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거나, 긴장하지도 않았는데 시도때도 없이 땀을 흘리거나, 하루종일 기운이 없다면 갑상선 이상을 의심해보는 게 좋다.
갑상선은 목 앞부분에 위치한 내분비 기관으로 신진대사에 관여하고 체온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 ‘인체의 보일러’로 불린다. 뇌 속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갑상선자극호르몬의 신호를 받아 갑상선호르몬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해조류 등으로 섭취하는 요오드는 갑상선호르몬 생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갑상선호르몬(T3·T4)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갑상선기능항진증, 반대로 너무 적게 생성되면 갑상선기능저하증이 발생할 수 있다. 저하증인지, 항진증인지 여부는 갑상선호르몬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갑상선호르몬은 요오드가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따라 3개의 요오드 원자를 가진 ‘T3(트리요오드티로닌, triiodothyronine)’, 4개의 요오드 원자로 구성된 ‘T4(티록신, thyroxine)’으로 나뉜다. T4가 갑상호르몬의 70%, T3가 나머지 30%를 차지한다. 보통 T3와 T4는 같이 올라가고 내려간다.
T3는 전신질환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임신, 간질환, 신장질환 환자에선 갑상선 자체 기능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므로 T4가 갑상선 기능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병원마다 수치는 약간 차이나지만 대체로 건강한 성인의 갑상선호르몬 정상수치는 T3가 0.58~1.59ng/㎖, T4는 4.5~11.0㎍/㎗ 정도다.
갑상선자극호르몬(TSH)검사도 갑상선질환 진단에 유용하다. 박경식 건국대병원 외과 교수는 “갑상선호르몬이 필요 이상으로 증가하면 갑상선자극호르몬 분비가 감소하고, 반대로 부족하면 갑상선자극호르몬이 증가해 갑상선호르몬 생성을 촉진한다”며 “즉 갑상선기능항진증일 땐 TSH 수치가 내려가고, 저하증일 땐 올라가는 양상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이 검사는 갑상선 기능 변화를 측정하는 데 유용하지만 일부 질환을 놓칠 수 있어 T4 수치와 조합해 해석하는 게 적합하다. 정상수치는 0.35~4.49μIU/㎖이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은 갑상선호르몬이 잘 생성되지 않아 신진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질환이다. 겨울에 보일러가 고장나 집안에 제대로 온기를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항상 추위를 느끼고, 피로하며, 매사에 의욕이 떨어진다.
식욕이 감소해 잘 먹지 않는데 살이 찌고 몸이 자꾸 붓는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변비가 생긴다. 피부가 푸석푸석해지고 얼굴이 부어 화장이 잘 받지 않으며, 월경이 불규칙해지고 성욕이 감소하면서 불임이 동반되기도 한다. 혈중 프로락틴(prolactin, 젖분비 호르몬) 수치를 증가시켜 유즙이 분비되기도 한다. 호르몬이 심하게 부족하면 심혈관계 합병증이나 혼수 같은 신경학적 증반이 동반될 수 있다.
어린이가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하면 키 성장이나 지능발달에 문제가 생긴다. 태아도 마찬가지이므로 임산부는 산전검사로 갑상선기능검사를 받아야 한다.
이 질환의 가장 흔한 원인은 하시모토 갑상선염(자가면역성 갑상선염)이다. 이 질환은 갑상선에 만성적인 염증이 발생해 갑상선호르몬 생성 기능이 손상된다. 또 뇌하수체 기능이 저하되면 갑상선자극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올 수 있다.
반대로 갑상선기능항진증은 갑상선호르몬이 많이 만들어지는 질환이다. 이 호르몬이 과다 생성되면 평소보다 많은 에너지가 소모돼 빠르게 지치고 체중이 줄어든다. 더위를 참기 어렵고, 땀을 많이 흘리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발떨림·다리풀림·극심한 피로감·화를 못 참는 증상 등이 동반된다. 배볏 횟수가 잦아지고 설사가 나오기도 한다.
항진증의 주요 원인은 ‘그레이브스병’으로 전체의 80%가량을 차지한다. 그레이브스병은 갑상선자극호르몬(TSH) 수용체에 대한 자가항체가 갑상선을 자극해 갑상선호르몬이 증가한다. 유전적 영향을 많이 받고 스트레스가 유발요인이 될 수 있다.
