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뚱뚱한 몸매 때문에 우울해하던 사람이 살을 빼면 정말 행복해질까. 의학계에선 내과적 건강척도인 콜레스테롤·중성지방 수치와 우울증 또는 자살 등 정신건강과의 관계를 두고 20년 가까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2012년 미국 듀크대 연구팀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낮으면 우울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3년뒤 미국 라이스대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비만 환자는 우울증 확률이 2배 높다는 연구논문을 내놓으며 듀크대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흔히 뚱뚱한 사람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위축돼 우울증 위험이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반대로 마른 체형이라고 해서 무조건 행복다고는 보기 어렵다. 단순히 체형만 갖고 우울증 위험을 진단하기에 인체는 너무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어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 등을 꼼꼼이 따져봐야 한다.
몸속에 지방이 너무 없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으면 우울증과 자살 위험이 증가한는 주장은 지방세포와 ‘세로토닌’ 호르몬의 상관관계에서 나온다. 무리한 다이어트로 혈중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너무 낮아지면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세로토닌 양도 함께 줄어 우울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세로토닌은 기분조절과 식욕·수면을 관장하는 호르몬으로 부족하면 매사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다.
콜레스테롤은 ‘좋은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HDL(High Density Lipoprotein, 고밀도지단백질)과 ‘나쁜 콜레스테롤’로 볼리는 LDL(Low Density Lipoprotein, 저밀도지단백질)로 구분된다. HDL-콜레스테롤은 혈액 1㎗당 남성은 35~55㎎, 여성은 1㎗당 45~65㎎일 때 정상으로 본다. HDL 수치가 기준치보다 낮으면 대사증후군의 하나인 저HDL콜레스테롤혈증이 동반되고 우울증 등이 동반될 수 있다. LDL-콜레스테롤은 혈액 1㎗당 130㎎ 이하를 정상으로 보며 수치가 높아질수록 관상동맥질환 등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중성지방은 대체로 많을수록 불리하다. 김태석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HDL·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적정 범위를 벗어나거나, 중성지방 수치가 높아질수록 우울증·자살 빈도가 증가했고 특히 중성지방과 우울증의 관련성이 상대적으로 큰 경향을 보인다”며 “중성지방 수치가 정상치인 150㎎/㎗보다 높은 중년 성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은 2.2배, 자살사고는 3.7배가량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콜레스테롤이든 중성지방이든 인위적으로 줄이거나 늘릴 필요 없이 적정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신애선·강대희 서울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와 미국 하버드대 정선재 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저체중과 비만 모두 우울증을 유발했다. 저체중은 정상체중보다 우울증 위험이 16% 높았고, 비만인 경우에도 13% 증가했다. 특히 여성은 비만일 때 우울증 위험이 21%로 남성(3%)의 7배에 달해 날씬함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강대희 교수는 “몸의 영양 상태는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살을 빼려는 사람들이 많지만 저체중도 비만 만큼이나 정신건강에 좋지 않으므로 건강한 식습관과 규칙적인 유산소운동으로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김태석 교수는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를 관리하는 것은 심뇌혈관질환 등 주요 신체질환은 물론 자살이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예방하는 데 중요하다”며 “튀김·육류·가공육 섭취는 줄이고 섬유질이 풍부한 통곡물·콩류·채소·과일 등을 자주 먹도록하라”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