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증 산모 4만명 중 진료받는 여성은 241명으로 0.6% 불과 … 가벼이 여겨선 안돼
김선미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산모와 상담하고 있다.
최근 자신의 두 살 막내딸의 코와 입을 손으로 막아 살해한 30대 주부의 살해 원인이 ‘산후우울증’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그녀는 5년 전 첫째 아들을 낳고 우울증을 앓았으며, ‘남편을 닮은 딸을 보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로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출산한 여성의 10~20%가 산후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봤을 때 2013년 산후우울증으로 진료받은 여성은 241명에 불과했다. 2013년 출생아 수를 기준으로 추산한 산모 약 43만6600명 중 10%인 4만3660명이 산후우울증이라고 가정할 때 불과 0.6%만이 진료받는 셈이다. 이를 앓는 산모 거의 대부분은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산후우울증은 여성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아이와의 상호작용에도 악영향을 준다. 결국 아이의 정서·행동·인지 발달에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부부간 갈등을 일으켜 가정 파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방치될 경우 피해망상, 과다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정신적 장애다.
산후우울증은 산모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데도 불구하고 가족뿐만 아니라 산부인과 의사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이 증상을 알고 있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무시하고,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은 매우 꺼린다.
김광준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우리나라 전체 모성사망 중 산후출혈이나 고혈압질환에 의한 부분은 감소하는 추세인데 반해 자살로 인한 모성사망소식은 늘어나고 있다”며 “임신시 산부인과 진료단계에서부터 태아와 산모의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감정, 정서, 환경 등 정신건강에 대한 체계적인 모니터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중앙대병원은 산후우울증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하기 위해 산부인과, 정신건강의학과, 소아청년과가 연계해 ‘분만 전후 협진 상담을 통한 산모의 산후우울증 관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내원하는 산모를 대상으로 산전, 분만직후(퇴원전), 분만2주후, 분만6주후로 나눠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에서 총 4차례 우울척도(CES-D)·불안척도(STAL-S,T)·에딘버러산후우울척도(EPDS)를 설문을 통해 조사한다.
중앙대병원은 최근 6개월간 출산을 위해 내원한 산모 중 검사에 동의한 산모를 대상으로 우울증 선별검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출산 직전 유의할 정도의 우울증상을 보인 산모가 29.4%에 달했으며 그 중 14.7%는 심각한 정도의 우울감을 호소했다.
분만 2주 후에는 40%의 산모가, 분만 6주 후에는 32.4%의 산모가 상담이 필요한 정도의 우울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심각한 산후우울증으로 분류될 만큼 증상이 심한 경우도 분만 2주 후 및 6주 후에 각각 22.1%와 11.8%에 달했다.
김선미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병원에서 임산부에 대한 체계적인 산전·산후 우울증 검사·관리 및 치료 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며 “산모는 물론 가족의 관심과 인식의 변화를 통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산후우울증 자가 진단법(에딘버러 산후우울 간이검사)
1. 우스운 게 눈에 잘 띄지 않고 웃을 일이 없다.
2. 어떤 일에 대한 즐거운 기대감이 별로 없다.
3. 일이 잘못되면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탓해왔다.
4. 별 이유 없이 불안해지거나 걱정이 된다.
5. 별 이유 없이 겁먹나 공포에 휩싸인다.
6. 처리할 일들이 쌓여만 있다.
7. 너무나 불안한 기분이 들어 잠을 잘못잔다.
8. 슬프거나 비참한 느낌이 들었다.
9. 너무나 불행한 기분이 들어 울었다.
10. 나 자신을 해치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10가지 항목 중 지난 7일 동안의 기분에 해당되는 항목에 0~3점으로 답해 합산한 결과 9점 이상이면 병원을 찾아 상담을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