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개월 이상 금연성공률, 위약군과 차이 없어 … 플라시보 효과 대부분, 단독 사용시 효과 의문
금연침은 일부 환자에서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임상근거가 부족해 금연요법으로 권장하지 않는다는 게 현대의학계의 중론이다.
담배를 핀지 10년이 지난 임모 씨(33)는 얼마전 담뱃값이 대폭 오를 수 있다는 뉴스를 보고 금연을 결심했다. 금연침을 맞으면서 3주를 버텼지만 회사 회식자리에서 결국 담배를 입에 물고 말았다. 금연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임 씨는 “건강을 위해 금연한다지만 오히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역효과가 나는 것 같다”며 금연을 포기한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정부 주도의 담배소송, 담뱃값 인상 등이 이슈화되면서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상당수가 실패를 겪는다. 흡연을 단순한 개인의 습관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만 의학적으로는 중독질환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흡연이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과 같은 의존적 정신질환으로 구분된다.
담배를 필 때 체내에 흡수된 니코틴은 약 8초만에 뇌에 도달한다. 뇌에 도착한 니코틴은 쾌락중추, 즉 중뇌의 ‘복측피개영역(VTA, ventral tegmental area)’에 있는 아세틸콜린수용체(니코틴수용체)와 결합해 쾌락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이 때문에 업무나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담배를 한 모금 피면 기분이 좋아지고 집중력이 향상되는 느낌이 들게 된다.
반복된 흡연은 니코틴에 대한 내성과 육체적 의존성을 갖게 만든다. 이 단계에서 금연하면 마약중독자들에게 보이는 것처럼 여러 금단 증상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금연에 실패하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최근 보고된 연구결과 자신의 의지만으로 금연을 시도했을 때 6개월 이상 금연성공률은 5% 미만에 불과했다.
가장 큰 문제는 담배를 끊기 위해 특정 방법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는 점이다. 그 중 하나가 금연침이다. 금연침은 ‘이침(耳鍼)’이라는 길이 1㎜ 정도의 침이 들어있는 반창고를 귀 안쪽 혈자리 7곳에 붙이는 치료법이다.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들지만 금방 없어진다. 흡연 욕구가 생기면 귀를 약간 흔들거나 손가락으로 반창고를 비벼 자극을 준다. 침을 붙이고 2일이 지난 뒤 새 반창고로 바꿔주며, 이 과정을 3번 이상 반복한다.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침법은 봉독약침·전침(電鍼)·온침(溫鍼)·피내침(皮內鍼)·자락요법(刺絡療法) 등으로 나뉜다. 금연침은 이 중 피내침에 해당된다. 피내침은 특수하게 제작된 작은 침을 혈자리의 피부 속에 일정 시간 매입시키는 치료법으로, 매침(埋鍼)으로 부른다. 임상에서는 혈자리에 침 자극을 오래 가하기 위해 사용한다.
한의학에서는 금연침이 기관지와 폐가 연결된 혈자리를 자극해 금연효과를 낸다고 설명한다. 금연침을 붙인 흡연자는 담배를 입에 물 경우 맛이 전보다 떨어지거나, 두통이나 메스꺼움이 느껴져 흡연 욕구가 점차 사라지게 된다. 치료비는 병원마다 차이나지만 보통 5000원 정도다.
그러나 현대의학계에서는 임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효한 금연방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의사와 한의사간 의견 대립은 몇 년째 이어지는 중이다.
이에 한의사들은 임상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에서 탈피하기 위해 임상 데이터를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최근 대한한의사협회가 상지대 한의과대 예방의학교실에 의뢰해 지난해 1년간 금연침 무료시술사업에 참여한 흡연청소년 303명을 대상으로 금연 성공률을 조사한 결과 31.4%는 완전금연, 37.3%는 부분금연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80.1%는 흡연량과 흡연욕구가 감소했다.
또 흡연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 100%가 금연에 성공했거나 부분 금연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3년 이상 흡연한 학생은 22.8%가 성공했다. 2011년에는 금연침을 맞은 흡연자 400명 중 72.5%가 금연효과를 봤다는 조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한의원을 운영 중인 오모 원장은 “금연침의 효과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흡연이 자신의 의지와 깊게 관련돼 담배를 끊으려는 노력이 마치 위약효과처럼 보이는 것”이라며 “실제 임상에서는 금연침을 시술하며 흡연의 폐혜 등에 대한 조언을 병행할 경우 금연 성공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고 말했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기존 금연치료제인 니코틴 껌과 패치제는 피부트러블, 소화불량, 구역감 등 위장장애를 유발하고 임산부나 심장병 및 피부병 환자는 사용을 피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며 “그러나 동양의 침구이론을 이용한 금연침은 약물을 이용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약한 침 자극을 가해 금연욕구와 금단현상을 줄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신적 안정을 유도할 수 있지만 뾰족한 물건이나 약한 자극에 공포심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시술이 어렵다는 게 단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금연침이 효과적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는 게 현대의학계의 중론이다. 해외에서 진행된 연구도 금연침의 효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애드리안 화이트(Adrian White) 영국 엑스터대 교수 겸 침구사는 금연침의 효과를 검증한 14편의 논문을 검토한 결과 ‘플라시보 효과(위약효과, placebo effect)’에 비해 더 나은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는 연구를 2006년 금연잡지 ‘토바코 콘트롤(Tobacco Control)’를 통해 발표했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박사(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금연침은 귀 주위의 경혈을 침으로 자극해 금단증상을 완화하거나 흡연욕구를 떨어뜨리고, 흡연시 두통 및 울렁거림 등 유발해 금연을 유도한다고 한다”며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발표된 38편의 임상시험 논문을 종합한 메타분석 결과를 분석해보면 6개월 이상 금연성공률의 경우 가짜침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금연침은 금연치료법으로 권장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일반 금연치료와 금연침을 병행하면 금연 성공률이 높은 편이지만 금연침만을 단독으로 사용할 경우 효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2000년 권위 있는 의학연구정보 기구인 영국의 코크란협력기구(Cochrane Collaboration)도 금연침은 약간의 위약효과만 있을 뿐 장기 성공률은 위약군과 유의하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전자담배, 금연침, 금연초 등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나타낼 수 있지만 연구결과가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는 만큼 맹신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명 박사는 “흡연은 자신의 의지로는 조절하기 힘든 중독 증상이므로 단순한 의지만으로 금연하기는 어렵다”며 “자신의 흡연 습관과 적합하고 의학적으로 효과 있다고 증명된 방법을 선택하는 데 금연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