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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신흥 와인 강국, 호주와 뉴질랜드의 화이트 와인
  • 김지예 ·소믈리에 기자
  • 등록 2020-06-12 19:16:38
  • 수정 2020-06-16 11: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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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코틀랜드 출신 제임스 버스비에 의해 첫 와인 생산 공통점 … 과일향 풍성, 화사한 스타일로 인기
호주는 광활한 영토만큼이나 기후도 다양하고 재배되는 포도품종도 100여개가 넘어 다채로운 향미를 자랑하는 와인이 생상된다. 호주 레드락 풍경, 출처 픽사베이.
호주와 뉴질랜드는 남태평양 가운데 오세아니아 지역을 양분하는 국가다. 영국의 자치령(Dominion)이었으며, 독립한 뒤에도 1973년 ‘Trans-Tasman travel agreement’ 법안을 발의해 자유롭게 상호 왕래하며 두 국가의 국민들 사이에는 거주·노동·학업의 제한을 두지 않는 등 형제 같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와인의 역사에도 비슷한 점이 많다. 영국의 식민지를 지내며 같은 사람에 의해 첫 와인 생산이 시작된 점, 일조량이 풍부한 천혜의 환경으로 과일향이 풍부한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는 점, 뒤늦게 세계 시장에서 큰 각광을 받고 있다는 점 등이 그렇다. 또 하나 더 찾자면 화이트와인에 대한 사랑을 들 수 있다. 뉴질랜드 생산 와인의 80%, 호주 와인의 60%가 화이트 와인이다. 하지만 스타일은 완전히 달라 비교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첨단 양조기술 받아들여 2000년대 이후 와인 강국으로 도약한 호주
 
한국에서 신세계(유럽 외 와인생산국) 와인하면 미국이나 칠레 와인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같이 공산세력과 싸운 혈맹이고, 칠레는 2004년 우리나라가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로 와인 대중화에 기여했다. 하지만 신세계 와인 생산국 중 가장 많은 와인을 수출하는 나라는 호주다. 호주의 와인 생산량은 세계 7위, 수출량은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다음인 4위다.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와인 강국이다.
 
현재 호주에는 2000개 이상의 와이너리가 드라이한 스틸와인부터 스위트·스파클링·주정강화와인까지 거의 모든 유형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재배되는 포도품종도 100여개가 넘는다. 땅이 넓은 만큼 기후도 다양해 그에 맞는 포도품종과 와인스타일도 여럿이다.
 
호주에 와인용 포도나무가 처음 심겨진 것은 18세기다. 당시 호주로 넘어온 영국인들이 호주처럼 더운 남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묘목을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 옮겨 심고 재배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지역의 높은 온도와 습도를 이기지 못한 포도나무는 모두 죽어버렸고 그 후 한동안 호주 지역에서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이후 1824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영국 정치인 제임스 버스비(James Busby)가 프랑스 론 지방에서 공수한 시라(Syrah)를 재배하면서 처음으로 와인이 양조되기 시작했다. 이후 1850년대 금을 찾아 사람들이 호주로 몰려드는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호주의 와인산업은 주정강화와인인 포트와인·셰리와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1900년 초반 골드러시가 끝나자 호주 와인은 침체기를 맞았다.
 
호주 와인산업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다. 유럽의 와이너리를 휩쓴 포도 흑사병인 ‘필록세라’(Phylloxera)를 피해 모험적인 양조가들이 남아프리카·칠레·호주·아르헨티나·미국 등 신세계로 퍼져나갔다. 골드러시로 어느 정도 생산기반을 갖춰 놓았던 호주는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와인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1970년대부터는 제법 고급와인을 국제 시장에 내놓으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호주 와인이 어느 정도 국제적인 명성을 얻자 호주 정부는 와인 산업을 지원하며 기술 개발을 장려했다. 정부의 도움 아래 호주 와이너리는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와인 생산량을 늘리고 품질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양조과정 자동화에 많은 노력을 들였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호주 와인의 생산량은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향이 풍성한 샤르도네·꿀같은 질감의 세미용 인기 … ‘선별’과 ‘블렌딩’으로 품질 향상
 

