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만으로 도용 판결은 추론에 기반” … 집행정지 신청 및 항소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이른바 ‘보톡스 전쟁’에서 메디톡스가 완승을 거뒀다. 법원은 대웅제약 ‘나보타주’의 제조에 들어가는 보툴리눔톡신 균주의 소유권이 메디톡스에 있음을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61민사부(권오석 부장판사)는 10일 “대웅제약의 나보타는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공정을 도용해 개발됐다”고 선고했다. 2017년 10월, 메디톡스가 대웅제약이 보툴리눔 균주 및 제조공정을 도용당했다고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한 지 5년 4개월 만이다.
이번 판결로 대웅제약은 나보타를 포함한 보툴리눔 독소 제제의 제조와 판매를 할 수 없다. 이미 생산된 독소 제제 역시 폐기해야 한다. 법원은 대웅에게 400억원의 손해 배상도 명령했다. 2017년 최초의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11억원이었으나, 이후 메디톡스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소송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사건이 장기화되자 청구액을 501억원으로 크게 늘린 바 있다. 판결 이후 대웅제약의 주가는 약 20% 급락했다.
주름제거 등 미용 목적과 사경증 등의 치료에 쓰이는 보툴리눔톡신은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 균 및 관련 종에 의해 생성되는 신경 독성 단백질을 희석해 의약품 용도로 개발한 것이다. 원래 독소는 강한 독성을 띠기 때문에 국가 간 균주의 이동은 엄격히 금지되며, 균주의 출처 및 제조 신고 등은 국가가 관리한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보툴리눔 균주와 생성공정을 훔쳤다고 주장해오고 있었으며, 대웅제약은 이에 맞서 국내 토양에서 균주를 얻었다는 입장이었다. 대웅은 소송 초반에는 ‘나보타주’의 출처가 대웅생명과학연구소 인근인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의 토양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미국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신고한 ‘주보’(나보타의 미국 브랜드명)의 균주가 홀에이 하이퍼라고 기재하면서 메디톡스와의 법정 다툼이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균주의 출처가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메디톡스가 제출한 여러 자료를 종합해 대웅제약의 균주가 메디톡스의 균주에서 유래했다고 판단했다. 국내 토양에서 분리, 동정했다는 주장은 여러 증거에 비춰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보툴리눔 독소 제제 생산에 사용한 제조공정은 대웅제약이 불법 취득한 것에 기초해 개발된 것이라고 봤다. 독자 개발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짧은 개발 기간, 개발 기록 등을 근거로 믿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업계에서는 메디톡스가 제출한 대웅제약 보툴리눔 균주의 염기서열 분석 자료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메디톡스는 2019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도 대웅제약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바 있다. 당시 ITC는 대웅제약에 보툴리눔 균주의 염기서열 정보를 제출하라고 명령했고, 대웅제약은 해당 자료를 제출했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당시 제출한 균주 염기서열 정보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고, 이번 판결에 중요한 근거가 됐다고 알고 있다”고 했다.
이번 판결로 대웅제약의 보톡스 사업에 급제동이 걸렸다. 대웅제약은 판결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하고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대웅제약은 나보타 및 보툴리눔 독소 제제를 판매할 수 없다.
지난해 나보타 국내 판매 매출은 약 1400억원 수준이다. 미국에서의 판매는 그대로 유지될 전망이다. 나보타 현지 유통사인 에볼루스가 나보타를 판매할 수 있도록 메디톡스와 합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나보타의 작년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209억원 대비 93.3% 증가한 404억원을 달성했다. 특히 나보타 수출은 142억원에서 32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0.2% 성장했다. 나보타는 미국 유럽연합 호주 싱가포르 등 62개국에서 허가받아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으나 정착 국내에서는 메디톡스와의 법적 다툼에 휘말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대웅제약은 이번 판결과 관련, 유전자 분석 결과만으로는 균주의 유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집행정지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10일 주장했다. 보툴리눔 균주는 산소를 싫어하는 혐기성 균이라 공기에 노출되는 경우 산소와의 접촉을 막기 위해 공기 주머니 같은 ‘포자’를 형성해 자기 주변을 감싸는 특징이 있다. 균주마다 포자를 형성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비교 검증하는 ‘포자 감정’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웅제약은 이번 판결과 관련, “법원이 유전자 분석만으로 유래 관계를 판단할 수 없다고 인정했으면서도 추론에 기반한 판결로 실체적 진실 규명에 한계를 보인 점이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는 2022년 2월 4일 서울중앙지검이 광범위한 수사 끝에 “압수수색, 디지털 포렌식, 증인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메디톡스 고유의 보툴리눔 균주와 제조기술이 대웅제약으로 유출됐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내린 무혐의 처분과 완전히 상반된 무리한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대웅 관계자는 “민사 소송 전 포자 검증을 진행한 결과 메디톡스 균주와 대웅제약 균주의 포자 형성이 다르게 나타났다”며 “재판부에서 명백한 오판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철저한 진실 규명을 통하여 항소심에서 오판을 다시 바로잡고, K-바이오의 글로벌 성공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두 회사는 2016년부터 보툴리눔톡신 균주의 오리진과 생산공정을 놓고 다투고 있다. 메디톡스는 퇴사한 모 임직원이 균주와 공정을 대웅에 넘겼다고 의심하는 반면 대웅은 절대 그런 일이 없고 자체 개발했다고 반박했다.
메디톡스는 검찰에 고소했으나 대웅의 강력한 방어에 막혀 기소조차 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자 미국 ITC 제소라는 묘안을 짜 대웅을 압박했다. 결국 ITC 승소를 통해 메디톡스는 쌓인 앙금을 풀었으나 ITC 판결은 일종의 행정행위로 정식 사법적 판단이 아니어서 대웅의 행보를 원천봉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 ITC 판결은 미국 내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한국에서는 이번처럼 법적 소송을 따로 해야 한다.
메디톡스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2021년도의 자사 제품에 대한 허가취소나 그 이전 일련의 제조중지명령 또는 허가취소 처분이 대웅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것이라는 의심도 갖고 있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 외에도 국내 보툴리눔톡신 매출 선두 기업인 휴젤과 미국 ITC에서 소송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3월 메디톡스가 소를 제기해 현재 ITC 조사 단계에 있다. 휴젤은 ‘레티보’라는 보툴리눔톡신 제품을 미국에서 허가받기 위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2021년 3월 생물학적제제승인신청(BLA)을 냈고, 2022년 3월 보완 서류 미비로 승인 거절 서한을 받았다. 같은 해 10월 6일 신청서류를 다시 제출해 올해 4월 승인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메디톡스는 나보타 등장 이전에 오리지널제품인 보톡스를 판매하는 애브비에 이어 2위를 차지했으나 나보타 등장으로 대웅에 밀렸고, 대웅과 메디톡스가 싸우는 사이에 휴젤이 국내 선두로 치고 나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