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액 10억원 미만 업체 81.1%, 생산액 전체 7.3% 수준 … 무역수지 적자 5억2000달러로 확대
끝모를 침체기에 놓인 의료계에선 수익 창출을 위한 먹거리 찾기가 한창이다. 의료 분야 종사자들은 기본적인 환자 진료 외에도 뭔가 다른 수익원을 만들어놔야 병·의원이 살고 관련 산업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로는 로봇수술, 줄기세포, 원격진료, 의료기기, 바이오산업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가장 큰 시장규모를 자랑하는 게 의료기기다. 로봇수술, 원격진료 등을 시행하기 위해선 다빈치로봇이나 진단장비 등이 필요하다. 줄기세포, 바이오산업 분야에서도 연구를 진행하거나 결과를 임상에 적용하려면 첨단 의료기기가 필수다.
이에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의료기기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대기업 대 중소기업이라는 대립 구도를 형성해 서로 아웅다웅하는 동안 해외기업들이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고,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의 무역수지 적자액은 점차 커져만 가고 있다. 중·저가 품목의 경우 영세 중소기업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고가 장비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 결과 지난해 국내 의료기기 시장규모는 5조1076억원으로 전년도 4조6315억원보다 10.2% 증가했다. 생산실적의 경우 2013년의 4조2241억원 대비 7.8% 증가한 4조5533억원으로 나타났으며,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도 11.3%를 유지했다. 이는 인구고령화에 따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의료 패러다임이 치료에서 예방·진단 중심으로 변화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생산실적 상위 품목으로는 치과용임플란트(5981억), 초음파영상진단장치(4217억원), 소프트콘택트렌즈(1418억 원) 순이었다. 생산 1위 업체는 오스템임플란트(3906억원)가 차지했으며 삼성메디슨(2753억원), 지멘스(1329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이들 회사를 포함한 상위 30개사가 전체 생산의 43.8%를 차지했다. 수년간 생산실적 1위의 삼성메디슨을 2013년 역전한 오스템임플란트가 지난해에도 1위 자리를 지켰다. 2013년 23위였던 삼성전자는 혈액진단기와 X-레이 생산량이 늘어 지난해 5위로 올라섰다.
하지만 수출 증가율 감소 및 환율 하락으로 무역 적자폭은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해 의료기기 수출실적은 24억4000만달러로 전년에 비해 3.7% 증가에 그친 반면 의료기기 수입실적은 29억7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8.1% 늘어나 무역수지 적자는 5억2000달러로 확대됐다.
수입 상위업체는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이 1억5000만달러로 1위를 차지했으며 지멘스가 1억4000만달러, 한국로슈진단이 1억2000만달러로 뒤를 이었다.
국가별 의료기기 수입액은 미국이 12억3100만달러, EU 7억2900만달러, 일본 3억3100만달러, 중국 1억2100만달러다. 특히 미국, EU, 일본 3개국의 경우 무역수지가 계속 적자 추세다.
의료기기산업은 대표적인 자본·기술형 산업으로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을 보유한 소수의 다국적 기업이 독과점하는 형태 구성된다. 존슨앤드존슨메디칼(미국), 제너럴일렉트릭헬스케어(GE, 미국), 지멘스(독일), 필립스(네덜란드) 등 10대 기업이 세계시장의 60%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무려 50%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며 1·2위를 기록 중이고 독일, 중국, 프랑스가 뒤따르고 있다. 시장점유율 순위와 달리 무역수지에서 가장 우수한 실적을 기록한 국가는 독일로 지난해 103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이밖에 아일랜드는 81억달러, 미국 67억달러, 스위스는 65억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반면 일본과 프랑스는 수입 규모가 워낙 방대한 관계로 각각 64억 달러, 24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의 경우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오는 2018년에는 382억 달러를 기록, 세계 2위 시장점유율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 의료기기산업의 경우 아직까지 중·저가 품목을 제조 및 유통하는 영세 중소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기술력, 자본력, 인지도 등은 매우 열악하다. 국내 시장 규모는 4조6000억원(세계의 1.3%)으로 2600개의 소규모 제조사가 온열기, 자극기 등 가정용 제품 등 중저가의 단순 범용제품 위주로 생산하고 있으며 첨단제품 개발은 미진한 상태다.
생산액 10억원 미만 업체가 2113개로 전체 의료기기업체의 81.1%를 차지하지만 생산액은 전체의 7.3% 수준에 불과하다.
관련 전문가들은 국내 의료기기시장이 활성화하고 수출량을 늘리려면 대기업의 진출이 활발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건석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책임자는 “글로벌 상위 기업들이 2009년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어 의료기기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우리나라도 의료기기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지속적인 연구개발, 중견기업 및 대기업 육성, 산업기반으로서의 전문 인력 양성 등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도 “국내 의료기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영세한 업체가 중심인데, 의료기기 R&D 비용을 부담하기 만만찮은 상황”이라며 “최근 대기업은 이 부분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의료기기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삼성 같은 사례가 더 나와야 하며, 정부 지원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삼성, LG 등 대기업은 2012년부터 의료기기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그동안 중소 업체들이 손대지 못했던 반도체, 전자계측, 정보공학, 화학, 재료공학, 의학, 이동통신 등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삼성은 의료기기를 5대 신수종사업의 하나로 꼽고 2013년 의료기기 분야를 독립사업부로 격상했다. 이달 초에는 미국시장에서 초음파 진단기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최근 전시회에서는 로봇기술을 접목한 소프트 핸들링 기능 등 첨단기술을 적용한 엑스레이 장비, 체외진단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의료기기 중 영상진단기기, 생체계측기기, 체외진단기기, 의료정보기기 등은 IT기술의 접목이 핵심으로 대기업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대기업 중에선 삼성전자와 삼성메디슨이 가장 많은 의료기기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예컨대 초음파진단기기의 경우 삼성메디슨이 485건으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 중이다.
중저가 진료장치와 치과용 의료기기는 라니, 태동프라임, 에센시아, 에디컨, 바텍이우홀딩스 등 국내 중소기업들이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경우 특허 보유 및 제조수출 제품이 저가 위주이다보니 수익성 면에서 대기업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에 중소기업들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의료기기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의료기기 수출기업은 938곳이며, 이 중 소기업이 75.8%(711개)로 수출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중기업 19.5%, 대기업은 4.7%로 뒤를 이었다.
이재화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중소기업 의료기기는 특화된 제품이 많지만 국내 병원이 잘 몰라 사용을 꺼린다”며 “의료기기조합은 서울대병원 등 국공립병원과 협력해 국산 제품 사용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 제품의 디자인과 성능이 날로 좋아지고 있다”라며 “국산 제품의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고 신뢰를 확보해 내수 활성화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을 통해 해외기업의 시장 잠식에 맞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들 간의 유기적인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대기업은 시장을 혼자 독점하려 하지말고 수십년간 의료기기 산업에서 치열하게 노력해 온 선배 중소기업들의 지혜와 조언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