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과 매실은 떼어놓기 어렵다. 매화꽃이 늦겨울과 초봄에 걸쳐 아련한 담홍색으로 일본열도에 상륙하면 일본인은 그 은은한 향기에 취하며 곧 들이닥칠 벚꽃의 환상에 젖는다.
매화꽃 전선(우메젠셍)과 벚꽃 전선(사쿠라젠셍)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열도를 지나갈 때 일본인은 그것을 노래로, 분재로, 꽃꽂이 방식의 변주로 담아낸다. 이같은 문화는 상고시대의 망요오슈우(万葉集)이래 줄곧 이어져 온 전통이다.
매실은 너무 열매가 많이 달리면 4월 말부터 5월 초순에 걸쳐 스스로 낙과,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달려있는 열매는 떨어뜨린다. 자기 몸을 잘 아는 매실이 스스로 섭생을 조정해나간다. 덜 익은 청매실에는 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원인은 바로 아미그달린이라는 청산배당체로 효소에 의해 분해되면 청산이 되기 때문이다. 이 청산은 청매실의 열매살 속에서 병충해로부터 열매살을 지키다가 익어감에 따라 씨로 옮아간다. 다음세대를 지키기 위한 매실 나름의 지혜인 것이다. 따라서 매실 종자는 해충에게 침범당하는 일이 없다.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의 동의보감 저자인 허준도 극찬했을 정도로 일본인의 매실에 대한 사랑은 거의 중독 수준이다. 일본인은 매실로 우메보시, 매실식초, 매실엑기스 등을 만들어 이용하고 있다.
이 중 우메보시를 떼어놓을 수 있다. 우메보시는 매실을 소금에 절여서 만든 쓰케모노(절임요리)의 한 종류이다. ‘우메’는 일본어로 ‘매실(梅)’을, ‘보시’는 일본어로 ‘말린다(干す)’라는 의미로, 우메보시는 말 그대로 ‘말린 매실’이라는 뜻이다. 7세기에 중국에서 전파된 오매(烏梅)로부터 유래됐다. 우메보시는 오매는 매실의 껍질을 벗긴 다음 짚불 연기에 그을려 말린 매실이다. 에도 시대(江?時代, 1603~1867)에 들어 우메보시를 먹는 풍습이 전국적으로 전파되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우메보시의 생산지는 와카야마(和歌山)현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키슈난코우 우메(紀州南高梅)는 껍질이 얇으면서 과육은 두툼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이 매실을 사용해 만든 우메보시는 높게 평가돼 일반 우메보시에 비해 2배 이상 비싸다. 우메보시는 밥과 함께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살균 및 방부효과가 있어 도시락을 쌀 때 밥 위에 올리면 반찬이 쉽게 상하지 않는다.
우메보시는 소금에 절여서 만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염분 함량이 약 20%에 달해 보존성은 높지만 염분의 과다섭취가 문제시되기도 한다. 따라서 최근에는 매실을 소금에 절였다가 염분기를 씻어내고 가츠오부시, 다시마, 꿀 등으로 조미한 저염분의 우메보시가 나오기도 한다.
매실 열매를 소금에 절이고 햇볕에 말려서 붉은 자소엽이라는 식물로 붉게 물을 들인 다음, 매실식초에 담가 만든다. 일본인은 음식을 맛으로도 즐기지만 색으로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붉은 자소는 잎을 갈아 뭉개어 천으로 짜면 시커먼 즙밖에는 나오지 않는데 이를 안트칸(anthocyan) 색소라고 하며 이것이 매실의 구연산과 만나게 되면 적홍색으로 변한다. 자소 잎은 그 자체가 생선이나 육식 식사에 중독예방 효과가 있으며 이것이 매실의 구연산과 합세하여 약효는 배가되고 색깔은 아름답게 변신하는 것이다. 일본인은 이런 색조를 더욱 선명히 드러나도록 입하 후 장마가 오기 전 18일 동안에 도요오(土用)라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소금에 절인 매실을 붉은 자소엽즙으로 염색해 햇볕과 공기에 몇 번이고 쬐어 만드는 게 바로 도요오다. .
최근에는 천연색소인 자소를 이용하면 손이 많이 가고 그에 따라 비용도 상승하기 때문에 인공의 콜타르계 색소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자소로 염색된 우메보시는 밤이슬에 3~4일 동안 놔두면 색깔이 변하지만 인공색소를 쓴 것은 변하지 않는다.
식품으로서의 역사는 오래돼 기원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일반인까지 먹게 된 것은 근세 후기다. 메이지시대(明治時代, 1868~1912) 이후 전국적으로 보급됐다. 처음 등장한 것은 헤이안시대(平安時代, 794~1185)다. 당시 의사 탄바노 야수요리(丹波康頼)가 쓴 '의학 전반에 대한 책(医心方)'에는 우메보시에 대한 내용들이 정리돼 있다.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 1185~1333)에 들어와서는 우메보시가 무가(武家)의 밥상에 반드시 올라오는 음식이었다. 특히 손님을 대접할 때 내놓는 밥상인 오우반(椀飯)에 해파리, 전복, 식초, 소금과 함께 우메보시를 곁들였다. 우메보시는 목마름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 무사들이 전투를 앞두고 먹는 음식으로 이용됐으며 무사들뿐만 아니라 선종의 승려도 우메보시를 다과로 애용했다고 한다.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에는 우메보시를 먹는 풍습이 전국적으로 전파되어 수요가 대폭 늘어났다. 서민들은 섣달 그믐날이나 세츠분(節分,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의 전날과 같이 기후가 바뀌는 시기)의 밤에 우메보시에 뜨거운 차를 부은 ‘후쿠차(福茶)’를 마시는 것을 즐겼다.