한국에서 주로 선호되는 호주와인은 시라 품종의 레드와인이다. 자두를 연상시키는 짙은 색에 후추와 정향을 떠올리게 하는 강한 향은 한국을 비롯한 동양음식과 궁합이 좋아 아시아에서 전반적으로 인기가 좋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그 이상으로 샤르도네(Chardonnay)와 세미용(Semillon) 화이트와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호주의 샤르도네는 프랑스 론 지방에서 옮겨왔다. 하지만 조약돌 같이 구조가 강건하고 미네랄이 느껴지는 론의 샤르도네와 달리 호주의 샤르도네는 열대 와인의 향이 풍성하게 감도는 화려한 스타일로 변신했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옮겨온 세미용도 호주에서 한층 더 달고 진해졌다. 마치 꿀 같은 질감을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하고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호주 화이트와인을 꼽자면 '르윈 에스테이트 아트 시리즈'(Leeuwin Estate Art Series Chardonnay), '펜폴즈 야타나'(Penfolds Yattarna), '로즈마운트 에스테이트의 록스버그'(Rosemount Estate Roxburgh) 등이 있다. 유명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의 '와인 애드버케이트'(The Wine Advocate)에서 꾸준히 90점 이상의 점수를 받으며 국제적인 인기를 자랑한다.

호주 와인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선별’과 ‘블렌딩’이다. 유럽의 양조가는 포도밭의 ‘떼루아’에 집중한다. 와인의 스타일이 떼루아에서 결정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대한 밭에서 대량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호주에서는 섬세하게 떼루아를 관리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밭은 너무 넓고 인력은 부족했기 때문. 결국 호주 양조가들은 수확된 포도 중 가장 좋은 것을 선별해 양조한 후 다시 블렌딩해서 원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예컨대 호주에서 가장 유명한 레드와인 ‘펜폴즈 그랜지’(Penfolds Grange)는 양조장 반경 483km 안의 포도밭에서 재배된 포도로 우선 4만 상자의 와인을 만들고 그 중 가장 뛰어난 품질의 술을 골라 다시 블렌딩해서 연 7000 상자의 와인으로 압축한다. 물론 블렌딩에 사용되지 못한 와인은 저렴한 가격의 와인으로 시장에 나오게 된다.
 
호주의 와인 생산지는 동남쪽 끝에 있는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South Australia),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 ‘빅토리아’(Victoria) 세 주에 밀집해있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는 ‘애들레이드힐스’(Adelaide Hills), ‘바로사밸리’(Barossa Valley), ‘에덴밸리’(Eden Valley), ‘클레어밸리’(Clare Valley), ‘쿠나와라’(Coonawarra), ‘패서웨이’(Padthaway), ‘맥라렌베일’(McLaren Vale) 등을 포괄하고 있는 호주 최대의 와인 생산지로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쉬라즈, 샤르도네, 리슬링, 세미용 등 재배되는 포도 품종도 다양하다.
 
사우스웨일즈는 ‘헌터밸리’(Hunter valley), ‘머지’(Mudgee), ‘리베리나’(Riverina)가 속한다. 헌터밸리는 샤르도네와 세미용으로 만든 고급 화이트 와인을 생산한다. 헌터 밸리보다 더 따뜻하고 고도가 높은 머지는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만든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가장 남쪽에 있는 빅토리아주는 호주 본토 와인 생산지 중 규모가 가장 작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야라밸리’(YARRA VALLEY)와 ‘질롱’(Geelong) 지역은 질 좋은 샤르도네와 피노누아 와인을 생산하고, 루더글렌(Rutherglen)에서는 뮈스카(Muscat)와 토카이(Tokaj) 품종으로 만든 진한 화이트 와인이 생산된다.
 
동남쪽 와이너리 밀집지와는 크게 떨어져 있지만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Western Australia)도 뻬놓을 수 없는 주요 생산지다. ‘마가렛리버’(Margaret River), ‘스완밸리’(Swan Valley)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카베르네 소비뇽·메를로·세미용·소비뇽 블랑 등 프랑스 보르도 지역과 유사한 품종의 포도를 재배한다.
 
1980년대 이후 갑작스럽게 존재감을 들어낸 신데렐라, 뉴질랜드
 
뉴질랜드는 기다란 남섬과 북섬, 그리고 연안의 수많은 작은 섬들로 이뤄져 있다. 뉴질랜드의 포도밭은 지구상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날짜 변경선과 가까워 가장 먼저 해를 만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세계 와인 생산국 중 가장 늦게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세계 11위의 와인 수출국으로 주목받은 대표 신흥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뉴질랜드에서 처음 와인용 포도가 재배된 것은 1819년으로 영국 성공회 선교사가 나무를 심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와인이 생산되기 시작한 해는 그로부터 20년 이후인 1839년이다. 호주에 포도나무를 심고 와인을 생산했던 제임스 버스비가 뉴질랜드에서도 와인 생산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호주와 달리 병충해와 기술 부족 등으로 생산량은 미미했다. 20세기 전후로 뉴질랜드에서 대대적인 금주운동이 일어나고 금주법이 만들어지자 뉴질랜드 와인산업은 더욱 고전하게 됐다.
 
