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고혈압 환자를 ‘보툴리눔톡신’, 즉 보톡스시술로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박휴정 마취통증의학과 교수와 장기육 순환기내과 교수팀은 4가지 이상의 약과 신장신경차단술로도 조절되지 않는 고혈압 환자에게 보톡스를 신경얼기(복강신경총)에 주입하는 신경차단술(복강신경총 블록)을 실시한 결과 수축기혈압은 150㎜Hg, 이완기혈압은 90㎜Hg 이하를 유지해 혈당조절에 성공했다고 30일 밝혔다.
보톡스는 주로 미용성형에 쓰이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세계적으로 60% 이상이 질병치료에 활용된다. 소아 뇌성마비, 사시, 요실금, 근육강직증, 편두통 등 치료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고혈압의 치료효과를 입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복강신경총은 혈압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감신경계가 모인 신경집합체로 흉추12번과 요추1번 앞쪽 복부에 위치하며 대부분의 상복부 내장혈관을 조절한다. 신경차단술은 희석된 국소마취제를 복강신경총에 넣어 신경을 차단하는 것으로 주로 상부 위장관계, 췌장, 간, 담낭 등 복강내 장기의 문제가 있는 환자의 통증의 진단과 치료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번에 치료받은 오진우 씨(20)는 14세인 2010년부터 지역병원에서 고혈압약을 복용했지만 혈압이 조절되지 않아 16세인 2012년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를 내원했다. 4가지 이상의 약제를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수축기혈압이 최소 170~180㎜Hg, 심할 경우 200㎜Hg 이상으로 혈압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았다. 검사결과 2차성 고혈압을 일으킬 만한 원인 질환이 없는 본태성(1차성) 고혈압 환자였다.
환자는 177㎝, 몸무게 106㎏, 체질량지수(BMI) 33.8로 비만이었다. 의료진은 불응성 고혈압의 가장 큰 원인을 비만으로 판단해 체중감량을 시도했으나 혈당 조절에 실패했다.
2013년엔 난치성 고혈압을 치료하는 새로운 최소침습시술인 신장신경차단술을 받았다. 이 시술은 혈압을 올리는 대표적인 신경인 교감신경을 차단해 교감신경 자극으로 분비되는 호르몬 분비를 감소시켜 혈압을 낮추지만 이 환자에서는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통증센터 의료진은 2014년 1월 오 씨에게 시험적으로 국소마취제인 리도카인을 양쪽 신경총에 주입한 결과 3일간 수축기혈압 150㎜Hg, 이완기혈압 90㎜Hg 이하가 유지됐다. 이어 혈압저하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 보톡스를 복강신경총에 주입하고 한 달간 경과를 지켜본 결과 단 한 차례 170/100㎜Hg이 관찰된 것을 제외하고 150/90㎜Hg 이하 혈압을 유지했다. 세 달 뒤인 2014년 4월 같은 용량의 보툴리늄 톡신을 주입하자 2014년 8월까지 효과가 유지됐다. 이후 3번의 추가 시술을 통해 지난 4월까지 조절된 혈압을 유지하고 있다.
장기육 교수는 “고혈압은 대부분 원인을 정확히 규명할 수 없지만 약물치료와 생활요법을 병행하면 복용약의 용량과 개수를 줄이면서 약 효과는 최대화할 수 있다”며 “담배 끊기, 음주 자제, 싱겁게 먹기, 매일 30분 이상 운동하기, 적정 체중·허리둘레 유지, 긍정적인 마음가짐, 정기적인 혈압측정 등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세 가지 이상의 고혈압약을 복용해도 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불응성 고혈압 환자는 혈압이 잘 조절되는 환자에 비해 심혈관계 합병증 위험이 높다”고 덧붙였다.
박휴정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보톡스를 이용한 신경차단술을 불응성 고혈압에 대한 새 치료법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며 “보톡스 자체가 효과가 있는지, 시술 효과를 유지하는지 등 정확한 기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독소(Toxins)’ 지난 2월호에 게재됐다.
혈압은 일반적으로 심장이 수축해 혈액을 내보낼 때 혈관이 받는 압력인 수축기혈압(최고혈압)과 심장이 완전히 이완돼 혈액이 심장으로 들어올 때 혈관이 받는 압력인 이완기혈압(최저혈압)으로 구분된다. 정상 혈압은 120/80㎜Hg 이하, 고혈압은 140/90㎜Hg 이상을 의미한다.
고혈압은 뇌졸중, 심근경색, 부정맥 등 다양한 합병증의 원인으로 국내 환자는 2013년 기준 약 900만명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진단, 체중감량, 저염식, 운동 등 생활습관 개선이 필요하며 약물치료도 꾸준히 받는 게 좋다.
난치성 고혈압은 4종류 이상의 혈압약을 복용해도 혈압이 정상화되지 않는 상태로 전체 고혈압 환자의 5% 가량을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