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면 터널 속을 달리는 굉음에 기침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계절이다. 스트레스나 과로로 약해진 면역력과 운동부족, 위생관리 소홀의 3박자가 빚어낸 불협화음 협주곡인 ‘감기’는 환절기마다 지친 현대인의 심신을 괴롭힌다. 창연한 가을하늘과 들판에 무르익은 곡식의 풍요로움을 느껴야 하는 10월이지만 요즘은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벌써부터 겨울 분위기가 난다. 이때 일교차가 커져 몸이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면역력이 약하면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감기는 발병 시기에 따라 초기 감기, 진행된 감기로 나뉜다. 증상이 심한 부위에 따라 코감기·목감기·기침감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초기에는 코감기로 시작했다가 기침감기, 목감기로 진행되지만 호흡기를 통해 나타나는 전신적인 질환이기 때문에 이런 분류는 실제 치료에 있어서 큰 의미가 없다.
감기를 일으키는 주범은 여러 가지 호흡기 바이러스인데 아직 이것을 죽일 수 있는 약은 없다. 우리가 흔히 먹는 감기약은 치료제라기보다는 기침·고열·통증 등의 증상을 완화시키는 약이다. 콧물이 나면 나지 않도록 하고 기침을 하면 기침을 줄여 주고 열이 나면 열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식의 치료인 것이다. 때문에 감기약의 주요 성분은 콧물을 멈추게 하는 ‘항히스타민제’, 열을 내리게 하는 ‘해열제’, 통증을 덜어주는 ‘진통제’, 가래를 없애주는 ‘진해거담제’ 등 증상을 완화시키는 것들이다. 감기의 치료는 결국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염증반응을 일정 기간에 걸쳐 이겨냄으로써 이루어진다. 감기 증상별 치료제와 성분에 대해 알아보자.
해열소염진통제
감기로 열이 나고 붓거나 두통을 느낀다면 해열소염진통제를 쓴다. 아스피린(aspirin)·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부프로펜(ibuprofen) 등이 대표적이다.
아스피린은 1000~1500㎎을 복용하면 해열·진통·소염·요산배출 효과를 고루 얻을 수 있다. 하루에 100mg씩 복용하면 혈전생성을 억제해 심장병·뇌졸중 등의 순환기질환을 예방·호전시킬 수 있다. 추가로 통풍·치매·백내장을 예방하는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장점만을 죽 늘어놓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위장관에 염증과 출혈을 일으키고 혈액응고를 억제하므로 노인 만성질환자나 혈우병환자 등은 사용을 금해야한다.
이부프로펜은 아스피린보다 해열진통효과가 강하며 소염효과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위장장애와 같은 부작용도 적어 소아나 노인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고혈압 환자는 주의가 필요하다. 시중에 판매되는 일부 약품 중에는 즉각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아르기닌(arginine)을 첨가하는 것도 있다. 이로써 이부브로펜의 최고혈중농도를 2배가량 높이고 복용 후 15분 만에 최고혈중농도에 도달하도록 유도한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열의 생성과 발산의 균형을 맞추는 약이다. 뇌내 시상하부의 열 중추에 작용해 땀을 배출하게 만들고 혈관을 이완시켜 과도하게 열이 오르는 것을 막는다. 중추신경계의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 면역, 세포활동 등에 광범위한 작용을 하는 호르몬)의 합성을 방해하므로 진통효과를 발휘하지만 말초세포에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에 소염효과와 요산배출작용이 없다.
타이레놀은 아스피린, 이부프로펜보다 해열효과가 좋고 진통효과도 상당하지만 소염효과는 없어 염증을 동반한 통증에는 쓰지 않는다. 위장장애도 유발하지 않으므로 빈속에 먹어도 괜찮다. 하지만 비교적 적은 용량으로도 간 독성을 일으키므로 주의해야 한다. 장기간 또는 과량 복용할 경우 신장 독성·용혈성 빈혈 등 각종 혈구이상, 두드러기 및 홍반이 나타날 수 있다.
항히스타민제
콧물·코막힘·알레르기성 비염 및 천식·피부 두드러기·아토피성 피부염 등에 빠지지 않는 성분이 항히스타민제다. 환절기를 맞아 이런 질환에 걸려 약국을 들르게 된다면 한번쯤 이 성분이 들어가 있는 약을 접하게 된다.
히스타민(histamine)은 장기·조직·점막 등의 비만세포에 존재하다가 이들 질환에 걸리면 비만세포가 터지면서 분비되는 염증 유발물질이다. 점액분비를 촉진해 비강을 막히게 하고 기관지를 좁히며 모세혈관을 팽창시킨다. 항히스타민제는 이같은 작용을 하는 히스타민을 억제하므로 감기로 인해 콧물이 줄줄 흐르거나 코가 막히고 전신에 염증과 부기가 오를 때 필수적으로 처방한다.
항히스타민제는 콧물이나 재채기를 동반한 감기에 매우 효과적이지만 가래를 달라붙게 하고 배출하는 기관지 섬모운동을 저해하는 경향이 있어 가래와 기침이 고질화된 감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부작용으로 졸림·목마름·안압상승·현기증·변비·입안 건조·녹내장·시야몽롱·전립선비대증 등을 일으키므로 해당 질환의 환자는 조심해야한다.
먹는 항히스타민제로 치료가 안 되면 콧물이 진해지고 막히면서 2차 세균감염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스프레이 형태의 항히스타민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
진해거담제
숨쉬기 답답하고 기침과 가래가 끓는 목감기에는 진해제와 거담제가 처방된다. 가래가 나오지 않는 마른기침인지 가래가 나오는 습성 기침인지에 따라 치료처방이 달라진다.
기침은 호흡기 기도에 가래나 이물질이 끼어 이를 제거하고자 대응하는 생리반응이다. 원인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으며 기침은 감기증상에서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가래는 전해질(무기물)·탄수화물·단백질 등을 함유한 점액성 물질로 세포 파편과 기도분비물로 이뤄진다. 각종 자극에 반응해 점막상피에 있는 배상세포(杯狀細胞 점액분비 세포)가 주위의 포도당과 아미노산을 받아들여 점액성 단백질을 만들거나 부교감신경계 미주신경의 지배를 받는 기관지선이 점액성 물질을 분비함으로써 가래가 형성된다.
기침은 기관지점막에 생긴 가래나 이물질을 배출하는 자연스러운 생리기능이다. 따라서 기침할 때 무조건 진해제를 사용하면 가래배출이 어려워지므로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건성기침에 국한해 기침을 못 견딜 경우에 진해제를 써야한다. 습성기침에는 진해제 대신 가래의 배출을 원활하게 하는 거담제와 기도를 넓혀주는 기관지 확장 약을 쓰는 게 원칙이다.
감기기운이 있다고 해서 약을 무턱대고 먹는 것은 금물이다. 감기약들은 증상을 호전시키는 효과가 있으나 종종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도 고려해야만 한다. 바쁘고 피로한 현대인은 자신의 증상을 속단하고 자의적의로 인스턴트식품을 구하듯 약국에서 손쉽게 감기약을 손에 넣는데 이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이석용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감기에 생리통까지 겹친다면 이부프로펜이나 아세트아미노펜이 적합하고, 목감기에는 아세트아미노펜이나 아스피린을 추천한다”며 “과량만 아니면 위장관계나 간독성 부작용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