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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공화국, 속절이 구구절절한데 그 해결책은?
  • 정종호 헬스오 기자
  • 등록 2013-01-24 03:22:42
  • 수정 2021-05-30 18: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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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보는 가치관 정립해야 우울증·자살에서 벗어날 수 있어

작년 여름 시골 야산의 잡초를 제거하려 농약상을 들렀더니 제초제의 포장과 용량이 달라져 있었다. 주인에게 연유를 물으니 제초제 먹고 자살하는 농민이 많아 과거보다 절반 이상 희석된 상태로 나온다고 답했다. 아이들 과자값 인상과 마찬가지로 용량(농도)을 줄이는 대신 가격을 조금 높이려니 생각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며칠 후 신문을 보니 농촌 노인 자살의 도화선인 농약에 대한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작년 11월부터 맹독성 농약인 그라목손의 생산이 중단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때서야 농약상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신문 사회면이 자살 증가, 고독사, 생명경시 현상으로 가득하다. 40~50대 남성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2011년의 경우 전체 평균(43.3명)보다 각각 4.4명, 18.2명 많았다. 한창 일하고 처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남성들이 실직, 좌천, 생활고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 것이다. 특히 50대 남성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는 61.5명으로 여성의 20.7명에 비해 3배나 많고, 50대 남성 사망 원인의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년만 그런 게 아니다. 2010년 70대 노인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83.5명으로 10년전에 비해 44.7명이나 늘었다. 80대 이상은 123.3명으로 10년전(51명)에 비해 두배 이상 증가했다. 1996년 10.5%이던 65세 이상 자살자 비중은 2010년 24.4%로 배 가까이 늘어났다. 경제적 빈곤, 신체적 질병, 사회적 고립이라는 노인의 3고(苦)가 원인이다. 후텁지근한 여름날 무거운 농약통을 어깨에 메고 통증과 고독감, 생활고에 덜컥 농약을 입에 털어넣는 심정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또 암이나 치매, 뇌사 등으로 고통받는 늙은 배우자를 간병하다가 배우자를 먼저 살해하고 뒤따라 자살하는 노인은 얼마나 참담한가. 

여성의 자살 비중도 높아졌다. 1996~2010년 미국·영국·독일 등 대부분 국가는 여성 자살자가 남성의 3분의 1~4분의 1 수준인데 비해 한국은 여성 자살자가 남성의 절반(50.7%)에 이른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면서 경제·육아·경쟁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우울증에 걸린 나머지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의 5분의 1이 질병에 따른 고통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2~2011년의 10년간 국내 자살 발생 건수는 13만7128건으로 이 중 병고로 인한 환자 자살은 3만448건(22.2%)에 달한다. 특히 해마다 암 환자가 증가하는 가운데 국립암센터가 2009년 암 환자 37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1.8%가 우울증을 호소해 일반인의 3.3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 환자의 자살률은 일반인의 2배에 달하고 남자가 여자보다 높으며, 암 진단 후 1년안에 목숨을 끊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고 한다.

이밖에 최근의 자살 추세로 고학력·전문직·관리직의 자살자 수, 고학력 자살자 비중, 이혼자 자살 비중이 늘었다. 특히 여성에게는 남편의 사별이, 남성에게는 이혼이 자살을 부르는 치명적인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금융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23개 생명보험사가 지난해에 지급한 자살자에 대한 생명보험금은 약 2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됐다. 보험금을 노린 ‘고의 자살’을 막기 위해 보험 가입 후 2년이란 유예기간을 두고 자살자에겐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데 2년이 지나자마자 자살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 때문에 당국은 보험금 면책(무보장) 기간을 3년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자신이 죽어 가족을 경제난으로부터 구하겠다는 것이 장렬한 죽음인가. 생명경시 풍조가 통탄스럽기 그지 없다.

이처럼 OECD 국가 최고의 자살률을 자랑하는 한국인의 자살에는 이유도 많고 핑계도 구구절절하다. 이 다양한 속절들을 해결하는 정답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자살예방교육을 강화하며, 자살 고위험자를 미리 가려내 주위에서 잘 돌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자살 유혹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말 한마디만 잘 해줘도, 옳고 그름을 떠나 상대방의 생각에 공감만 해줘도 목숨을 건져낼 수 있는데 기회를 놓치고 땅을 치며 후회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상담사 같은 ‘공감과 위로의 기술자’들이 필요하지만 이들을 찾아가는 것도 용기와 시간, 돈이 필요하다.

자살을 예방하려면 좋은 친구 많이 갖기, 잠 충분히 자기,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심신의 고달픔을 달래줄 취미생활 갖기 등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취미생활은 나만의 스트레스 도피처를 확보하란 것과 같은 뜻이다.

흔히 자살을 ‘반사회적 범죄’라고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 자행되는 지극히 자기파괴적이고 이기적인 행위라고 규정한다. 자살을 통해 주위 사람에게 반성과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복수의 의도가 분명히 숨겨져 있다. 자살은 살아 남은 자에게 고통과 슬픔을 남기므로 분명히 몹쓸 짓이다. 개인적 노력과 사회 정책을 통해 줄여나가야 마땅하다.

외국인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편협하고 근시안적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외국인들이 한국 현실을 건성 보고 진단한 게 객관성이 높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0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류스타 박용하의 자살을 거론하면서 “한국인 특유의 치열한 경쟁풍토가 높은 경제적 성취를 이뤄냈지만, 우울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우울증과 자살의 상호 연관성을 지목했다.

요즘 한국인은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한다. 남과 나를 물적·양적으로 자꾸 비교하려 든다. 또 자신을 과대평가한 나머지, 즉 체면을 중시한 나머지 마음과 물질을 과소비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속시원하게 털어놓지도 못한다. 이로 인해 맘에 병이 들고 경제적 곤경에 빠진다. 우울증이 만성화된 끝에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자살에 이른다는 게 외국인들의 시각이다. 실제 필요한 것보다 물질적으로 더 많이 가지려는 경쟁심이 나의 행복을 갉아먹고 우울증과 자살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요즘의 세태를 곰곰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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