 걸리기 쉬운 상태가 된다. 또 스트레스로 교감신경이 흥분되면 가슴두근거림, 식은땀, 근육통, 호흡곤란 등 다양한 신체 이상을 호소하게 된다.
 
스트레스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우리 몸은 응급상황으로 착각해 영양분을 혈액으로 끌어당겨 대사증후군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가 지속되면 혈중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수치가 높아지면서 대사증후군으로 연결되기 쉽다.
 
하지만 언어폭력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관은 생각보다 적어 피해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실정이다. 모욕, 고통의 순간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면 당시 상황을 자꾸 떠올리게 되면서 상처가 더욱 깊어진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울증, 불안장애, 인격장애 같은 정신질환을 초래하며 급기야 자살로 내몰기도 한다. 언어폭력을 두고 ‘보이지 않는 칼’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직장인 62.2% 언어폭력 경험, 44.3%는 아예 폭력에 둔감해져
 

언어폭력은 수시로 일어나지만 가장 빈번하게 횡행하는 곳이 직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야. 이 답답아 똑바로 하란 말이야”, “시키는 거라도 제대로 할 줄 알아야지 ”, “아, 그걸 왜 못해! 넌 늘 그게 문제야” 같은 말들이 직장 내 언어폭력임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무심코 던져지고 있다. 
 
2016년 온라인 취업포털인 ‘사람인’이 직장인 11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직장인의 62.2%가 직장 내에서 언어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호통이나 반말’(53.4%, 복수응답)이 가장 많았고, ‘인격모독적 발언’이 50.5%로 바로 뒤를 이었다. 다음으로 ‘능력 비하’(48%), ‘욕설, 비속어’(42.1%), ‘험담’(40%), ‘약점 가지고 놀리기’(24.7%) 등의 순이었다.
 
반면 직장 내에서 욕설과 막말이 난무하다보니 직장인 중 44.3%가 심각한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에도 아예 언어폭력에 무감각해져 참고 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언어폭력은 피해자에게 순간적으로 좌절과 굴욕감을 주기도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스트레스에 의해 위산과 펩신을 과다 분비시켜 소화불량, 위궤양 등을 초래할 수 있고 ‘외상후울분장애(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 PTED, 외상후격분장애)’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는 신체적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매사에 의욕이 없고 무력해지는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을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고혈압, 당뇨병, 심장병 등 지병을 갖고 있다면 언어폭력에 노출될 경우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의 과다 분비로 순간적으로 혈당과 혈압 수치가 상승하는 등 격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심하면 뇌졸중 또는 심근경색 등이 발병할 수도 있다.
 
2018년에 이뤄진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 내 언어폭력을 경험한 피해자의 58.2%는 건강상의 문제를 겪었고 10.6%가 자살시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직장 내 언어폭력 등 괴롭힘 행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면서 2019년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되고 있다. 이 법은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김병후 정신과 전문의는 “직장 내 언어폭력이 한 사람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을 해치고 인생을 망치는 것은 물론 회사 전체를 망친다”며 “언어폭력은 개인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조직을 폭력적인 집단으로 만들어갈 수 있어 법적인 제제도 중요하지만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문화와 분위기를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들 모두가 동료의식과 유대감을 갖고 적대감이 동반된 비난 섞인 말을 삼가고, 상대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을 자제해야 한다고 그는 조언했다. 아울러 직장 내 언어폭력 문화가 개선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 계속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어 언어폭력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사내 또는 전문기관의 전문심리치료실 등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도적으로는 기업 취업 규칙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조항’을 삽입하고, 주기적으로 사원 교육을 실시하며, 시간과 비용 문제로 어렵다면 사내 게시판이나 이메일을 활용해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게 요구된다.

부부간 언어폭력 … 성기능장애·불임 초래, 자녀 지능지수 감소에도 영향
 
언어폭력이 직장 다음으로 많은 곳이 가정이며 그 중에서도 부부 간 폭력이 가장 잦다. 특히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출을 삼간 채 집안에 함께 있는 시간이 늘면서 이에 따른 스트레스로 부부 간 언어폭력과 그에 따른 불화도 심해지고 있다.
 
모든 언어폭력이 피해자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부부 간 언어폭력은 한층 심각하다. 실제로 부부 간 언어폭력을 경험했을 때 여성의 정신건강이 취약해 우울 증상 위험이 2배나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부부간 언어폭력이 지속되면 정신장애는 물론 신체적 질병을 초래할 위험성이 높다. 가장 대표적인 게 성기능장애와 불임이다.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되면 남성의 정자 수가 감소된다. 이어 발기부전, 조루, 성적불감증 등 성기능 장애를 겪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나이가 들면서 점진적으로 감소되는 게 정상이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속도가 더 가팔라진다.
 
여성이 언어폭력에 노출될 경우 배란일이 늦어지는 등 호르몬 균형이 깨져 임신 가능성이 저하된다. 심리적 악영향은 더욱 커서 자신감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물론 성적인 자극에도 둔감해지고 감수성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최근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 여성 성기능장애의 한 원인으로 부부 간 언어폭력이 지목되고 있다.
 
게다가 성인들에 비해 감정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언어폭력이 대물림되거나 정서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유년기에 부모의 언어폭력을 지켜보고 경험한 경우 지능지수(IQ)가 감소하고, 우울증 등 정신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부부 간에도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열등한 부분을 꼬집는 말은 절대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컨대 “내가? 그러는 당신은 어떤 줄 알아?”, “옆집 남편(부인)처럼 할 수 없어?”, “제발 어린애처럼 굴지 좀 마!”, “당신, 예전이랑 똑같은 실수를 한 거잖아?” “당신은 항상 이런 식이야!” 등은 금물이다.
 
그보다는 “내가 좀 도와줄까?”,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해!”, “당신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대단하네!”, “당신이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마!” 등의 말이 부부 간의 애정을 돈독하게 하는 것은 물론 자녀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부부 간 언어폭력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경향이 강하므로 보통 노력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부부 간 언어폭력을 예방하려면 서로 대화할 때 매너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병후 전문의는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는 너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고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나 주제는 가능하면 언급하지 않는 게 도움이 된다”며 “부부 간 노력으로 해결이 어려울 경우 함께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언어폭력으로 인해 정신적·신체적 질병이 발생했다면 가급적 신속하게 치료받으라”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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