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항암제를 투여한다고 하면 주사제를 떠올리게 된다. 주사제는 직접 정맥 또는 해당 장기로 주입되므로 먹는 약에 비해 체내 흡수가 빠르고, 흡수량이 일정하지만 쇼크나 감염 등이 나타나는 게 단점이다. 이후 정제나 캡슐 등 경구용 항암제가 개발되면서 주사 투여의 불편함을 덜 수 있게 됐다.
반감기가 짧은 항암제는 반복적으로 주사해야 하는 특성상 고통과 불편이 따르지만 경구제는 복용이 편리하고, 통증이 없으며, 장기 복용도 가능하다. 환자들이 선호하는 경구 항암제가 잇따라 개발되면서 환자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됐다.
경구용 항암제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기존 세포독성 주사제를 경구로 복용할 수 있게 제형을 변경한 세포독성 경구용 항암제와 암세포에서만 발현되는 단백질을 겨냥해 선별적으로 공격하는 표적치료제다.
세포독성 항암제는 흔히 항암제라고라고 부르는 전통적 개념의 치료제로 무분별하고 빠르게 분화하는 세포를 직접 공격해 사멸을 유도한다. 세포 분화를 위해서는 유전자(DNA) 복제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많은 세포독성 항암제가 DNA에 직접 결합해 구조를 손상시키거나, DNA 복제와 세포 생존에 필요한 대사과정을 방해하거나, DNA 합성에 필수적인 효소(topoisomerase)를 저해하거나, DNA 복제과정에서 염색체 분리를 담당하는 미세소관(microtubule)을 방해하는 등 암세포의 DNA 복제를 저해한다.
그러나 빠르게 분화하는 특성을 가진 정상세포, 예컨대 골수의 조혈모세포, 모근세포, 장내 점막세포 등을 공격하기 때문에 백혈구 감소, 탈모, 구토, 설사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같은 특징을 가진 경구용 세포독성 항암제의 종류를 알아본다.
테가푸르·우라실 혼합제 ‘UFT’, 암세포 내 5-FU 농도 유지
UFT는 1세대 경구용 플루오로피리미딘(fluoropyrimidine) 계열 약제로 1980년대 일본에서 지속적으로 정맥주사해야 하는 5-플루오로우라실(5-fluorouracil, 5-FU)를 경구제로 변형해 비슷한 효과를 보기 위해 개발됐다. 테가푸르(tegafur)와 우라실(uracil)이 1 대 4 분자비율로 혼합된 것이다.
테가푸르는 전구약물로서 체내에 흡수되면 암세포를 죽이는 5-FU라는 세포 독성물질로 분해된다. 함께 배합된 우라실은 항대사물질로 세포 내부에 머물면서 5-FU 분해효소인 디하이드로겐나제(dihydropyrimidine dehydrogenase, DPD)를 억제해 암세포 에서 5-FU 농도를 높게 유지해준다.
두경부암, 위암, 결장·직장암, 간암, 담낭·담관암, 췌장암, 폐암, 유방암, 방광암, 전립선암, 자궁경부암 등에 적응증을 갖는다. 신풍제약 ‘테그라실 과립’과 제일약품 ‘유·에프·티-이과립’이 대표적이다. 보통 1일 테가푸르로서 300~600mg에 해당하는 양을 2~3회로 나누어 경구 투여한다. 자궁경부암에 대해서는 보통 1일 테가푸르로서 600mg에 해당하는 양을 2~3회로 나누어 경구투여한다. 과립은 한 포에 100mg, 150mg, 200mg 등 3가지 용량의 테가푸르를 함유하고 있다.
이 성분은 백혈구감소증을 포함한 혈액학적 부작용과 복통, 장마비, 오심 및 구토, 구내염 등 위장관계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위암, 결장암, 직장암, 유방암 치료하는 ‘독시플루리딘’
독시플루리딘(doxifluridine)은 경구용 플루오로피리미딘(fluoropyrimidine) 계열 약제로 5'-디옥시플루오로우리딘(5´-deoxy-5-fluorouridine 5´-DFUR)이라고도 한다. 암조직에 많이 분포된 티미딘인산화효소(thymidine phosphorylase)에 의해 5-FU로 대사되면서 약효를 발현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위암, 결장·직장암, 유방암 등 치료에 사용되며 보통 1일 800~1200mg을 3~4회로 분할해 경구투여한다. 설사, 백혈구감소증, 식욕부진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신풍제약 ‘디독스캡슐’이 대표적이다.
‘카페시타빈’, 종양 부위에 선택적으로 작용해 전신 부작용 적어
카페시타빈(capecitabine)은 종양세포 내 3가지의 효소에 의해 5-FU로 변환되며 종양세포의 DNA 합성을 억제해 항암효과를 나타낸다. 종양 부위에 선택적으로 작용해 구내염, 설사, 구역, 탈모, 호중구감소증과 같은 전신 부작용이 적은 게 특징이다. 2000년대 다양한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직결장암, 유방암, 위암에서 치료효과를 입증했으며 현재 결장암 3기 수술 후 보조요법, 다른 항암치료에 실패한 전이 유방암 치료 등에 사용된다.
