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감식센터에 국내산 홍어를 구별해달라는 의뢰건이 들어왔다. 당시 경찰이 대대적인 불량식품 단속에 나서던 중 국내산으로 표기돼 팔리는 홍어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과수 감식 결과, 27건 모두 감정 불가로 판결됐다. 전세계 학자들이 생물종(種) 구별 기준으로 삼는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홍어·가오리 종은 모두 157개다. 하지만 DNA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어떤 종이 국산 홍어인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2년이 지나 감정 불가 판정이 내려졌던 27건 중 국산 홍어는 2개뿐이란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2년 전 홍어 감식에 참여한 국과수의 황인관 연구사가 국산 홍어 감별법을 개발해 다시 감식해보니 2개만 서해에 서식하는 ‘참홍어’였고, 나머지 25개는 대서양과 남태평양 지역에 서식하는 외국산 홍어나 가오리로 나타났다. 외국산 가오리나 홍어를 국내산으로 속여 판다는 의심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어류는 뼈가 딱딱한 경골어류(硬骨魚類)와 물렁한 연골어류(軟骨魚類)로 나뉜다. 대부분 경골어류이며 일부만 연골어류다. 대표적인 연골어류로는 홍어, 가오리, 상어 등이 있다. 홍어는 연골어강 홍어목 가오리과에 속하며 몸빛깔이 붉어 홍어(紅魚) 또는 몸이 넓적하다 해 홍어(洪魚)로 이름이 붙여졌다. 몸은 마름모꼴이며, 작은 머리에 주둥이는 짧고 뾰족 불거졌다. 바다 바닥에서 생활하며 연체동물이나 갑각류가 먹잇감이다. 한번에 4∼5개의 수정란을 낳는데 그것은 4개의 예리하고 긴 뿔이 난 네모꼴의 질긴 주머니(알껍데기)에 들어 있어 보호를 받는다.
외형상 홍어는 마름모꼴로 각이 분명히 드러난다. 주둥이는 뾰족하고 짧으나 돌출돼 있다. 등쪽은 암갈색 바탕에 크고 작은 담색의 둥근 반점이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고, 배쪽은 희거나 회색을 띤다. 반면 가오리는 원형 또는 오각형으로 둥그스름하다. 홍어 꼬리는 굵고 짧으며 두 개의 가시 같은 지느러미(작은 등지느러미와 꼬리지느러미)가 솟아 있다. 반면 가오리 꼬리는 상대적으로 가늘고 길며 지느러미가 없다.
홍어는 배와 등 색깔이 비슷한 톤이지만 가오리는 몸 빛깔은 등쪽은 회갈색, 몸통 가장자리와 배지느러미 주변은 황색이다. 배부분은 중앙이 옅은 황색이거나 흰색이며, 배지느러미 가장자리와 꼬리 시작부분은 색이 짙다. 홍어 물렁뼈는 우동발처럼 굵고 가오리는 국수발처럼 가늘다. 홍어살 맛은 달고 부드럽지만 가오리살은 맛이 떨어지고 질기다.
홍어는 전기가오리와 마찬가지로 전기를 내기도 하지만 약한 편이라 위험하지는 않다. 하지만 꼬리 쪽에 독이 있어 여기에 찔리면 나무가 시들 정도로 치명적이다. 떼로 몰려다니지 않고 바다 밑바닥에 서식해 어군탐지기로는 웬만해선 측정되지 않는다. 가끔 암수가 교미 중에 한꺼번에 잡혀 올라와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서는 홍어를 ‘음탕한 고기’(海淫魚)라고 칭했다. 실제로는 수컷의 생식기 두 개에 가시가 있어 이를 촘촘히 박고 교미하므로 ‘암수 한몸’이 낚시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찬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하는 11~12월은 홍어의 수확철이다. 홍어는 암놈이 더 크고 맛있다. 수컷 홍어는 생식기가 두 개여서 이를 바탕으로 암수를 구별한다. 암컷이 값도 훨씬 비싸서 수컷을 암컷으로 속여 팔려고 수놈 생식기를 없애버리곤 한다. 수컷의 생식기를 잡아당기면 쑥 뽑혀나와 모양새가 암컷과 비슷해진다.
