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에게 정보부족 … 증상 심하면 약물치료보다 정밀검사 후 수술받는 게 필요
음식점을 운영하며 배달 일을 하는 김모 씨(42)는 젊은 시절 동년배보다 다소 숨이 찬 경향이 있었으나 그러려니 하고 별다른 검사 없이 지냈다. 군 복무 기간에도 이상이 없었다. 15년 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호흡곤란이 심해져 병원에 가니 ‘비후성심근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증상이 없어 치료를 받지 않지 않다가 5년 전부터 다른 병원의 권유로 약물치료만 받아왔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최근 횡단보도의 보행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려가던 중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옮겨진 후 사망했다.
정상 심장(왼쪽)과 비후성심근증 심장. 노란색 화살표는 혈액의 출구를 나타낸 것으로 비후성심근증 심장에서 혈액의 출구가 매우 좁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질환은 선천적으로 심장근육이 지나치게 두꺼워 심장의 기능을 방해한다. 피가 뿜어져 나가는 심장의 출구가 두꺼워진 근육으로 막혀 혈액순환이 장애를 받고 호흡곤란·가슴통증·어지러움·실신에 이르게 되고 심지어 사망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비후성심근증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2011년 통계청의 국내 사망원인 발표에 각종 심장질환 돌연 사망자가 연간 2만3000여명에 달했다. 대한법의학회지의 광주·전남지역 자료에 2007~2010년간 심장질환 관련 사망의 약 7%가 비후성심근증이어서 적잖은 환자가 이 질환으로 돌연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술적 방법으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지만 의료진과 환자에게 치료정보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들 환자는 과도한 운동으로 심장의 부담을 가중시켜 치명적인 상태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돌연사 방지를 위해 수술도 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수술적 치료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치료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약물치료에만 의존하거나, 증상이 심할 때 심실중격으로 가는 혈관에 알코올을 넣고 인위적으로 심근경색을 만들어 심근 두께를 줄여 증상을 호전시키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2011년 미국심장학회에서는 이 질환에 대한 수술적 치료가 알코올주사요법 치료법에 비해 효과가 좋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심장혈관 분야의 저명한 학술지인 ‘미국의대심장학저널’(JACC, Journal of American College of Cardiology)에 비후성심근증의 수술을 시행할 때 생존율이 높고 돌연사 위험도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수술할 경우 병이 없는 일반인과 거의 같은 장기 생존율을 보였다.
김상욱 중앙대병원 심장혈관센터 순환기내과 교수는 “국내 사례에서 비후성심근증 환자를 흉부외과에 의뢰해 심근절제수술 후 환자를 정기적으로 추적 관찰하면 증상의 호전이 뚜렷해 알코올주사요법과 약물치료에 비해 수술적 치료가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홍준화 중앙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비후성심근증으로 진단되면 베타차단제나 항부정맥제 등 적절한 약제를 우선 복용해야 하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심장에서 피가 뿜어져 나가는 혈액 유출로가 폐쇄된 환자는 수술해 두꺼워진 심장근육을 잘라내는 심근절제술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수술은 가슴 앞쪽 한뼘 이하의 작은 절개를 통해 대동맥 판막 아래쪽의 근육을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로 잘라내는 방법으로 평균 일주일 가량 입원이 필요하며 2~3주 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홍 교수는 “이 질환은 20~30대 젊은층의 급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고, 유전적 성향이 강해, 직계 가족 중 돌연사나 비후성심근증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가족 전체가 심장초음파 등 정밀검사로 질환 유무를 확인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운동 중에 흉통·어지럼증·맥박 이상을 느껴 속이 울렁거리고 지나치게 숨이 차오르면 지체 없이 전문의를 찾아 비후성심근증으로 진단되면 수술 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증상이 심하지 않거나 약물로 증상이 잘 조절될 때 굳이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증상이 심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으므로 수술받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