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효과를 높이는 항암 나노 약물전달체가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남기택·유성숙 연세대 의대 의생명과학부 교수와 윤주영 이화여대 자연과학대 화학나노전공 교수팀은 첨단 나노(Nano)기술을 이용해 합성한 항암물질을 유방암세포에 근접시킨 후 레이저를 조사해 활성화시킨 결과 높은 암세포 사멸효과를 거뒀다고 8일 밝혔다.
수술이 어렵거나 수술 후 남아있는 암세포를 제거하려면 방사선치료가 필요하다. 방사선에서 나온 에너지는 암 세포 주변에서 활성산소를 발생시켜 암세포의 DNA를 파괴해 없앤다. 하지만 저산소(hypoxia) 상태인 암세포는 높은 비율로 살아남아 성장과 증식을 통해 재발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남기택 교수는 “암세포는 스스로 혈관(신생혈관)을 만든 뒤 주변 정상혈관과 연결시켜 필요한 영양과 산소를 얻는다”며 “암세포에 의해 생성된 신생혈관들은 정상혈관보다 상대적으로 조직이 엉성하고 구조가 상당히 불규칙하게 뻗어나가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특징 탓에 혈관과 멀리 떨어져 있는 암세포는 산소와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저산소 상태를 유지한다. 이 상태에선 정상세포보다 방사선 조사에 대한 저항력이 100배 이상 강해지고 항암 약물치료도 잘 듣지 않아 환자와 의료진의 부담이 가중된다.
연구팀은 저산소 상태 암세포를 사멸시키는 방법으로 ‘광(光)역학 치료법(PDT)’에 주목했다. 이 치료법은 암 환자에게 치료제를 주사한 뒤 인체에 무해한 적외선 영역대의 레이저빛을 암 발생 부위에 조사한다. 이 때 치료제 안에 포함된 광민감제에서 화학반응이 일어나면서 활성산소가 생성돼 암세포가 사멸된다.
하지만 암세포만을 골라 치료반응을 일으키는 선택성이 낮은 탓에 주변 정상조직까지 손상시킬 수 있어 소화기계암, 후두암, 폐암 환자 중 수술이나 방사선치료가 어려운 사례에 한해 보조치료법으로 사용돼왔다.
이에 연구팀은 첨단 ‘초분자 나노구조’ 기술을 통해 ‘아연 프탈로시아닌(Zinc(II)phthalocyanine, ZnPc)유도체(Pcs)’를 광민감제로 만들고, 항암물질인 ‘미톡산드론(Mitoxantron, MA)’의 합성물질인 ‘Pcs-MA’를 제조했다. 이어 새 합성물질의 항암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동물실험을 실시했다.
연구팀은 난치성 유방암으로 알려진 삼중양성유방암 세포주를 마우스에 이식해 암세포를 발현시킨 뒤 광민감제(Pcs), 항암물질(MA), 광민감제+항암물질 합성물질(Pcs-MA) 등 세 가지를 각각 투여하고 암 부위에 레이저를 1회만 조사했다.
20일 이후 마우스의 암세포 크기를 측정한 결과 Pcs와 MA를 단독 투여한 군은 암세포가 각각 400% 증가했다. 반면 Pcs-MA 투여군은 암세포가 80% 이상 축소됐다.
남기택 교수는 “Pcs-MA가 주변 정상세포보다 유독 유방암 세포에만 선택적으로 강하게 반응하는 것을 확인했다”며 “Pcs가 레이저에 의해 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활성산소와 MA의 이중 항암효과가 기대 이상의 암세포 사멸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또 암세포의 저산소 상태를 유지하는 ‘HIF1-alpha’가 줄면서 세포내 산소수치가 상승해 Pcs가 더 활성화되고, 이를 통해 세포 사멸효과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후 Pcs-MA가 어떤 원리로 암세포의 저산소 상태를 개선하는지 입증한다면 난치성 암 치료의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성숙 교수는 “새 치료법은 기존 광역학치료의 단점으로 꼽힌 정상조직 손상이 거의 없었고, 치료제가 몸속에 남아 주요 내부 장기에 독성을 일으키는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다”며 “Pcs-MA 합성물질은 24~48시간 안에 소변으로 배출됐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유방암을 비롯한 간암, 위암 등 다양한 고형암세포 치료에 Pcs-MA 합성물질을 활용한 광역학치료의 사멸효과를 추가로 연구할 계획이다. 남기택 교수는 “이번 연구는 수술이나 방사선치료가 어려운 저산소 상태 암세포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 나노과학 학술지인 ‘미국화학회 나노(ACS Nano, IF 13.9)’ 최근호에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