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텍사스주에서 네 살 소년이 물놀이 후 갑작스런 호흡곤란, 구토, 설사 증상을 호소하다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프랭키 델가도(4)는 가족과 함께 수영장에서 놀던 중 갑자기 밀려오는 물결에 휩쓸리면서 다량의 물을 마시게 됐다. 다행이 별다른 이상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즐겁게 물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귀가 후 원인모를 구역질과 설사가 나타났고 비상약을 먹어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상태가 악화되자 부모와 함께 병원을 찾았지만 입원 다음날 아침 결국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폐와 심장 부근에 다량의 물이 고여 있는 게 발견됐고 의료진은 사인이 ‘마른 익사’라는 결론을 내렸다.
장마가 주춤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수영장이나 계곡, 바다로 물놀이를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여름철 물놀이는 익사사고는 물론 각종 수인성 감염병의 원인이 된다.
델가도 어린이의 사례처럼 익사사고는 물 속이 아닌 물 밖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마른 익사’(Dry drowning)는 물에서 나온 뒤 24시간 이내에 호흡곤란 증세가 생기는 것으로 물놀이 중 기도로 넘어간 물이 원인이 된다. 미국에선 전체 익사 사고의 2~10%가 물밖에서 발생한다는 보고도 있다.
주로 만 3세 미만 어린이에서 발생한다. 성인의 목은 후두가 체내로 들어온 물이 폐로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3세 미만 어린이는 후두가 완전하게 발달하지 않아 물을 많이 마실 경우 기도로 넘어갈 수 있다.
소량의 물이 폐 속으로 흘러 들어가 폐를 자극하면 폐부종과 염증을 일으켜 가슴통증을 유발한다. 특히 후두와 호흡근육이 떨리면서 호흡이 가빠지고, 결국 혈액 내 산소가 부족해져 심장마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물에서 나온 후 24시간 이내에 호흡 불안정, 극도의 피로감, 행동 변화, 기침, 가슴통증, 청색증 등이 동반된다면 가급적 빨리 병원 응급실을 찾는 게 좋다. 특히 호흡을 정상적으로 못하면서 무기력해지거나, 갑자기 불안해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증상은 마른 익사 사례에서 흔히 관찰되는 증상이다. 간혹 48시간이 지난 뒤에야 증상이 나타난 사례도 있어 물놀이 중 아이가 물을 많이 마셨다면 시간을 두고 주의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성인이라도 평소 천식이나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호흡기질환 환자는 정상인보다 마른 익사 위험이 높아 물놀이 시 안전에 신경써야 한다.
물놀이 중 다량의 물을 마셨다면 익사 외에도 장티푸스·콜레라·세균성이질 등 수인성 감염질환에 걸릴 수 있다. 이들 질환에 걸리면 복통, 설사, 발열 등이 동반돼 소중한 휴가를 망치게 된다.
물이 입이 아닌 귀로 들어갔다면 외이도염 등 귓병을 앓게 된다. 이 질환은 대표적인 물 속 세균인 녹농균이 귓구멍과 고막을 연결하는 외이도에 침투해 귀 먹먹함과 통증을 초래한다. 면봉이나 손으로 귀를 팔 경우 상처나 염증이 생겨 증상을 키울 수 있다. 귀를 바닥으로 향하게 한 뒤 가볍게 뛰어 물을 빼낸 뒤 드라이기를 이용해 말려주는 게 좋다.
물놀이 질병을 예방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면 수영 전후 샤워는 필수다. 제대로 씻지 않고 물에 들어가면 각종 세균과 땀, 대변 같은 배설물이 물에 씻겨나간다. 한 조사결과 성인은 평균적으로 완두콩 한 알 정도의 무게인 0.14g의 대변을, 어린이는 성인보다 100배 많은 대변을 수영장에 흘린다고 한다.
사람의 배설물과 땀이 수영장내 염소 성분과 결합하면 ‘클로라민(chloramine)’이라는 독성물질이 생성돼 기침, 발진, 눈 따가움 및 충혈, 가려움증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와포자충(cryptosporidium, 크립토스포리디움)은 염소 물질에 반응하지 않으므로 물로 깨끗이 씻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 기생충에 감염되면 장염과 비슷한 설사·복통·구토·발열 등이 동반되고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탈수와 영양부족으로 사망할 수 있다.
평소 허혈성 심장질환이나 고혈압 등 순환기계질환 환자는 여름철 물놀이 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충분한 준비운동 없이 찬물에 들어갈 경우 높은 기온으로 확장됐던 피부혈관이 갑작스럽게 수축하면서 말초혈관으로 들어오는 혈액량이 줄어 서맥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물놀이 중 다리에 쥐가 날 때 몸을 함부로 움직이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홍승우 대전선병원 응급의료센터장은 “먼저 몸을 둥글게 모으고 물 위에 뜨도록 한다”며 “이후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물 속에 얼굴을 넣고 손으로 경련이 일어난 쪽의 엄지발가락 끝을 몸 쪽으로 최대한 잡아 당겨주면 증상 완화에 도움된다”고 설명했다. 통증이 가라앉은 뒤에는 경련이 일어난 곳을 마사지하면서 천천히 육지로 향하고, 물 밖으로 나온 뒤에도 경련이 일어난 부위를 충분히 주물러주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