뉴질랜드의 와인산업은 금주령이 해제된 196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양은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국내에서 대부분 소비됐다. 국제시장에서 뉴질랜드 와인의 품질 평가는 높지 않아 존재감이 흐릿했다.
 
이런 뉴질랜드 와인의 위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다. 뉴질랜드 말보로 지역에서 자란 소비뇽블랑(Sauvignon Blanc)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 여러 국제대회에 입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뉴질랜드의 와인산업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해, 1988년 100여개에 불과하던 와이너리는 1998년에 300여개 가까이 늘어났고 포도밭도 40%나 면적이 증가했다. 정부 주도 아래 품종 개량과 재배·양조 기술 향상이 이뤄져 지금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 뛰어난 품질의 와인이 넉넉하게 생산되고 있다.
 
풀냄새 소비뇽블랑·향긋한 샤르도네 … 선선한 해양성 기후가 만든 산뜻하고 섬세한 아로마
 
연평균 온도가 독일과 비슷한 뉴질랜드는 초기에는 뮐러투르가우(Muller-Thurgau), 리슬링, 피노그리, 게부르츠트라미너 등과 같이 독일에서 키우는 청포도를 들여와 화이트와인을 주로 생산했다.
 
이후 국제적으로 인기 있는 청포도 품종인 소비뇽 블랑·샤르도네(Chardonnay), 적포도 품종인 피노누아(Pinor Noir) 등이 들어왔다. 이들 품종은 독일에서 들여온 청포도보다 뉴질랜드의 기후에 잘 맞아 곧 이 나라를 대표하는 품종으로 성장했다. 소비뇽블랑·샤르도네·피노누아 순으로 많이 재배되는데 화이트 와인이 전체 와인 생산량의 80%를 넘는다. 최근에는 피노누아로 만든 레드와인의 생산 비중이 조금씩 높아지는 추세다.
 
뉴질랜드의 소비뇽블랑은 오크통이 아닌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양조되어 청명하고 날카로운 산도가 돋보인다. 다른 지역의 소비뇽블랑과 달리 과일향이 풍부하고 향이 풍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선한 라임·구즈베리·열대과일의 뉘앙스와 어우러진 짙은 풀향기가 특징이다. 샤르도네도 산뜻하고 이국적인 풍미가 뛰어나다. 피노누아는 매우 섬세한 아로마를 가지고 있다.
 
이런 뉴질랜드 와인의 특성은 서늘한 해양성 기후에 기인한다. 뉴질랜드는 신세계 와인 생산지역 중 가장 서늘한 연평균 온도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기다란 섬 지형 탓에 바다에서 129km 이상 떨어진 포도밭이 없다. 선선한 바닷바람 덕에 여름에도 온도가 높이 올라가지 않고 일교차도 완만하다. 서늘하고 연교차와 일교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해양성 기후 속에 뉴질랜드의 포도는 천천히 성장하며 충분한 풍미와 산뜻한 산미를 가지게 된다.
 
대표적인 와인으로는 뉴질랜드 쇼비뇽블랑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알린 '클라우드베이 소비뇽블랑'(Cloudy Bay Sauvignon Blanc), 저렴한 가격과 뛰어난 품질로 소비자들에게 크게 사랑받고 있는 '킴 크로포트 소비뇽블랑'(Kim Crawford Sauvignon Blanc)와 빌라 마리아 소비뇽블랑 (Villa Maria Sauvignon Blanc) 등이 있다. 

뉴질랜드의 주요 와인 생산지역은 과거에는 북섬의 ‘혹스베이’(Hawkes Bay)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남섬의 ‘말보로’(Marlborough) 지역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말보로 지역에 와이너리가 대거 들어서면서 현재 뉴질랜드 전체 포도밭의 42%, 와이너리의 3분의 1이 말보로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북섬의 최남단에 있는 ‘마틴버러’(Martinborough) 지역은 피노누아 품종을 주력으로하는 레드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중부의 ‘센트럴 오타고’(Central Otago)는 리슬링 등을 이용한 독일 스타일의 화이트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프랑스 원산지 호칭 통제제도(Appellation d’Origin Control’ee, AOC)처럼 엄격한 원산지 명칭 규제가 없다. 대신 라벨 규정이 존재한다. 라벨에 품종을 표기할 때는 해당 품종의 비중이 75% 이상이 돼야 한다. 블렌딩 된 품종 중 어느 것도 75%를 넘지 못할 경우에는 비중이 높은 품종 순으로 기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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