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금은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이부자리 안에서 조청 두 숟가락을 먹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달콤한 엿으로 잠든 뇌를 깨웠다. 인간 뇌 무게는 전체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20%에 육박한다. 이는 근육 전체가 사용하는 것과 맞먹는 양이다. 뇌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근원은 포도당이다. 엿의 단맛을 내는 맥아당(엿당)은 포도당 두 개가 결합된 것으로 포도당과 과당이 결합된 설탕보다 포도당을 두 배 가까이 공급한다. 따라서 체내 흡수속도가 빨라 먹는 즉시 두뇌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에너지원이 된다.
엿은 시험 합격의 상징이다. 예부터 엿은 ‘복’과 ‘기쁨’을 뜻하는 음식으로 합격을 기원하는 의미를 주고 받았다. 철썩 달라붙는 엿의 끈끈한 성질을 합격에 비유했다는 설도 있다.
엿은 단맛이 주는 기쁨이 복을 부르고 만복이 쩍쩍 붙어 살림이 늘어난다는 긍정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로 ‘엿 먹어라’고 욕을 할때도 엿을 빗댄다. 욕이 된 이유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조선시대 팔도를 돌아다니던 광대 집단인 남사당패가 쓰던 은어에서 비롯됐다는 게 유력하다. 당시 남사당패는 여성이나 남성의 성기를 가리켜 엿이라고 불렀다. ‘엿 먹어라’는 곧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거나 이런 관계를 통해 봉변을 당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엿을 이용한 과자류는 고려시대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는 ‘행당맥락’(杏塘麥酪)이란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당’은 단단한 강엿, ‘낙’은 감주를 의미한다. 당시 엿기름을 이용한 엿이나 감주가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부터 엿은 세찬(歲饌. 설날 차례를 지내거나 이웃들과 함께 먹기 위해서 만드는 음식의 총칭)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음식으로 겨울철이 되면 가정에서는 엿을 만들어 상비했다.
조선시대 한양의 모습을 담은 ‘한경식략’에서는 식료품상인 ‘백당전’에서 엿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1809년 지어진 ‘규합총서’는 엿 제조법을 소개하고 개성, 광주 등에서 밤엿이 생산된다고 기술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엿이 전국적으로 상품화돼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엿은 농도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가장 묽은 것은 ‘조청’으로 감미료로 주요 사용된다. 과거 설탕이 없던 시절에는 조청으로 단맛을 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간단하게 조청을 만들 수 있는 조리법이 나온다. ‘차기장을 한 말 쪄 식기 전에 냉수 두 병과 엿기름 가루 두 되를 버무려 항아리에 넣어 입구를 봉하고 큰 사발 등을 이용해 덮는다. 이어 땅에 한 달 가량 묻었다가 꺼내면 희고 좋은 백청이 된다’고 적혀져 있다. 땅 속에 묻어 저온에서 서서히 당화시키는 방법으로 지금은 만들기 어렵다.
조청을 오래 졸여 단단하게 굳힌 것은 ‘갱엿’이다. 갱엿이 굳기 전 여러차례 잡아 늘여 내부에 공기가 들어가 빛깔이 하얗게 된 게 흔히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흰엿’이다.
김창동 인천 엿사랑 대표는 “강도가 강한 엿일수록 치아에 잘 붙는다”며 “호박엿, 생강엿 등 약한 강도의 엿은 치아에 잘 붙지 않으며 마쉬멜로처럼 입에서 살살 녹는 게 특징”이라고 밝혔다. 이어 “치아가 약해 고민인 사람은 가락엿 등 딱딱한 것은 피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엿의 단맛은 엿기름(맥아)에서 나오는 맥아당 때문이다. 보리를 적셔서 두면 싹이 나는데 이 때 전분을 당화시키는 효소가 생긴다. 보리의 전분이 효소 작용으로 맥아당이나 포도당으로 분해돼 특유의 단맛을 낸다. 엿기름은 보리가 완전히 싹트기 전에 말린 것으로 효소 작용이 중지됐다가 이를 가루로 빻아서 밥에 섞으면 효소작용이 일어나 쌀의 전분을 당화시키게 된다.
엿기름에는 빈혈, 당뇨병 등 성인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생리활성물질이 풍부하다. 비타민B군, 철분, 엽산 등 30여가지 효소 등도 함유돼 있다. 엿의 단맛을 내는 맥아당은 기력이 없고 허약해 나오는 기침과 가래를 멈추는 데 도움이 된다. 과거 선조들은 폐기능이 약해져 기침을 많이 하면 엿을 먹는 민간요법을 쓰기도 했다.
엿의 원료로는 찹쌀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멥쌀, 좁쌀,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 재료에 따라 다양한 엿이 만들어진다.
강원도에서는 마른 옥수수를 곱게 갈아 죽처럼 쑤어 엿기름 물에 삭혀 ‘옥수수엿’을 만든다.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자락의 황골마을에서 만든 ‘황골엿’이 유명하다.
경상도에서는 울릉도 특산물인 호박으로 만든 ‘호박엿’이 가장 알려져 있다. 다른 지역 엿에 비해 끈적거림이 적고 부드러우며 뒷맛이 고소하다.
충청도에서는 물에 불린 쌀과 무채를 넣은 ‘무엿’이 특산물이다. 조청처럼 묽어 숟가락으로 떠 먹는다.
전라도에서는 삶은 고구마를 메주처럼 으깨 쌀밥과 함께 넣어 삭힌 전남 무안군의 ‘고구마엿’이 유명하다. 전남 담양군의 ‘쌀엿’, 잘 달여진 호박빛깔의 엿을 늘였다 합쳤다를 반복한 광주의 ‘백당’도 대표적인 전라도의 엿이다.
제주도에서는 일찍이 동물성 엿이 발달했다. 엿은 보양식품으로 대접받기도 했다. 차조밥을 지어 꿩을 넣고 끓인 ‘꿩엿’이 대표적이다. 돼지고기, 닭 등을 이용한 엿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