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의 비트(beet)는 ‘뿌리채소의 보석’이라 불린다. 서양에서는 아름다운 색과 풍부한 단맛을 지닌 비트를 예부터 샐러드, 반찬, 수프 등의 요리 재료로 활용해왔다. 사탕무(Sugar beet)와 형제로 둘다 쌍떡잎식물 중심자목 명아주과 뿌리채소다. 비트는 사탕무에 비해 단맛이 덜하며 열매 단면도 하얀색이 아닌 붉은색을 띤다.
비트는 유럽 남부 지역이 원산지다. 동아시아에서는 근공채(根恭菜), 홍채두(紅菜頭), 화염채(火焰菜) 등으로도 부른다. 꽃은 노란빛을 띤 녹색이며 잎은 연한 녹색으로 윤이 난다. 유럽에서는 재배가 쉽고 풀 전체를 식용할 수 있어 인기가 좋다. 비트는 콜라비와 생김새가 비슷해 비교된다. 둘다 1980년대 후반부터 국내 재배가 시작됐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콜라비는 양배추의 일종으로 뿌리를 떼내고 굵고 둥글게 자란 알줄기를 먹는다.
비트는 크게 붉은비트, 황금비트, 줄무늬비트 등으로 나뉜다. 붉은비트는 가장 많이 알려진 종으로 뿌리가 짙은 적갈색이다. 단맛이 풍부하고 흙냄새가 강하다. 황금비트는 과육이 밝은 황금색을 띤다. 붉은비트보다 단맛과 흙냄새가 덜하다. 이파리, 줄기, 잎 등이 모두 금색인 게 특징이다. 줄무늬비트는 과육에 빨간색과 흰색이 줄무늬를 그리고 있다. 열을 받으면 줄무늬는 사라진다. 유럽 전역에서 잘 자라지만 국내에서는 제주도가 주산지로 꼽힌다.
비트는 열량이 적고 콜레스테롤이 적게 함유돼 있다. 비타민C와 비타민A도 포함돼 있다. 생비트는 엽산의 보물창고로도 불려 혈압을 낮추는 효과를 가진다. 뿌리에선 글리신베타인을 찾을 수 있다. 이 성분은 심장병과 뇌졸중 위험을 줄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비트의 색을 내는 베타닌 성분은 ‘비트레드’라는 이름으로 여러 음식에 들어간다. 최근 디저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레드벨벳 케이크에도 비트레드가 활용된다. 비트를 먹은 뒤 대소변이 붉게 나올 수 있는데 이는 비트레드의 영향이다.
린다 피터슨 미국 워싱턴대 의대 교수팀이 근(筋) 기능이 떨어진 심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비트 주스를 섭취시킨 결과 환자의 근력과 근활성도가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환자에서 혈압이 약간 변화됐지만 부작용이 발생한 사례는 관찰되지 않았다.
린다 피터슨 교수는 “비트를 먹은 환자에서 일산화질소의 생체이용효율이 높아지며 근력이 향상됐다”며 “이번 연구로 비트가 심부전 환자의 근력과 근활성도를 향상시킨 결과가 나왔지만 심부전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미치는 영향을 밝히는 후속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기 중 일산화질소는 질소가 고온에서 산화돼 발생하는 것으로 인체에 매우 유독한 가스성 물질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98년 페리드 뮤라드 미국 휴스턴 텍사스대 교수가 체내에선 일산화질소가 생체신호전달물질로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고 관련 면역기능을 증진시킨다는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그의 이론은 ‘비아그라’ 개발에도 적용됐다.
비트는 뿌리채소로 알려졌지만 잎도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비트잎은 부드러운 식감을 갖고 있어 살짝 데쳐 샐러드로 사용해도 좋다. 육류 등과 함께 볶거나 끓이는 요리에 추가하면 요리의 향과 맛을 살린다. 비트 뿌리는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지만 잎은 쉽게 시들어져 싱싱할 때 빨리 먹는 게 좋다. 보관 시에는 플라스틱백에 담아 냉장실에 두면 된다.
비트는 밀도가 높은 채소라 조리시간이 오래 걸린다. 작은 사이즈의 비트는 끓여 요리하지만 일반적으로 압력솥에 찌거나 구워 먹는다. 전문가들은 굽거나 찌는 방법이 비트의 맛과 향을 살리기 좋다고 말한다. 비트의 즙을 보존하려면 껍질을 벗기지 않는 게 좋지만 구울 때는 껍집을 벗기고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 요리해야 골고루 익고 조리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
비트는 상큼한 오렌지와 같은 과일과 잘 어울린다. 치즈와 함께 먹으면 비트 특유의 단맛과 부드러운 치즈맛이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이룬다. 머스터드, 케이퍼 등 톡 쏘는 매운맛을 가진 소스나 드레싱과도 좋은 조합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