메이지시대에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 전염병에 걸린 병사들에게 우메보시의 과육 엑기스를 먹여 전염병을 완치시킨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우메보시의 약용 효과가 입증됐고, 건강의 상징으로 정착됐다. 이후 민간요법으로 다양하게 개발됐다.
우메보시는 원래 각 가정이 손수 만든 보존식(저장식품)으로 초여름에 가정의 연중행사로 우메보시를 담갔다. 그러다 메이지시대 말기에는 청·일, 러·일의 양 전쟁의 군량으로 보급되면서 상품으로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미약하긴 하지만 약간의 방부효과를 가지고 있어 일본인은 삼각김밥이나 도시락의 한가운데에 우메보시를 넣어 ‘일장기 도시락’을 만들었다. 살균·방부 효과가 있어 여름철 도시락 밥과 반찬 위에 올리면 밥과 반찬이 쉽게 상하지 않는다. 오니기리(주먹밥) 속에 넣거나 오차즈케(밥에 뜨거운 엽차를 부어서 먹는 음식)를 먹을 때 우메보시를 올려 먹기도 한다. 감기에 걸려 소화가 잘 안 될 때에는 흰죽과 우메보시를 함께 먹는 풍습도 있다. 생선조림을 만들 때 우메보시를 한두 개 넣으면 비린내가 사라지고 맛이 깔끔해진다.
이 우메보시는 식욕증진이나 정장(整腸)작용이 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중요한 보존식으로 만들어져 왔다. 저장성이 높고 담근 다음에 반년이 지난 뒤 먹을 수 있지만 여러 해 보존한 게 오히려 맛이 들어 좋다고 한다. 일본에는 ‘우메보시도 3년이 넘으면 약이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최근에는 그것이 사실로 판명됐다.
4년 숙성한 우메보시를 분석해보니 염분이 거의 검출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오래 숙성된 우메보시는 나트륨이 사라져 신장병이나 고혈압을 앓는 사람이 아무리 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코네(箱根)에 있는 한 가구점 사장 집에서는 1860년에 담갔다는 제조 연월일표시와 함께 들어있던 우메보시가 발견됐는데 140년만에 개봉해 본 이 우메보시의 색깔은 금다색에 소금은 결정화돼 있었고, 차조기잎은 바싹 말라 흩어져 있었으며, 맛은 생각대로 혀가 녹을듯 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전설적인 소문에 지금도 100년이나 120년이 넘는 우메보시를 소장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 우메보시의 재료인 매실은 해열작용, 감기예방, 식중독예방, 디프테리아,포도상구균·폐렴구균·디프테리아 예방, 물갈이설사·감기·식욕부진·기침·가래·백일해·변비 등의 개선, 피로회복에도 효과가 보고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1953년 영국의 크렙스 박사가 ‘구연산사이클(크렙스회로, TCA사이클)’을 연구한 이후다. 그는 매실에 풍부한 구연산이 구연산사이클을 촉진해 세포노화나 혈관경화를 막고 피로회복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식사를 통해 얻어지는 당이 체내에서 소화되고 흡수되면 포도당이란 분자가 되는데 그 과정에서 유산(乳酸)이 발생하여 이것이 노화의 원인이 된다. 유산은 우리들의 신체를 조직하고 있는 단백질과 결합하여 유산단백이 되어 세포나 혈관을 굳게 한다. 이 때 구연산 등의 식물성 산미를 섭취하면 오키자루 초산(매실식초)이 되어 유산의 과잉생산이 완전히 제어되고 유산은 탄산가스와 물로 분해돼 몸 밖으로 배설된다. 피로할 때 구연산이 함유된 매실 엑기스를 먹으면 15분쯤 뒤에 산뜻하고 개운한 기분이 된다. 몸속의 지방도 구연산을 먹음으로써 체내에서 연소분해돼 비만 방지에 도움이 된다. 이런 매실 절임이나 엑기스는 먹을 때는 신맛이지만 체내에서는 강한 알칼리성 식품이다.
식품영양학계의 권위자 모리시타 게에이치 박사는 일이 있을 때마다 ‘건강을 지키려면 하루에 우메보시 3개 이상은 먹어야 한다’고 권유하고 있다. 우메보시의 신맛으로 몸의 긴장을 유지하라는 게 포인트다.
매실 등 핵과류의 씨앗을 어질 인(仁)으로 표현한다. 모든 씨앗은 자신을 바쳐 희생하고 대를 잇게 한다. 이에 매실 절임업자들은 매년 5월에 매실공양을 한다. 매실의 아름다운 희생을 추모하는 것이다. 작은 것에도 적잖은 의미를 부여하는 일본다운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