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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한국의 배를 채운 버리던 음식들 … 일제강점기·한국전쟁 거쳐 별미 대접
  • 정종우 기자
  • 등록 2015-03-02 12:25:35
  • 수정 2020-09-14 13: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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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부대 잔반 활용한 부대찌개, 수출하고 남은 저급 삼겹살, 어시장에서 버려지던 아귀찜·물메기 ‘이젠 귀한 몸’
 
삼겹살은 외국에 수출하고 남은 부위 중 하나로 서양에서는 베이컨으로 만들어 먹지만 한국처럼 즐겨 먹지는 않는다.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반도에는 먹을 게 부족했다. 미군들이 먹다 남긴 햄이나 식재료를 이용해 부대찌개를 만들었고, 외국에 수출하고 남은 돼지고기의 허접한 부위를 구워 먹어야 했다. 맛이 없어 잡으면 버렸던 아귀를 이용한 요리를 술안주로 상 위에 올렸다. 부대찌개, 삼겹살, 아귀찜에 대한 유래다. 이런 슬픈 연원에도 불구하고 배고파서 어쩔 수 없이 먹던 음식들이 이젠 별미로 변신해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삼겹살을 본격적으로 먹은 것은 국내에서 돼지고기를 수출하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다. 서양이나 일본 등에서는 안심, 등심을 고급육으로 취급해 이 부위를 중점적으로 수출했다. 이들을 보내고 남은 족발, 내장, 돼지머리 등을 이용한 음식이 이 시기부터 등장했다. 삼겹살은 서양에서는 베이컨으로 만들어먹는 부위지만 한국처럼 즐겨먹지 않는다. 오히려 유럽에서 소비되지 않고 남은 삼겹살은 국내로 유입되고 있다.

삼겹살은 기관지에 낀 오염물질을 제거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건강식으로도 취급받는다. 특히 황사철이면 공급이 일시적으로 달리기도 한다. 이런 속설은 과거 광부들이 탄광에서 일을 마치고 삼겹살을 먹던 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삼겹살의 기름기가 기관지에 낀 분진을 흡착해 씻어낸다는 논리인데 영양공급이 부족하던 시대에 육류 섭취는 면역력 보강 등에 도움이 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전문가들은 ‘삼겹살 속설’이 아직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영양과잉시대인 요즘엔 지방 함량이 높아 지용성 유해물질의 체내 흡수를 높일 수 있어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감자탕은 그 이름이 먹는 사람들의 논쟁거리가 되기도 한다. 탕 속에 들어가는 감자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돼지등뼈가 과거엔 감자뼈로 불렸다는 설로 대립된다. 감자탕의 조연인 감자는 1800년대 초 국내에 들어왔다. 감자라는 이름도 고구마와 혼용해 사용하다가 1960년대부터 명확하게 감자와 고구마로 달리 불리기 시작했다. 돼지등뼈의 이름이 원래 감자뼈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축산전문가들도 감자뼈라는 부위는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감자탕이란 이름은 뼈다귀탕 또는 뼈해장국에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감자 몇 알을 더 넣은 데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감자탕 모습은 100여년전 경인선 철도공사 때 인부들이 공사에 동원돼 인천으로 몰리면서 굳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부들을 먹이기 위해 저렴한 재료를 이용하다보니 값싼 돼지등뼈, 감자, 우거지 등이 사용된 감자탕이 탄생된 것이다. 동물의 뼈를 넣고 육수를 내어 각종 야채를 넣어 끓인 국은 특별한 조리법이랄 게 없다. 요리는 간단하고, 가격은 저렴하지만 영양가도 허접스럽진 않다. 돼지등뼈에는 단백질·칼슘·비타민B1 등이 풍부해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으며, 남성들에겐 스태미너 음식으로 추천된다. 감자와 우거지에는 섬유질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저하시켜주고 심장질환·고혈압 등을 예방하는데 효과적이다.

아귀찜은 1950년대 중반 부산시 서면 미군부대 옆 물탱크 근방의 술도가 창고에서 할머니 두분이 생아귀를 쪄 조리한 게 유래로 알려진다.아귀는 과거 그물에 걸리면 재수없다고 바로 바다에 버렸다해서 인천에선 ‘물텀벙이’로 불렸다. 물곰, 물돔배기란 별칭도 갖고 있다.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지역에서도 아귀는 어시장 한구석에 내동댕이치는 천덕구니였다.
물메기(인천·여수·남해·통영에서 주로 불리는 별칭, 마산·진해에선 물미거지·미거지, 충남에선 바다미꾸리·물잠뱅이로 불림, 동해에선 물곰·곰치)도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다가 1990년대 들어와 평가가 달라졌다. 비싼 대구탕 대신 물메기탕이 서민들의 입맛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물메기는 비린내·기름기가 없는 특유의 담백함과 부드러운 식감이 입소문을 타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귀한 몸’이 됐다.
아귀나 물메기나 모두 ‘물텀벙이’로 불린 것을 보면 원래 버림받았던 생선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 중반 아귀는 ‘물꽁(물곰)찜’이라는 음식의 재료로 등장한다. 부산시 서면 미군부대 옆 물탱크 근방의 술도가 창고에서 할머니 두분이 생아귀를 쪄 양념장에 찍어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한 게 아귀찜의 유래다. 이후 전국으로 퍼져 전국민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돌변했다.

먹장어(꼼장어, 곰장어)는 국내에서만 먹는 요리로 과거엔 잡지도 않았던 생선이다.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으로 꼼장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서민들의 술안주로 등장한 것은 일제 강점기에 부산지역 먹장어 가죽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한 이후다. 먹장어 가죽을 이용해 저급한 지갑, 구두 등이 만들어졌다. 흔히 먹는 먹장어는 가죽을 벗겨낸 것으로 구이 또는 매운탕 용으로 먹는다. 8~10월이 제철이지만, 계절을 가리지 않고 먹는다. 단백질, 비타민A 등이 풍부하다.

1960년대 미국에서 동물용 사료가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국내 축산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짧은 기간 대량으로 키울 수 있는 닭은 다른 육류보다 값이 비교적 저렴해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요리재료로 떠올랐다. 이를 이용한 닭볶음탕, 삼계탕, 후라이드치킨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닭내장탕·닭똥집도 서민들의 배를 채우는 데 도움이 됐다.

주한미군은 주둔지의 물건을 잘 쓰지 않는다. 웬만한 것은 미국에서 공수받아 사용한다. 음식에 들어가는 것도 본토에서 공수받은 재료를 이용한다. 비행기나 배에 실어 들어오는 음식 재료들은 대부분 냉동해 들어온다. 상하기 어려우므로 주둔지 밖으로 빼내 유통하기 쉬웠다. 그러나 부대에서 나온 것을 사서 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 미군들이 버린 것을 재활용했다. 잔반을 가져와 솥에 넣고 끓여 ‘꿀꿀이죽’이란 것을 탄생시켰다.

부대찌개는 미군들이 버린 식재료를 이용해 만든 음식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국내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서 점차 위생적으로 바꼈다.부대찌개도 꿀꿀이죽에서 비롯됐다. 주로 미군 기지에서 가까운 서울시 용산구, 경기도 의정부시, 경기도 오산시 송탄 등에서 만들어졌다. 1980년대 중반 국내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서 부대찌개의 내용물도 점차 위생적으로 바뀌었다. 외식 산업이 발전하면서 과거 추억의 음식이었던 부대찌개를 메뉴로 내세운 프랜차이즈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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