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새 병원들의 경영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임금을 삭감 혹은 동결하는 곳이 늘고 있다. 환자 진료 외 다른 수입원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역량을 강화해 수입원을 다각화화는 방법도 있지만 워낙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에 빅5급 대학병원이 아니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병원내 새로운 부대시설을 유치하는 것도 의료민영화 아니냐는 오해 탓에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A병원은 경영난을 이유로 2012년부터 초임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고 주요 보직자 수를 축소했으며 보직수당을 반납토록 했다. 또 연차수당 지급액을 줄이기 위해 연차 의무사용률을 높였으며 환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을 채용했다.
B병원은 2013년부터 전직원의 임금을 삭감했다. 간호사 40명, 행정직 10명, 일부 의사 등을 권고 사직시켰지만 신규 채용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기존 정규직이었던 보조 인력까지 외주로 전환했다. 직원의 30%는 자발적으로 월급여 일부를 발전기금으로까지 내놨다. 장비 구매약은 기존 대비 50% 이하로 축소했다.
C병원은 2013년 직원 급여를 1인당 150~300만원 삭감했다. 이는 연봉의 7~8%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게다가 병원 시설에 필요한 공사, 리모델링 등 재투자는 비용 절감 계획에 따라 모두 중지한 실정이다.
이처럼 병원들은 제 살 깎아먹는 심정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인건비를 줄여가기 시작했다.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국립대병원이 구조조정의 우선 대상이 됐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는 지난해 방만경영 정상화계획을 이행하지 않은 13개 기관(부설기관 포함)은 임금을 동결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임금동결 대상 13개 기관 중 국립대병원은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강원대병원, 충북대병원, 충남대병원, 전북대병원, 전남대병원, 경상대병원, 제주대병원, 서울대치과병원, 부산대치과병원 등 11곳이다.
오는 6월말까지 방만경영 정상화계획을 이행하지 않은 기관은 올해에 이어 2016년에도 임금이 동결된다.
이같은 조치에 대해 각 병원 노조는 “독재정권에서나 벌어졌던 일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완전히 부정하는 위법한 지침”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예산편성지침을 통해 매년 공공기관의 총인건비 인상률을 통제해 온 것만 해도 위법 소지가 큰 상황에서 개인의 임금을 동결하도록 한 지침은 행정권 남용이자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이다.
서울대병원 노조 관계자는 “국민에게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광역거점 공공병원인 대학병원이 노사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감으로써 의료의 질을 하락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민간병원 중에서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 온 인제대 서울백병원이 인건비를 대폭 감축하고 있다. 이 병원의 의료수익은 2011년 662억원에서 2012년 651억원, 2013년 629억원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진료 분야 적자액은 2012년 132억원, 2013년 146억원을 기록했으며 최근 10년간 누적적자액은 1423억원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인건비는 431억원에서 438억원, 관리운영비는 134억원에서 140억원으로 증가했다.
이같은 적자는 지역적인 한계에서 비롯됐다. 도심공동화로 인근에 주택가가 없어 병원을 찾는 환자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재단 이사회에서는 2년 안에 서울백병원이 손익분기점을 ‘제로(0)’로 만드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폐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재단은 서울백병원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적자구조를 최소한 손익분기점까지 끌어올릴 것을 주문했다.
이 병원은 지난해 근속년수 20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및 상계·일산백병원 전원을 실시해 130여명을 감원했다. 지난해 12월엔 3개월간 급여를 20% 삭감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노조의 반대의 부딪혀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경영정상화를 이유로 올해도 재차 임금 삭감 등 인건비 감축안을 시행할 계획이다.
병원 노조는 “이번 월급 삭감은 병원이 경영정상화를 이루기 위한 투자나 비전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며 “단순히 재단이 설정해놓은 목표액을 맞추고 이사진을 설득하기 위해 직원에게 희생을 강요하겠다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병원들의 구조조정에 대해 병협은 “결과적으로 의료의 질을 떨어뜨려 더 큰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유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병협이 최근 구조조정이 진행중이거나 마무리된 병원들의 긴축경영 사례를 수집한 결과 임금 삭감 및 정규직 채용 최소화와 같은 인력조정이 가장 많았으며 시설·장비에 대한 재투자 축소 및 중단이 뒤를 이었다.
병협은 적자 경영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건비 감축이 결국 의료의 질에 영향을 끼쳐 오히려 수가 인상에 드는 비용보다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적정수가 보전을 통한 병원의 경영 정상화만이 국민건강 보호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병협 관계자는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은 의료장비의 적정주기 교체와 수준 높은 의료인력의 배치를 어렵게 만들어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며 “노사관계에도 불안정을 초래해 결국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