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0세인 A 씨는 3년 전부터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이가 들어 그런가보다 생각했는데 올해부터 보폭이 좁아지고 자신도 모르게 종종걸음을 걷거나, 평지를 걷다가 중심을 못 잡아 넘어지기도 했다. 기억까지 나빠져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도 부지기수여서 꼭 참석해야 하는 친지 결혼식에 말없이 불참해 가족들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유난히 소변이 자주 마려운데 한 번에 시원하게 나오지 않아 불편함을 느꼈고, 외출 중 갑자기 생긴 요의를 참지 못해 바지에 실수도 했다.

고령 노인이 이런 증상을 자주 겪는다면 치매를 의심해볼 수 있다. 치매는 ‘뇌손상에 의해 기억력을 비롯한 인지기능장애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발생 원인에 따라 치료법이 달라지는데 알츠하이머병·혈관치매·루이체치매·파킨슨치매 등은 약물치료로 증상을 조절한다. 하지만 증상 자체를 개선하는 것은 어려워 치매는 치료 불가능한 질환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상압수두증에 의한 노인성 치매라면 근본치료가 가능하다. 뇌는 단단한 두개골 안의 공간에서 뇌척수액 속에 떠 있는 상태로 위치한다. 이로 인해 뇌가 두개골에 눌리지 않고 외부충격에 대한 완충 공간도 가질 수 있다. 뇌척수액은 여러 신경호르몬을 전달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도 한다. 뇌 안에서 생성돼 뇌 주변을 순환한 뒤 뇌로 다시 흡수되며 120~150㎖ 정도로 유지된다.

뇌척수액이 과다 생성되거나 덜 흡수돼 뇌를 압박하는 상태를 수두증이라고 부른다. 또 뇌척수액의 압력이 정상 범위인데도 수두증이 나타나면 정상압수두증이라고 한다.

압력은 그대로지만 뇌척수액이 들어있는 뇌실의 크기가 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때 뇌척수액을 허리에서 주사로 30~50㎖ 뽑아주면 보행·기억·배뇨장애가 두드러지게 개선된다. 시술효과는 며칠이 지나면 사라지므로 정상압 수두증이 확실할 경우 과다한 뇌척수액을 복강 등 몸의 다른 곳으로 빼주는 ‘션트수술’로 개선된 효과를 유지할 수 있다.

정상압수두증은 70세 이상 노인 100명 중 2명에서 볼 수 있는 비교적 흔한 병으로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으로 오인하기 쉽다. 노년기에 기억저하와 보행 및 배뇨장애가 동반되면 정상압수두증 여부를 확인한 뒤 수술로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
박영호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정상압수두증처럼 치료 가능한 치매도 있다는 사실을 환자들이 기억해주길 바란다”며 “치매는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치료 시기를 놓치는 환자들이 많은데 일단 검진을 몇 번 받고 적합한 치료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