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의 진단이 선진국보다 최대 5배 늦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발병 연령이 낮을수록 진단이 늦어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류마티스학회(이사장 고은미 삼성서울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14일 서울 플라자호텔 22층 다이아몬드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코호트연구(KORONA, Korea Observational Study Network for Arthritis)를 통해 국내 류마티스관절염 진단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학회가 코호트에 등록된 류마티스관절염 환자 5376명(남자 896명, 여자 4480명)을 분석한 결과 국내 류마티스관절염 환자는 첫 증상 발현 뒤 진단까지 평균 20.4개월이 걸려 캐나다의 6.4개월, 벨기에 5.75개월, 덴마크의 3~4개월보다 최대 5배 늦은 것으로 나타났다.
발병 연령이 어릴수록 진단은 더 늦어졌다. 증상 발현 뒤 진단까지 걸리는 기간은 20세 미만 40.7개월, 20대 31.6개월, 30대 24.6개월, 40대 18.9개월, 50대 14.1개월, 60대 11.8개월, 70대 이상은 8.8개월이었다.
심승철 대한류마티스학회 홍보이사(충남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젊은 환자는 고령 환자보다 관절염에 대한 지식이나 경각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증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진단이 더 지연된다”며 “적극적인 사회활동이 많은 시기이므로 제 때 치료받지 못하면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을 방문해 류마티스관절염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마티스관절염은 인체내 관절을 싸고 있는 얇은 막(활막)에 만성 염증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이다. 활막이 염증으로 인해 두꺼워지면 ‘판누스(Pannus)’라는 덩어리가 형성되고, 이 덩어리가 연골과 관절 주변 뼈를 손상시켜 관절의 기능을 잃게 만든다. 발현 2년 이내 환자의 70%에서 관절손상이 발생하며, 진단이 지연될수록 장애를 겪는 비율도 높아진다. 이번 조사결과 증상 발현 뒤 진단까지 12개월 이상이 소요된 환자는 12개월 미만인 환자보다 기능장애 점수가 유의하게 높았다.
류마티스관절염의 진단에는 의사의 진찰소견과 병력과 함께 혈액검사가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류마티스인자가 음성이고 임상 양상이 초기에 전형적이지 않을 경우 진단이 늦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이번 조사결과 류마티스인자 음성 환자의 진단기간은 23.2개월로 양성 환자의 19.9개월보다 길었다.
항CCP항체검사는 류마티스인자의 한계점을 보완한 것으로 2010년 새로 개정된 류마티스관절염 분류 기준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류마티스인자검사보다 진단 특이도가 높아 조기진단에 큰 도움이 된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류마티스관절염이 의심되는 모든 환자에게 항CCP항체를 확인하는 게 권장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항CCP검사가 시작된 2006년 이후 진단 지연 기간이 줄었다. 2006년 이전에 진단받은 환자는 22.1개월, 2007년 이후 진단받은 환자들은 진단이 약 4개월 앞당겨졌다.
또 류마티스관절염인데도 류마티스인자와 항CCP항체 모두 음성인 경우 자기공명영상(MRI) 등 영상의학검사를 통해 염증 상태 등을 확인하는 게 조기진단에 도움된다.
그러나 류마티스관절염에 대한 항CCP검사와 MRI검사는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환자가 비용 부담을 이유로 검사를 꺼려해 조기진단과 초기 치료방향 설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은미 대한류마티스학회 이사장은 “류마티스관절염은 관절통증부터 시작해 관절변형, 관절파괴로 이어지고 다양한 합병증을 동반하는 만큼 초기에 진단받아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며 “현재 정확한 진단에 필요한 검사에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이 검사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류마티스관절염 환자의 진단을 앞당기면 장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