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의 운동기능장애로 발생하는 변비는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기능성질환이다. 소아청소년과를 찾는 영·유아 환자의 약 7%를 차지할 만큼 어린이에서 흔하다. 2016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빅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변비 환자 61만6000명 중 15만9000명(25.8%)이 9세 이하 어린이였다.
변비의 약 80%는 약물치료만으로 개선되지만 나머지 20%는 증상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다. 이럴 땐 선천적 장운동 이상으로 변비 증상이 동반되는 선천성 거대결장을 의심해보는 게 좋다.
영유아 5000명 중 1명꼴로 발생하는 이 질환은 장운동에 문제가 생겨 변비와 복부팽만이 나타난다. 장혜경 경희대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정상적인 신생아는 출생 후 1~2일 내에 태변을 배출한다”며 “하지만 선천성 거대결장이 있으면 태변 배출이 늦어지면서 복부팽만, 녹색구토, 설사 등 증상이 동반된다”고 설명했다. 적절한 약물치료를 받아도 변비가 지속되거나, 자녀의 배가 심하게 부어 잘 먹지 못하는 증상이 지속되면 소아외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
선천성 거대결장을 앓으면 음식 섭취에 문제가 생겨 체중 증가나 키 성장이 또래보다 늦다. 소장결장염이 함께 생기면 변비와 설사가 동반될 수 있다. 심하면 열이 나면서 탈수와 패혈증이 겹쳐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이 질환은 장의 운동을 담당하는 부교감신경세포의 이상에 의해 발생한다. 부교감신경세포는 태아 시기에 장기가 형성될 때 입에서 항문까지 이동하면서 분포한다. 이 세포의 이동 과정에 문제가 생겨 부교감신경이 장의 어느 부위에서 멈춰버리면 그 아래쪽에는 신경세포가 도달하지 못한다. 신경세포가 자리잡지 못한 장 부위는 운동기능을 상실한다. 결국 대변이 신경세포가 분포한 마지막 장 부위에 정체되고, 장이 점차 커지면서 거대결장이 된다.
선천성 거대결장은 대부분 S상결장(구불결장, 대장과 직장의 연결 부위)이나 직장에 신경세포가 없어 발생한다. 드문 확률로 대장과 소장 전체에 신경세포가 없는 사례도 보고된다.
희귀난치성질환 중 하나인 ‘단장(短腸)증후군’은 소장에 신경세포가 존재하지 않아 소장의 50%가량이 기능을 상실해 흡수장애와 영양실조를 유발한다. 사망률이 30%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선천성 거대결장은 수술이 유일한 치료법이다. 신경세포가 존재하는 장을 항문까지 내려 정상적인 배변이 이뤄지게 한다. 먼저 관장으로 대장을 가득 채운 대변 덩어리를 제거하고 다량의 식염수로 병변을 여러번 씻어낸다. 이후 내시경을 항문으로 삽입해 대장에 접근하고, 비정상적인 장을 절제한 뒤 정상적인 대장과 항문 조직을 연결해준다. 비정상적인 장 길이에 따라 약 2~6시간 소요된다. 수술 후 초기엔 대변을 지리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장혜경 교수는 “수술 시 잘라내는 부위는 대부분 직장과 S자 결장 정도로 국한돼 절개 없이 복강경을 항문에 삽입해 수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꼭 선천성 거대결장 같은 질환이 아니더라도 소아변비는 그 자체로 아이의 성장과 건강에 불이익을 준다. 소아변비는 이유식을 처음 먹기 시작하거나,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할 때 등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 생기기 쉽다. 변비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3분의 1가량이 만성변비로 진행돼 성인이 돼서도 증상이 지속될 수 있다.
아이의 배변 횟수가 1주일에 2회 이하이거나, 단단하고 마른 변 때문에 대변을 보기 힘들거나, 배가 팽창된 상태로 복통을 호소하거나, 상체를 뻣뻣하게 세우고 발끝으로 걷는 모습이 관찰되면 병원을 찾아 변비 여부를 확인해보는 게 좋다.
변비 증상을 제때 파악하지 못해 아이가 오랜 시간 항문에 힘을 주는 것이 반복되면 항문이 밖으로 빠지거나 항문점막이 찢어질 수 있다. 찢어진 부위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대변을 보면 같은 부위가 지속적으로 찢어져 피가 나는 소아치질로 악화된다. 장 교수는 “어른은 항문혈관과 점막이 늘어나 빠지는 치핵이 가장 많은 반면 어린이는 변비가 지속돼 변을 볼 때 항문점막이 찢어지는 치열이나 항문이 가려운 항문소양증의 비율이 높은 편”이라며 “소아변비는 성인 변비에 비해 치질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고, 변비 탓에 영양소 흡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성장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소아변비를 예방하려면 대변을 참지 않고 일정한 시간에 배변하는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 아이가 하루 2~3회, 식사하고 나서 10~20분 후 5분 정도 변기에 앉도록 지도한다. 변기에 걸터앉은 자세에서 상체를 앞으로 35도 정도 숙이고 다리는 약간 벌린다. 발 아래에 작은 욕실의자를 두고 양발을 올려 허벅지가 가슴 쪽으로 올라오는 자세를 취하면 배변에 도움된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식품을 먹이면 단단한 대변을 무르게 하는 데 도움된다. 과일과 채소를 먹일 땐 주스보다 통째로 먹이는 게 좋다. 아침을 거르면 위와 대장의 반사운동이 활발하지 않아 배변 시간대를 놓칠 수 있어 잡곡과 채소 위주로 아침 식단을 챙겨야 한다. 아이가 변비를 앓을 경우 임의로 관장하는 부모가 종종 있는데 자칫 항문에 상처를 내거나, 아이에게 고통과 트라우마를 줘 배변습관을 망치고 변비를 악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