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와인을 퍼트린 종주국 … 끼안티, 바롤로·바르바레스코, 아마네로가 대표되는 특징 갖춰
프랑스인과 앙숙 관계를 꼽자면 오랜 시간 경쟁해 온 영국 혹은 독일을 든다. 하지만 프랑스인과 가장 싸움 붙이기 쉬운 국가를 선택하자면 이탈리아를 빼놓을 수 없다. 불같은 감상적인 성격도 그러려니와 축구, 음식, 음악, 미술 어느 것도 자신들이 유럽 아니 세계 최고라고 믿는 오만함이 꼭 닮았다.
와인도 그 중 하나다. 세계를 지배하는 프랑스 와인을 앞에 두고도 와인의 종주국은 자신이라며 눈을 부릅뜨는 이들이 이탈리아인이다. 사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탈리아인만큼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와인과 음식은 영혼과 같다.
유럽에 와인을 알린 종주국 … 지역마다 천차만별의 와인
이탈리아는 전 국토의 곳곳에 포도가 재배되고 있으며 포도 재배 면적은 스페인과 프랑스에 이어 3위이고 와인 생산량은 8억병으로 프랑스에 이어 2위이다.
이탈리아인은 로마시대부터 와인을 마셔왔다. 기원전 800년에 에트루리아인이 토스카나 지방에서 포도를 재배했고, 나폴리에서는 그리스인이 포도를 재배해 와인을 담가 마셨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와인의 발상지는 흑해 연안의 조지아(Georgia)이지만 포도의 역사는 인류보다 오래됐고 인류가 만든 포도주의 역사는 기원전 3000~4000년 전이어서 그 종주국를 찾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와인 문화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 퍼트린 선구자는 이탈리아인인 것은 틀림없다. 시저의 군대를 비롯한 로마군은 늘 와인을 통에 가득 담아서 이동했고, 이후 기독교가 들어서면서 이탈리아에서 퍼져나간 가톨릭수도원은 유럽 곳곳에 포도를 심어 미사용 포도주를 담갔다.
이탈리아의 국토는 한국처럼 남북으로 길게 뻗은 반도다. 최남과 최북의 위도가 10도 차이가 나고, 언덕과 산이 많으며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한국과 꼭 닮았다. 다르다면 한국보다 조금 더 남쪽에 위치했다는 점, 여름에 비가 적고 일조량이 많은 지중해성 기후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지리적 특성과 로마시대 이후 줄 곳 갈라져 있던 역사성이 더해져 이탈리아는 전국 각지에서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지역별로 와인의 특성이 다른 것은 어느나라나 마찬가지라고 반박할지 모르겠으나, 와인 공부를 시작한 초짜들이 대다수 나가떨어지는 부분이 이탈리아 와인 파트다. 포도의 품종도 다양하고 만드는 법도 제각각이다.
병에 핑크‧연두색 리본을 두른 와인이 최고 등급 … 슈퍼 토스카나 등 등급 외 와인도 인기
이탈리아 사람들은 와인과 음식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것을 프랑스처럼 규격화하지는 않는다. 마을과 가정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에 따라 자신의 스타일대로 각색의 와인들을 만들어 냈고 즐겼다.
하지만 와인이 중요한 수출품이 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일찍이 지역별로 와인 제조 기준을 정하고 품질을 관리해온 프랑스 와인에게 이탈리아 와인이 형편없이 밀린 것이다.
뒤늦게 이탈리아는 1963년 ‘와인용 포도과즙 및 와인의 원산지 명칭보호를 위한 규칙’을 제정해 원산지 및 등급 관리를 시작했다. 가장 높은 등급은 ‘원산지 명칭 통제 보증(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e Garantita: D.O.C.G)’ 와인으로 정부에서 보증한 최상급 와인을 의미한다. D.O.C 등급 중 이탈리아 농림성의 추천을 받고 정한 기준을 통과한 와인으로 병목에 레드와인은 분홍색, 화이트 와인은 연두색 주류납세필증을 두르고 있다.
다음은 ‘원산지 명칭 통제(Denominazione di Origine Controllata: D.O.C)’와인으로 원산지, 수확량, 숙성기간, 생산방법, 포도품종, 알코올 함량 등을 규정에 맞춰 낸 와인이다. 프랑스의 A.O.C. 급에 해당한다. 가장 낮은 등급인 ‘테이블 와인(Vino da Tabla: VDT)은 프랑스의 뱅드 테이블(Vin de Table)에 해당한다. 이탈리아 와인의 90%정도가 이 범주에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라벨에 와인의 색만 표시하고 원산지명은 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등급은 이탈리아 와인의 13%만 지키고 있다. 대다수의 와인은 정부에 등급 신청을 하지 않아 테이블 와인으로 국내외에서 판매된다. 야심있는 와이너리에서 전통에 따르지 않고 실험적인 양조법을 도입해 수준 높은 와인을 만들어 내는 경우도 많은데, 이또한 테이블 와인 등급으로 분류됐다.
