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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투어
백성이 찾은 단군신화의 기도처, 강원도 태백
  • 변영숙 여행작가
  • 등록 2022-08-17 10:42:41
  • 수정 2022-08-26 0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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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의 시원 ‘검룡소’,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 태백에서 봉화가는 길목의 ‘구문소’

강원도 태백시는 그 이름만으로 신령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태백이라는 지명은 단군신화에서 유래됐다. 태초에 하늘나라 하느님(환인)의 아들인 환웅천왕이 우리 민족의 터전을 잡은 곳이 바로 ‘태백산 신단수 아래’였다. 사람들은 태백산이 하늘과 바로 통하고 하늘로 올라가는 통로라고 생각했다. 신단수 아래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성스러운 산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신화의 태백산(원래 북한의 백두산)과 가장 비슷한 산을 찾아 ‘태백산’으로 부르고 옛 풍습대로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그런 곳 중 하나가 태백시 태백산(太白山 해발 1567m)이다. 201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태백산 정상에는 천제단(天祭壇)이 있어 매년 개천절인 10월 3일 천제를 올린다.


태백시는 태백산 외에도 한가운데 자리한 연화산(1171m)를 중심으로  함백산(1573m), 매봉산(1303m), 대덕산(1307m), 금대봉(1418m), 은대봉(1442m), 두타산(1353m), 구룡산(1345m), 면산(1245m), 백병산(1259m), 응봉산(998m) 등에 둘러싸여 있다. 원래는 삼척군 장성읍, 황지읍이었으나 1981년 7월 1일 인구 과밀 해소와 국토 균형 발전 정책에 따라 태백시로 승격됐다.


장성이라는 지명은 마을의 수호신을 의미하는 장승, 장생의 다른 이름으로 태백산 천제단으로 향하는 길목에 장생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황지는 낙동강의 발원지라는 연못이다.


한때 태백시는 지나가는 강아지도 만원짜리 지폐를 입에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호황을 구가했었다. 장성에 탄광촌이 생성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초반부터이다. 그전에는 화전을 일구고 콩이나 옥수수 등을 재배하던 곳이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로 인해 석탄산업이 호황을 누리자 태백에는 검은 돈이 몰렸다. 장성과 황지 인근에 크고 작은 석탄 광산이 마흔다섯 개나 있었다. 탄광 일대에서 영업하던 유흥업소가 500개가 넘었을 정도였다. 시로 승격한 1981년 도시 인구는 13만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태백시가 호황을 누렸던 시간은 불과 20여 년에 불과했다.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석탄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문을 닫는 탄광이 늘기 시작했다. 급기야 1989년 비경제적인 탄광은 정리한다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발표됐고 그와 동시에 태백, 정선, 영월, 삼척이 폐광 지역으로 결정됐다.


이후 이들 시군은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80년대 13만에 달했던 태백시 인구는 급격히 줄어 2022년 6월말 기준 4만85명에 불과하다. 마흔다섯 개에 달했던 탄광은 모두 폐광되고 장성광업소, 태백광업소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장성광업소마저 2024년 폐광될 예정이라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민족의 영산, 태백산


태백산은 한강(검룡소)와 낙동강(황지)의 발원지다. 민족의 영산이고 살집 두툼한 육산(肉山)이며 후덕하고 큰 밝음이 있는 산이다. 등산로는 가파르지 않고 편안하다.


조선시대 화가 이인상(1710∼1760)은 1735년 겨울, 사흘 동안 눈 쌓인 태백산에 오른 뒤 “태백산은 작은 흙이 쌓여 크게 봉우리를 이루었다. 그 깊이는 헤아릴 수 없고, 차차 높아져서 100리에 이른다. 결코 그 공덕을 드러내지 않으니, 마치 대인의 덕을 지닌 것과 같구나.”라고 말했다.


태백산 등산은 사길령매표소, 유일사매표소, 백단사매표소, 당골매표소, 석탄박물관 등에서 시작하는데 어디서든 오르는 데 2∼3시간, 내려오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


가장 무난한 게 유일사 코스다. 8분 능선을 따라 봄에 철쭉꽃이 만발하고 겨울엔 주목나무에 핀 눈꽃이 황홀한 평전(平田)을 지나 정상을 향하면 된다.  초중반이 약간 가파를 뿐 깔딱고개 같은 곳이 없다. 유일사 매표소가 이미 해발 890m이니 꼭대기 장군봉(1567m)까지는 677m만 더 올라가면 된다. 


태백산 천제단/출처 태백시청

태백산 정상 부근엔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천제단이 3곳이나 있다. 가운데 천왕단을 중심으로 그 북쪽에 장군단, 그 아래 하단이 있다. 천왕단이 가장 규모가 크다. 둘레 27.5m, 높이 2.4m, 좌우 폭 7.36m, 앞뒤 폭 8.26m. 보통 천왕단을 태백산천제단이라 부른다. 


천제단은 본래 신라의 왕이 천신, 즉 단군과 산신을 모셧던 것이다. 신라의 삼신오악 중 북악에 해당하는 게 태백산이었다. 불교국가 고려 땐 태백산신령을 주로 모셨다. 유교국가 조선은 전기에 산신을 뺀 단군을 천왕(天王)으로 모셨다. 하지만 임진왜란(1592년) 이후 조선 후기에는 천신(天神)으로 다시 격상시켰다. 국세가 기울자 단군할아버지의 도움이 절실했던 것이다. 


