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경유차 폐차·발전소 중단 등 국내 대책만 집중 … 염증물질, 호르몬 교란해 우울증 유발
요즘 미세먼지는 계절을 가리지 않지만 3~4월 봄철에는 온화한 서풍을 타고 중국발 미세먼지가 더 자주, 더 짙은 농도로 한반도를 덮친다. 한반도가 위치한 북위 40~60도 구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편서풍이 강하게 부는 지역이다. 이로 인해 중국 동쪽에 위치한 한반도는 중국발 미세먼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는 베이징, 톈진, 허베이성 등 북동부 해안공업지대부터 남부지방까지 이어지는 대규모 공업지대에서 내뿜는 각종 유해물질이 섞여 있다.
미세먼지 발생 빈도와 피해는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미국 조지아공대는 국제과학잡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서 지구온난화와 북극해 빙하 감소에 따른 이상기후로 한국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중국발 미세먼지 유입량이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과 적도의 기온 차가 줄면 한반도를 관통하는 편서풍의 세기가 약해진다. 이럴 경우 한반도에 들어온 미세먼지가 동해안으로 빠져나가거나 흩어지지 않고 스모그처럼 한 장소에 오래 머물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될 위험이 높은 데도 정부가 소극적인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150억원을 들여 실시했던 ‘미세먼지 대중교통 무료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는 논란에 부딪혀 전면 폐기됐다.
주무 부처인 환경부는 올해 7조2000억원을 투입해 미세먼지를 30% 줄이겠다는 계획안을 발표했지만 대부분 노후 경유차 및 화물차 조기폐차, 오염물질 배출 저감장치 부착, 전기차 보조금 지원,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등 국내 대책에만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미세먼지의 50~80%가 중국에서 날아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내정간섭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이유로 중국 정부에 공식적인 이의 제기나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협력사업 및 공동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날지 미지수다.
하루가 멀다하고 하늘을 뒤덮는 미세먼지와 국외 대책은 손놓고 남 탓만 하는 정부로 인해 상당수 국민들이 집단적인 무력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세먼지 자체가 정신 건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민경복 서울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호흡기를 통해 들어온 미세먼지가 사이토카인 단백질을 활성화하면 체내 염증 반응이 촉진돼 전신 염증 및 산화스트레스의 발생 위험이 높아진다”며 “염증과 산화스트레스가 증가하면 ‘행복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 우울증이 유발 및 악화되고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5년 삼성서울병원의 연구결과 미세먼지 농도가 37.82㎍/㎥ 높아질 때마다 국내 전체 자살률이 3.2%씩 상승했다. 최근 실시된 서울대 의대 연구에서도 대기 중 미세먼지는 자살 위험을 최대 4.03배 높였으며, 여성보다 남성이 미세먼지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더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질환 환자는 미세먼지가 중추신경계에 침입, 면역체계를 교란하면 질환이 악화되면서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다. 미세먼지를 피하기 위해 실외활동과 외출을 자제하는 것도 정신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다. 일조량이 줄면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 우울감이 커지게 된다.
이밖에 미세먼지는 암, 호흡기질환, 심혈관질환 등의 발병 위험을 높여 수명을 단축시킨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결과 2014년 한 해 동안 약 700만명이 미세먼지로 인해 기대수명보다 일찍 사망했다. 국내 사정도 비슷하다. 2016년 발표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미세먼지로 인한 국내 조기사망자 수는 1만4000명에 달했다. 현재 미세먼지는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로부터 석면, 벤젠과 같은 1군(Group 1) 발암물질로 지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