이런 경우가 많아지자 1992년 등급 개정 때 D.O.C와 VDT사이에 ‘전형적 지리적 표시(Indicazione Geografica Tipica: IGT)’ 등급이 만들어졌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전통적인 ‘산지오베제(Sangiovese)’ 대신 ‘까베르네 쏘비뇽(Cabernet Sauvignon)’ 품종을 사용해 만들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슈퍼 토스카나 와인’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니 이탈리아 와인에서 등급을 따지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이탈리아 대표와인 … 끼안티‧바롤로‧바르바레스코‧아마로네
이탈리아 와인은 일조량이 많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당도가 높고 산미가 약한 편이라는 평가가 있지만, 지역마다 와인의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라 뭐라 평가하기 어렵다. 마을마다 저마다의 와인 양조법이 존재하고 토착 포도 품종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탈리아에 등록된 와인 종류만 해도 약 2000여종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3개 지역의 와인이 이탈리아 대표 와인으로 거론된다. 물론 다른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탈리아 와인 생산지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다. 이 지방의 와인으로는 ‘끼안티(Chianti)’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다. 처음에는 토스카나 중 끼안티 지방에서만 나오는 전통 와인인 끼안티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끼안티 근처 마을까지 생산지로 간주한다. 대신 끼안티 지방에서만 생산된 와인은 ‘끼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라는 이름이 따로 붙으니 참고하자.
끼안티 와인은 적당한 산미와 균형있는 무게감으로 식사와 함께 하기 적당해 널리 사랑받고 있다. 묵직한 붉은고기 요리보다는 가금류 요리나 파스타 등과 잘 어울린다.
토스카나주 지역 와인은 ‘끼안티’ 외에도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talcino)’와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Vino Nobile di Montepulciano)’ 등이 유명하다. 역시 산지오베제 품종으로 만들어지는데, 끼안티와 달리 장기 숙성 가능한 고급 와인으로 묵직하고 남성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북부에 위치해 스위스와 맞닿은 피에몬테주 지역도 와인이 많이 나온다. 이 곳의 대표와인은 바롤로(Barolo)와 바르바레스코(Barbaresco)다. 바롤로는 꽉 찬 풀 바디를 자랑하는 고급 와인으로 이탈리아에서는 ‘와인의 왕’이라고 불린다. 네비올로(Nebbiolo)라는 토착 품종으로 만들어지는 데 알코올 함량이 높고 묵직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병입 후 6년을 둔 다음에 마시는 게 좋으며, 좋은 빈티지라면 8년 이상을 놔둬야 본래의 맛을 볼 수 있다.
바르바레스코는 바롤로 마을에서 15km가량 떨어진 바르바레스코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품종, 재배방법, 양조방법은 바롤로와 같지만 떼루아의 차이로 훨씬 부드럽고 세련되며 가벼운 느낌을 가진다. 별명은 ‘와인의 여왕’. 최저 알코올은 12.5도이며 숙성은 오크통 1년을 포함해 최소 2년이고, 리제르바는 최소 4년 이상 숙성해야 한다.
이탈리아 북동쪽의 베네토(Veneto)는 가장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곳이다. 베네토주의 베로나는 2년 마다 이탈리아 대표 와인 박람회 비니탈리(Vinitaly)가 열리는 이탈리아 와인 수출의 중심지다.
베네토에서는 명품 와인인 아마로네(Amarone)와 베로나 북쪽에서 생산되는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스위트 레드 와인인 레치오토(Recioto)가 유명하다. 이 중 아마로네는 이탈리아 와인 중 가장 강한 향과 맛을 가진 고급 와인으로 유명하다.
아마로네는 아파시멘토(Appassimento)라는 기원전 3세기부터 전해지는 독특한 제조방법으로 양조된다. 코르비나(Cornina), 론디넬라(Rondinella), 몰리나라(Molinara) 3개 품종을 브랜딩한다. 9월에 포도를 수확 한 후 대나무 발 위에서 말려 수분을 증발시키고 한 달간 발효해서 오크통에서 24개월 숙성시킨다.
알코올 도수가 14~17%로 높고, 색은 루비를 연상시킬만큼 진하다. 향이 풍성하며 입으로 들어올 때 단맛으로 시작해 끝에 씁쓸함이 남는다. 고급 와인인 만큼 숙성해야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와인에 따라 10년 이상 숙성이 필요하기도 하다.
발폴리첼라는 몰리나라(molinara), 론디넬라(rondinella), 로시뇰라(rossignola), 네그라라(negrara), 코르비나(corvina), 펠라라(pelara) 품종을 브랜딩해서 만들며 바디감이 가볍고 산뜻하며 향이 풍부하다. 레치오토는 아마로네처럼 포도를 건조시켜 당도는 높힌 후 양조하는 달콤한 디저트 와인이다. 건조기간이 더 길고 양조 기간은 짧아 단맛이 강하고 알코올 함량은 상대적으로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