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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좁은좌석서 ‘망부석’ … 다리 저리고 가슴답답,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
  • 정희원 기자
  • 등록 2014-07-25 19:01:17
  • 수정 2014-08-05 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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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내서 다리근육 운동부족시 혈류 느려지며 혈전유발 … 방치시 폐동맥색전증·쇼크사 우려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은 기내서 다리근육의 운동이 부족할 때 혈류가 느려지며 혈전을 생성하는데, 최악의 경우 폐동맥색전증을 일으켜 쇼크사할 우려가 있다.

여행이 취미인 대학생 이 모씨(27)는 ‘다시는 저가항공사를 이용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과외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방학때마다 배낭여행을 다닌 게 3년째다. 지난해 여행비용을 아낄 겸 저렴한 비용으로 인기를 끄는 저가항공사 티켓을 끊었다. 서비스는 만족스러웠지만, 호주 시드니로 향하는 내내 몸을 마음대로 가누기도 어려웠다. 185㎝에 90㎏이 나가는 그에게 좁디좁은 좌석은 고문과도 같았다.

호주에 도착할 때가 가까이 오자 갑자기 참을 수 없이 다리가 저려와 아픔을 호소했고, 친구가 직원을 불러왔다. 스튜어드는 그의 다리를 주물러주며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Economy Class Syndrome)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날 생각만 하면 괜히 낯뜨겁다.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이 구체화된 의학적 병명은 ‘심부정맥혈전증’(DVT, Deep Vein Thrombosis)이다. 한국에서 미국·유럽·대양주 등으로 10시간 이상 여행할 때 비행기에서 오랫동안 비좁은 공간에서 다리를 펴지 못한 자세로 움직이지 못 할 때 발생하기 쉽다. 굵은 정맥에 피가 굳어 혈맥이 막히며, 하지의 심부정맥에 혈전이 생겨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아무리 즐거운 여행이더라도 비좁은 이코노미클래스에서 10시간 가까이 꼼짝없이 앉아 있는 건 고문에 가깝다. 하물며 저가항공사의 좁은 좌석이라면 조건이 더욱 열악하기 마련이다.

오도연 분당차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다리의 정맥혈이 심장으로 원활하게 흐르려면 종아리근육의 규칙적인 운동으로 인한 펌프작용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비행기 좌석에 앉은 자세로 움직이지 못하면 다리근육의 운동부족으로 혈류가 느려져 피가 응고하는 증상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큰 체구와 다른 비행기에 비해 좁은 좌석에 앉은 이 씨가 다리저림 등을 호소할 만한 이유다.

심부정맥혈전증은 갑자기 다리가 붓고 아프거나, 숨이 차는 등 호흡곤란이 생기거나, 흉통을 호소한다. 대부분 환자는 다리가 저리기만 할 뿐, 별다른 증상을 호소하지 않기도 한다. 이같은 현상은 퍼스트클래스나 비즈니스클래스와 달리 비좁은 이코노미클래스 승객에게만 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이라고 불린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 이를 가볍게 여겨 방치해선 안된다. 오 교수는 “생성된 혈전이 혈관을 타고 떠돌아다니다 폐동맥을 막으면 폐동맥색전증을, 뇌혈관을 막으면 뇌경색을 일으킨다”며 “피떡(혈전)이 폐동맥으로 들어가 혈관을 막으면 최악의 경우 쇼크사를 불러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폐동맥색전증으로 매년 약 5만명이 사망하며, 이들의 90%는 다리에 발생한 심부정맥혈전증에서 떨어져 나온 혈전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항공기 좌석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어 이런 불편함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최근 미국 항공기 리뷰사이트 ‘시트구루’는 “세계 유명 항공사의 평균 좌석 폭은 42㎝로, 과거에 비해 좌석이 점점 좁아지는 추세”라며 “수익성 압박에 시달린 일부 항공사가 공간 활용을 높이기 위해 좌석의 폭을 줄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증후군은 대부분 6시간 이상 비행기를 탄 경우에 발생한다. 75세 이상 고령에서 흔하고, 과거에 정맥혈전증을 경험했던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비행기내 산소함량 및 습도 부족, 탈수 등도 부차적인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권선 인종적 또는 생활습관의 차이로 미국·유럽 등 서구권보다 심부정맥혈전증의 빈도가 현저히 낮다고 막연히 알려져 있다. 심장병, 뇌졸중 다음으로 흔한 질환이나 국내선 아직 생소하다. 최근 식사·생활습관 변화 등으로 서양과 라이프스타일 패턴이 비슷해지면서 발병빈도가 점차 상승하는 추세다. 더욱이 좌식생활이 일반화되면서 기내뿐만 아니라 자동차, 사무실에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만큼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오도연 교수는 “같은 아시아국가인 일본에선 2002년 일본의 축구스타 다카하라 나오히로(35)가 유럽으로 전지훈련을 가던 중 비행기에서 호흡곤란을 일으켜 급히 응급처치를 받고 귀환하면서 심부정맥혈전증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했다”며 “일본 의료계는 이 질환에 대한 연구를 활성화하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도 매년 3월 첫째주를 ‘정맥혈전증의 대국민 홍보주간’으로 정해 질환으로 인한 피해자가 줄어들도록 후원하고 있다. 2003년 데이비드 블룸 NBC 특파원이 이라크에서 폐동맥색전증으로 사망한 직후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2006년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심부정맥혈전증의 진단은 다리가 붓거나 숨이 막히는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을 때 초음파나 혈액검사로 수시간 내에 쉽게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진료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비행기 안에서 발생한 경우 진단이 늦어질 수 있다.

일단 진단이 나오면 치료는 크게 어렵지 않다. 오도연 교수는 “다만 진단이 늦어지면 폐동맥색전증으로 갑자기 생명을 잃거나, 치료해도 정맥이 손상돼 평생 다리가 붓고 불편한 ‘정맥염후 증후군’이란 합병증을 얻을 수 있다”며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경제적 형편 상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을 예방하기 위해 매번 거액을 들여 비즈니스클래스나 퍼스트클래스로 옮길 수 없는 노릇이다.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복부비만·대사증후군을 가진 사람, 중년 이후의 남성, 흡연자, 수술한 지 얼마 안 되는 사람 등은 심부정맥혈전증의 위험도가 더욱 높아 주의해야 한다.

장시간 비행해야 할 경우 일정 시간마다 다리를 주물러주거나 일어나서 가벼운 다리운동을 시행해주면 하지정맥의 탄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몸에 편한 옷과 신발을 착용토록 한다. 물을 자주 마셔야 탈수로 인해 혈전이 생성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 
 
오도연 교수는 “심부정맥혈전증으로 진단받은 사람은 다리에 의료용 탄력스타킹을 착용하거나, 여행 중 적절한 약물(항응고제 등)을 사용하면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며 “정맥혈전색전증을 앓았거나 위험요소를 가진 사람은 여행 전 미리 의사와 상의해 안전한 여행을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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