환자의 54~60%에서 특징적인 부작용으로 손과 발 피부의 통증, 압통, 부종, 발적, 수포 등이 나타나는 수족증후군(hand foot syndrome)이 발생할 수 있다.
권장 용량은 3주간을 주기로 1일 2회(아침, 저녁), 1회 1250mg/㎡(체표면적)를 2주간 경구 투여후 1주 휴약하는 것이다. 이 약은 식사 후 30분 이내에 물과 함께 삼켜야 한다. 한국로슈 ‘젤로다정’, 한미약품 ‘카페빈정’, 알보젠코리아 ‘잘보빈정’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개발된 복합제 ‘S-1’ … 골수억제, 신장애, 소화기독성 유발
S-1 경구 항암제는 일본에서 개발돼 국내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으며 ‘TS-1’으로도 불린다. 5-FU의 전구 의약품인 테가푸르, DPD 효소 억제제인 기메라실(gimeracil, CDHP, 클로로디하이드록시피리딘), 소화기 부작용 완화제 오테라실(oteracil)이 ‘1 대 0.4 대 1’ 비율로 배합된 3종 복합제다. 위암, 두경부암, 췌장암, 비소세포폐암 등에 적응증을 갖고 있다.
테가푸르는 주로 간(肝)의 약물대사효소인 cytochrome P4502A6(CYP2A6) 등에 의한 대사나 자연분해에 의해서 서서히 5-FU로 변환된다.
기메라실은 5FU를 분해하는 탈수소효소인 dihydropyrimidine degydrogenase(DPD)를 가역적으로 차단하는 억제제다. 5-FU의 분해를 강력히 억제해 항암효과가 더 오래 지속되게 돕는다.
오테라실은 5-FU의 인산화효소인 orotic acid phophoribosyltransferase(OPRT)를 가역적으로 억제하며 위장관계 부작용을 줄여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TS-1은 골수억제, 신장애, 소화기독성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신기능이 저하된 환자일수록 TS-1의 기메라실 배출 능력이 저하되고 5-FU 대사가 저하되므로 부작용이 증강될 위험이 있다. 또 복용 환자의 약 53%가 눈물길 폐쇄로 인한 눈물흘림 부작용을 겪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김남주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눈물길 폐쇄는 눈물길이 막히기 시작하는 초기에는 안약 점안이나 간단한 시술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완전히 막히게 되면 눈물길을 새로 만드는 수술을 해야 한다”며 “고령 환자는 S-1 경구 항암제를 복용할 때 눈물흘림 증상이 생기는지 면밀히 관찰하고, 증상이 발생하면 조기에 치료를 받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S-1 경구제를 단독요법으로 사용하는 경우 체표면적(BSA, ㎡)에 따라 하루 80~120mg을 28일간 복용 후 14일 휴약한다. 제일약품 ‘티에스원캡슐’, 명문제약 ‘테고캡슐’ 등이 대표적이다.
GBM·AA 치료에 쓰이는 ‘테모졸로마이드’
테모졸로마이드(temozolomide)는 경구용 알킬화제(alkylating agent) 항암제로 진행성 다형성교아종(glioblastoma multiforme, GBM)이나 미분화성상세포종(anaplastic astrocytoma, AA) 등의 악성뇌종양의 치료에 대표적으로 사용된다.
방사선치료와 병용요법 시에는 하루 체표면적(㎡) 당 75mg을 42일간 경구 투여한다. 혈액학적 및 비혈액학적 독성 기준에 따라 매주 이 약의 치료 연기 혹은 중단을 평가한다. 방사선치료와 병용기간이 끝나고 4주 경과 후, 6주기까지 단독 투여할 수 있다. 단독요법엔 150~200mg을 5일간 28일 간격으로 사용한다.
흔한 부작용으로 백혈구, 혈소판 감소와 같은 혈액학적 이상과 구강 캔디다증 감염, 변비, 구역, 구토, 탈모, 발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한국MSD ‘테모달캡슐’, 일동제약 ‘테모람캡슐’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허가받은 ‘비노렐빈타르타르산염’ … 타 약제 대비 탈모 부작용 적어
비교적 최근 출시된 경구용 세포독성항암제로 부광약품 ‘나벨빈연질캡슐’(성분명 비노렐빈타르타르산염, vinorelbine tartrate)이 있다. 2019년 2월 소세포폐암 및 진행성 유방암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지난 4월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20년 제4차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심의 결과 나벨빈연질캡슐 20mg, 30mg이 급여 적정성을 인정받았다.
이 약은 부광약품이 프랑스 피에르파브르(Pierre Fabre)로부터 도입한 오리지널 항암제로 기존 ‘나벨빈주’의 개량신약이다. 탈모 부작용 발생 비율이 다른 약제 대비 낮은 게 장점이다. 식사를 마친 후 바로 물과 함께 복용하며 초회 3회 투여 시 체표면적(㎡)당 60mg을 1주 1회 투여한다. 이후 네 번째 투여부터 1주 1회 80mg/㎡의 용량으로 증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