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 생물유전정보의 기본물질이 되는 DNA(디옥시리포핵산) 모형을 들고 나타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미국인 100만명의 게놈(유전정보, 유전체)을 해독해 의료혁명을 이끌겠다고 선언했다. 자국내 막대한 의료비 지출을 막고, 첨단기업을 살리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 정부는 약 2억1000만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유전체 분석을 통한 연구에 한창이다. 영국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10만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 약 3억파운드(약 52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중국도 100만명을 대상으로 관련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맞춤의료 세계시장은 올해 약 1484억달러 규모로 예측된다. 연 20% 속도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세계미래회의는 2025년 세계 유전체 치료와 바이오의학 분야가 수십조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2003년 인간이 갖고 있는 유전체의 모든 염기서열이 분석되면서 관련 연구도 활발해졌다. 당시 한 사람의 게놈을 모두 분석하려면 약 3조원의 비용이 소모됐다. 하지만 2002년 영국 바이오벤처기업 솔렉사와 미국 생명공학기업 454라이프사이언시스 등이 차세대 염기서열분석(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를 개발, 열흘 만에 유전체를 분석하는 기술을 선보이면서 개인맞춤형치료 시대의 문이 열렸다. 현재 유전체 분석 비용은 2003년의 약 300만분의 1 수준인 약 100만원이다. 분석 속도도 획기적으로 빨라져 하루면 유전체가 모두 해독된다.
모든 인간은 유전적으로 99.9%가 동일하지만, 나머지 0.1% 차이 때문에 인종별로 질병·독극물·병원체·의약품 등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일으킨다. 개인의 유전체 정보를 알면 향후 발생할지 모르는 질병을 미리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다.
유전자분석으로 질병의 원인을 찾기 위한 노력이 용이해질 예정이다. 지금까지 약 6000종의 유전성 희귀질환 원인 유전자가 규명됐으며, 이를 이용한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수면을 연장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른 DNA 서열을 이용한 연구로 맞춤의학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맞춤의학은 개인의 유전 정보를 바탕으로 적절한 치료법을 통해 최적화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정 질병의 발병 위험·예후·재발 가능성 등을 예측해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
맞춤의료가 가장 먼저 적용된 분야 중 하나는 표적치료제다. 표적치료제는 환자 개인의 유전자 변이를 표적 삼아 암세포를 골라 죽인다. 환자의 개개인의 상태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치료율 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기존의 항암치료는 대부분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치료법을 제공하고 있다. 개인의 특성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 치료 성공률이 25% 이하로 다른 질병에 비해 낮은 편이다. 암 유전자가 변이할 경우 기존 항암제는 무용지물이 된다. 다른 질환도 마찬가지다. 약의 효과가 50%를 넘지 않는다. 즉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각 개인의 유전적 차이로 인해 동일한 약물에 대해서도 효과가 현저하게 달라질 수 있다. 한 해 국내 의약품 소비 규모는 약 20조원이다. 이 중 절반 정도인 10조원이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2008년 온라인을 통한 유전체분석 서비스가 시작됐고, 국내에서는 2010년부터 의료기관과 연계한 일반 개인 대상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디엔에이링크, 마크로젠 등이 대표적인 국내 유전체검사 기업으로 꼽힌다.
맞춤의학 시장이 성장하면서 바이오뱅크도 주목받고 있다. 바이오뱅크란 생물학적 샘플과 그와 연관된 자료를 수집하는 기관으로 병원, 대학, 기업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 유전체를 분석하려면 대량의 시료가 필요하다. 가족력, 임상정보, 유전정보 등 정보의 축적이 요구되는데, 바이오뱅크는 이를 용이하게 되도록 도와준다. 연구 시간·비용 소모를 최소화시키며 연구효율을 극대화시킨다.
미국, 유럽 등 서양에서 주로 이용되던 바이오뱅크의 중심이 점차 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다. 동아시아지역은 뱅크의 자료가 되는 인구 숫자가 많고 기술력도 서양과 비교할 때 뒤지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초고속 유전체 해독기술을 10대 미래유망기술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지나친 규제와 제도 미비로 유전체의학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유전체 정보를 활용한 예방·진단 서비스가 궁극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 국민이 부담하게될 의료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해마다 유방암 환자 약 6만여명이 받는 관련 유전자 변이 검사는 국내에서 허용되지 않고 있다. 국내 관련 임상시험 자료가 없다는 이유다. 산모의 혈액으로 태아의 유전자 결함을 분석하는 기형아 산전 진단법도 국내에선 쓸 수 없다. 축적된 국내 자료가 없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병원들은 암암리에 미국이나 중국에 검체를 보내면서 외화가 낭비되고 진단에 걸리는 시간도 지연되고 있다.
생명윤리 전문가들은 유전체 분석 기술의 급격한 발전에 대해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지난 2월 영국에서는 여성 2명과 남성 1명의 DNA를 결합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3부모 체외수정’ 법안을 통과시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관련 시술의 합법화를 요구해온 유전질환 환자 가족과 과학자들은 통과에 대해 환영하지만 종교계, 생명윤리운동 단체들은 태아의 유전체 조작의 길이 열려 ‘디자이너 베이비(맞춤형 아기)’가 양산될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전체분석과 이를 활용한 맞춤의학시대에 기대를 걸지만 기술적 수준 향상 못지 않게 관련 규제 완화와 윤리적 해결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