갑상선기능항진증 증상에 눈이 튀어나오면서 안구건조증, 각막염, 복시(사물이 겹쳐 보임) 등이 동반되는 것을 그레이브스 안병증(Graves‘ ophthalmopathy)이라고 한다. 이밖에 뇌하수체 종양 등으로 호르몬 분비 체계에 문제가 생기면 갑상선호르몬이 과다분비될 수 있다.
박 교수는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오래 방치하면 골감소증과 골다공증으로 이어져 골절 위험이 높아지고, 고칼슘혈증이나 고칼슘뇨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산부의 입덧은 갑상선기능항진증과 연관된다. 임신을 하면 ‘인간 융모성 성선자극호흐몬’(hCG) 분비량이 늘어 메스꺼움과 구토 증상을 겪게 된다. hCG호르몬은 갑상선자극호르몬(TSH)과 유사한 작용을 해 갑상선을 자극, 경미하고 일시적인 갑상선기능항진증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만약 임산부가 정기검진에서 갑상선호르몬 수치가 높게 나온다면 임신에 의해 일시적으로 나타난 현상인지, 실제로 갑상선질환이 발병 또는 재발한 것인지 판별하는 게 중요하다.
갑상선기능저하증과 항진증은 치료법도 차이난다. 저하증은 갑상선호르몬제를 복용해 부족한 갑상선호르몬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1일 1회 아침 식전에 복용하는 게 좋고, 아침에 복용하는 것을 깜빡했다면 하루를 넘기지 말고 늦게라도 챙겨 먹는 게 좋다.
1년 정도 약을 복용한 뒤엔 일시적으로 복용을 중단하고, 2개월 뒤 갑상선기능검사를 실시해 예후를 체크한다. 검사 결과 갑상선 기능이 정상으로 유지되면 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지만 재발하면 다시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이후 최소 6~12개월에 한번씩 갑상선기능검사를 받아야 한다. 갑상선암으로 갑상선전절제술을 받았거나 방사성요오드 치료를 받은 사람은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
갑상선기능저하증에 요오드 건강기능식품이 좋다는 것은 낭설이다. 박 교수는 “한국은 3면이 바다여서 천일염·해조류·해산물 등을 통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장하는 하루 200㎎보다 많은 양의 요오드를 섭취하고 있으므로 한국인에서 요오드 결핍에 의한 갑상선기능저하증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며 “일반적인 식사를 하는 사람이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요오드를 추가로 섭취하면 오히려 요오드 과잉에 의한 갑상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갑상선기능저하증 환자가 다량의 요오드를 섭취하면 오히려 갑상선호르몬 분비가 억제돼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은 ‘프로필치오우라실(PTU, Propylthiouracil)’과 ‘메티마졸(Methimazole)’ 같은 항갑상선제를 12~18개월간 복용하는 방식으로 치료한다. 약물치료의 완치율은 40~50%이며, 재발률이 높은 게 단점이다. 약 1년간 항갑상선약제를 투여해 갑상선자극호르몬과 TSH 수용체 항체가 정상화되면 치료를 중단하고, 그렇지 않으면 6~-13개월 더 투여한 뒤 방사성요오드치료를 고려해볼 수 있다.
방사성요오드치료는 방사선을 내는 요오드가 녹아 있는 물을 마시는 방법이다. 이럴 경우 위장관에서 흡수된 요오드가 갑상선을 파괴해 호르몬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임산부나 수유모는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며, 임신을 계획 중이라면 방사선요오드 치료 후 6~12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 치료 부작용으로 갑상선기능저하증이나 갑상선중독증이 발생할 수 있다.
장기간 약물치료에도 반응이 적거나, 약물 부작용 탓에 방사성요오드 치료가 어렵거나, 갑상선종이 매우 커 주변 조직을 압박하거나, 갑상선암이 의심되는 결절이 같이 있을 땐 갑상선절제수술이 필요하다.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예방하려면 칼슘, 인, 비타민B와 비타민D 함량이 높은 음식을 자주 섭취하고 해조류, 술, 녹차, 콜라, 향신료 등은 섭취를 자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