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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부부 유혹하는 대리부 … 치명적 유전병 일으킬수도
  • 박정환 기자
  • 등록 2014-06-23 01:22:22
  • 수정 2014-06-25 11: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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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자 불법매매 지난해 871건, 성관계 유도하기도 … 정자은행, 기증자 정보 비공개해 신뢰도↓

인터넷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리부 지원글.

“나이 28세, 키 181㎝, 몸무게 75㎏에 현재 서울 소재 명문대 공대 석사과정에 있습니다. 군대는 병장 만기전역했으며, 혈액형은 Rh+ A입니다. 친가와 외가 쪽 모두 대머리이거나, 암 또는 당뇨병 등 유전병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흡연은 안하며 음주는 한 달에 1~2번, 주량은 소주 0.5병입니다”

기업 입사지원서에나 나올 법한 이 문구는 인터넷 개인블로그에 올라온 대리부 지원글의 일부다. 대리부(代理父)는 정자은행이나 병원 등 공식 기관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정자를 매매하는 사람 혹은 행위를 의미한다. 순 우리말로는 ‘씨내리’로 불린다. 2~3년전 TV프로그램과 언론을 통해 불법 정자매매의 실태가 낱낱이 밝혀지면서 대리부 지원글이 넘쳐나던 인터넷 카페들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불법적인 정자매매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다른 점은 불법 행위가 이뤄지는 공간이 임신·육아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사이트나 불임 인터넷카페에서 개인블로그 및 홈페이지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자신의 블로그에 대리부 지원글을 올려 검색이 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 결과 ‘난자·정자의 불법매매 혐의 적발 현황’에 따르면 불법매매 적발 건수는 2011년 381건, 2012년 403건, 2013년 871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난자·정자 불법매매를 관리해야 하는 주무부처의 단속 인력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매매되는 정자 가격은 학벌, 가족력, 외모 등 스펙에 따라 수 십만원에서 수 천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현행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자·난자은행을 통하지 않는 당사자간 직거래는 불법이다. 예컨대 정자은행을 거치지 않고 개별적으로 정자나 난자를 매매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지게 된다. 문제는 불임 환자 수는 급증하는 반면 은행에 보관 중인 정자와 난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건보공단의 건강보험 진료비 지급자료에 따르면 불임 환자는 2008년 16만2000명에서 2012년 19만1000명으로 연평균 4.2%씩 증가했다.

정자은행은 정자 기증자의 외모나 스펙 등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기 않기 때문에 우수한 정자를 원하는 불임부부들은 대리부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결혼 후 3년째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오모 씨(33·여)는 “만약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정자가 필요하다면 외모, 학벌, 가족력 등 조건을 꼼꼼히 따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정자은행은 비용이 비싸고 절차가 복잡하며 정자 기증자의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어 이용하기 망설여진다”고 말했다.

대리부는 외모, 학벌 등 스펙에 따라 크게 A, B, C, D 등급으로 분류된다. 정자 가격이 부르는 게 값인 A급 대리부는 20~30대 초반에 외모는 준수한 편이고, 키는 180㎝ 이상이어야 한다. 학력은 SKY로 불리는 명문대 출신에 술·담배는 하지 않아야 하고, 유전적인 질병도 없어야 한다.

윤석용 전 새누리당 의원은 2011년 임신을 원하는 불임부부가 대부분 스스로 정자를 구해서 병원에 가져온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정자은행이 보관 중인 정자 수보다 불임 시술에 쓰이는 정자 수가 더 많은데, 이는 불임부부가 스스로 정자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자체적으로 정자를 구한 후 필름통 등에 담아 정자은행에 가져갈 경우 기증자의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문제는 이같은 직접적인 정자매매가 불임부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부 대리부 지원자는 우수한 정자를 원하는 불임부부들의 마음을 악용해 직접적인 성관계를 유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대리부 지원글에 나와 있던 메일로 문의하자 “인공수정이든 자연수정이든 원하는 방법으로 돕겠지만 자연수정이 임신확률이 더 높다”며 성관계를 유도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두 번이나 임신을 성공시켰다며 대리부 경력을 자랑했다.

만약 대리부 지원자가 이력과 가족배경 등을 속이고 자연수정 방식으로 성관계를 맺더라도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 이런 경우 적용할 만한 형사상 죄목은 강간, 사기, 간통, 혼인빙자간음, 성매매 정도다. 그러나 현행 형법상 강간은 피해자가 폭행이나 협박으로 맺은 성관계일 때, 준(準)강간은 피해자가 저항할 수 없거나 심신장애로 변별력과 의사능력을 잃은 상태에서 당했을 때 적용이 가능하다.
여성이 남편 강요로 제3자와 원치 않는 성관계를 맺었다면 교사에 의한 강간으로 볼 수 있지만 대리부 빙자 성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반면 대리부 지원자 중에는 “자연수정 방식은 상담 불가능하며, 개인적으로 이런 방식은 원하지 않는다”는 비교적 양심적인 사람도 있었다.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난자는 1인당 평생 3회로 기증 횟수가 제한돼 있다. 그러나 정자는 기증 횟수를 제한할 만한 법적 근거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복지부 관계자는 “관련 시민단체 및 전문가와 논의해 불법적인 정자거래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 했지만 아직 효과적인 방법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불임부부들이 우월한 유전자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음성적인 정자거래는 지속될 것”이라며 “현행법상 1인이 기증한 정자로 인공수정할 수 있는 횟수의 제한이 없어 같은 아버지의 정자로 태어난 남녀가 근친상간을 저지를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런 경우 결함있는 정자로 인해 희귀·유전성질환이 초래될 우려가 커 정자거래를 양성화하고 보상비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국내에서는 정자·난자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돼 기증만 받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홍보가 부족해 기증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이 정자·난자를 보관하는 행위에 대해 보수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구인회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교수는 “단순한 생식세포 제공이 아닌 상업적 매매는 자식을 돈 받고 파는 행위가 된다”며 “이는 다가올 미래에 큰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생식세포를 제공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강화된 법적 규제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이목희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회)은 지난 4월 난자·정자 불법매매를 근절하기 위한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난자·정자 불법매매의 주요 통로인 온라인서비스 게시물을 차단하기 위해 복지부 장관이 불법매매가 의심되는 온라인 자료를 발견할 땐 정보통신망을 운영하는 사람에게 관련 자료의 전송을 방지 및 중단하는 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아울러 각 의료기관에 자율적으로 맡겨져 있는 배아생성의료기관의 표준운영지침이 통일된다.

이목희 의원은 “난자·정자 불법매매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현행법에 명확한 단속 근거 규정이 없어 주무부처는 수동적·형식적으로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며 “주무부처는 지도·점검을 3년에 한 번씩만 실시하고 있어 불법행위에 대한 관리가 부실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행법에 복지부장관의 단속 책임을 명문화함으로써 복지부가 적극적으로 난자·정자 불법매매를 감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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