뱃사람들은 가시가 조업에 방해되는 데다 잘못하면 손을 다치는 바람에 곧바로 떼어버린다. 그래서 여기저기 널린 것을 말할 때 ‘만만한 게 홍어×’이라는 속어를 쓴다.
전라도에는 ‘잔칫집에 홍어가 빠지면 섭섭하다’는 말이 있다. 잔칫상뿐만 아니라 호남지역에서 홍어는 제사상, 차례상에도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각 도시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 있지만 호남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홍어만한 게 없다.
홍어는 한국에서만 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특별한 이유는 삭혀 먹기 때문이다. 삭힌 홍어에서는 코를 찌르는 특유의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데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인상을 찌푸리고도 남을 강한 향취다.
삭힌 홍어를 먹어도 탈이 나지 않은 이유는 홍어가 가진 특성 때문이다. 홍어는 바다에서 생활하며 몸 속 삼투압을 조절하기 위해 체내에 요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다. 홍어를 숙성시키게 되면 이 요소가 분해되며 암모니아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세균이 번식할 수 없게 돼 먹어도 무해한 음식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암모니아는 사람이 섭취하게 되면 알칼리성 성질을 띠며 장 속에서 살균작용을 해 장을 청소하는 이로운 효과도 가지고 있다.
홍어를 삭혀 먹게 된 기원은 과거 저장법이 발달하지 못한 탓이 크다. 흑산도 해역은 풍랑이 매우 강해 홍어를 수확해도 육지까지 옮겨오는 기간이 길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삭힌 홍어를 맛보게 됐고 특유의 풍미에 반해 지금까지 그 맛이 이어져 내려온다. 역사적으로 공도정책(空島政策)이 삭힌 홍어를 탄생시킨 배경이었다. 고려말에는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섬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조선시대에는 섬에서 역도들이 반란을 일으킬까봐 섬사람을 뭍으로 이주시켰다. 이 때 흑산도 사람이 가장 많이 이주한 곳이 나주 일대다.
흑산도에서는 과거 홍어를 삭혀서 먹지 않았으며 삭힌 홍어요리로 유명한 곳은 나주 영산포 등지였다. 정작 흑산도 사람들은 찰진 홍어를 왜 굳히 삭혀먹냐고 한다.
삭힌 홍어를 이용한 대표적 음식은 ‘홍어삼합’이다. 홍어와 돼지고기를 김치 위에 얹어 먹는 요리로 시큼한 김치 맛에 홍어의 톡 쏘는 맛이 번지면서 입맛을 자극한다.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가 조합을 이루면서 최상의 맛을 선사한다.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더욱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어류단백과 육류단백이 동시에 소화되면서 나오는 부산물들이 발암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 돼지고기를 얹힌 것은 귀한 홍어로만 배를 채울 수 없는 출출함을 달래기 위한 관습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홍어의 간, 내장 등 살코기 이외의 부분을 보릿잎이나 미나리와 같이 끓여 먹는 홍어애국은 냄새가 더욱 심하다. 홍어회는 크게 무리없이 먹는 사람도 홍어애국은 힘들어한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홍어 어확량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국내 홍어 어획량은 약 406t로 조사됐다. 지역별로는 인천이 188t로 대표적 홍어 어획지로 꼽히는 전남(126t)를 제치고 가장 홍어를 많이 잡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홍어는 주로 서해안을 따라 분포한다. 참홍어는 수심 50m 이상 심해에서 수온이 낮은 해역을 찾아 집단으로 이동한다. 봄철 흑산도 북서쪽에 분포하다가 날씨가 더워지면 인천 대청도 해역까지 올라온 뒤 겨울철에 다시 남쪽으로 이동하는 경로다. 이 때문에 인천과 전남에서 잡히는 참홍어는 결국 같은 집단이다. 참홍어 이동 경로에 따라 대청도와 흑산도 어민들이 충청지역 근해까지 가서 어업을 하기도 한다.
흑산도 홍어와 인천 홍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획법이다. 흑산도는 미끼가 없는 낚시를 바다 저층 바닥에 놓은 상태로 잡으며 인천은 그물을 이용해 다른 어종과 같은 방법으로 홍어를 어획한다. 흑산도 홍어는 낚시에 걸리는 순간부터 상처에서 출혈이 시작돼 살에 핏기가 없고, 노폐물을 모두 뱉어내 살과 내장이 깨끗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