강화도 참성단(塹星壇)이 국가의 공식 제천의례 장소였다면 태백산 천제단은 지방의 벼슬아치나 백성들이 중심이 된 제천 장소였다. 구한말에는 평민 의병장 신돌석(1878∼1908)이 백마를 잡아 천제단에서 제사를 올렸고 동학 등 신흥종교들이 ‘민족의 종산(宗山)’으로 떠받들며 태백산 아래로 모여들었다. 태백산은 오늘날 단군신화와 민간신앙이 혼재된 성지로, 이곳저곳에 촛불을 켜고 소원을 바라는 치성 기도처가 많다.


태백산은 한반도 등뼈인 백두대간의 허리다. 참성단이 있는 강화도 마니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으로 ‘한반도의 명치’다. 허리나 명치나 다치면 편히 살 수 없다. 두 곳 모두 ‘한민족의 혈처(穴處)’다.


태백산 정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단종비각이 있다. 이 곳에서 망경사, 반재쉽터를 지나 백단사 매표소로 내려오는 길이 있다. 해발 1470m의 망경사(望鏡寺) 용정(龍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샘이라고 한다. 


한강의 시원지, 금대봉골 검룡소 


중앙고속도로 제천IC에서 35번 국도를 타고 10분 간 달리면 삼수령이 나온다. 삼수령(三水岺, 해발 920m)은 한강, 오십천(五十川, 삼척시와 태백시 경계인 백병산(白屛山, 1259m)에서 발원해 동해안으로 흐르는 하천), 낙동강 물이 갈라진다는 곳이다. 북으로 흐르면 한강, 남으로 흐르면 낙동강. 동으로 흐르면 오십천이 된다고 한다.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골의 검룡소는 한강의 시원지로 알려져 있다. /출처 문화재청

검룡소(儉龍沼)는 한강의 시원지로 알려져 있다.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창죽동) 금대봉골의 분출수로 대덕산과 함백산 사이에 있는 금대봉 자락의 800m 고지에 있는 소다. 실제는 금대봉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검룡소보다는 1.5km 상류에 있는 제당굼샘(제당궁샘)이 한강의 시원이지만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 때문에 검룡소를 시원지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제당궁샘은 졸졸 흘러나오는 샘물인 반면 검룡소는 석회암반을 뚫고 하루 2000t가량의 지하수가 웅장하게 솟아나와 용틀임하며 바위를 적시니 가히 적장자라 아니할 수 없다. 9도의 냉천수가 사시사철 나오고 작은 폭포를 이룬다.  깊이 3m의 검룡소에 흘러나온 물이 1300리를 돌고 돌아 한반도를 적시고 곡식을 살찌운다는 게 경외스럽다. 


검룡소에는 서해바다에 살던 이무기가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최상류인 이 곳에 살았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무기가 검룡소에 들어가려고 몸부림을 친 흔적이 폭포라는 얘기도 전해온다. 새벽녘 물안개가 피어오를 때 소가 빠져 죽자 마을주민이 검룡소를 돌로 메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지금의 검룡소는 1989년 주변 재정화 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한강의 발원지가 평창 오대산의 우통수라고 알려졌으나 국립지리원의 조사 결과 우통수와 검룡소 물줄기의 합류지점인 강원도 정선군 나전(羅田)삼거리에서 측정해보니 검룡소 물줄기가 31km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1987년 이후 국립지리원은 검룡소 물줄기를 한강의 시원으로 인정했다. 


낙동강의 시원지, 황지연못


태백 도심의 황지 연못/ 변영숙

모든 유기체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며 발전하듯 도시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데 태백이라는 도시에 대한 고정관념은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듯하다. 1960년대 이후 생성된 ‘탄광도시’라는 관념은 2020년대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필자에게 오래된 상품의 태그처럼 따라다닌다. 그래서 태백시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태백시에 들어서는 순간 그동안의 관념들이 얼마나 낡고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 데 수 초도 걸리지 않았다. 


길동무가 되어준 수려한 풍광의 산세와 맑은 공기는 얼토당토하지 않게 ‘알프스 기슭의 아름다운 관광 산악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그 느낌은 황지동의 황지(黃池)연못에 오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제일 먼저 찾아 나선 황지연못은 낙동강의 발원지란 거대한 수식어에 비해 너무도 소박했다. 차를 가지고 갈까 하는 고민조차도 필요 없을 정도로 숙소에서 지척이었다. 태백역이나 버스터미널에서도 5분 거리다.


크고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을 중심으로 조성된 공원은 도심의 근린공원보다도 규모가 작다. 주민들과 관광객은 공원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 대화하고, 아이들은 황지천에서 물놀이를 한다. 너무도 평화로운 시골마을의 저녁나절 풍경이다.


황지 입구에 세워진 ‘낙동강 천삼백리 예서부터 시작되다.’라고 쓰인 거석만이 이곳이 낙동강의 발원지임을 알리고 있다.


황지는 상지, 중지, 하지 등 크기가 제각기 다른 연못 3개로 구성돼 있다. 가장 큰 상지의 경우 둘레 100미터, 중지의 경우 50m, 하지는 약 30m 남짓의 아담한 연못이다.


상지의 남쪽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수굴이 있고, 이 수굴에서는 하루 5000t 이상의 맑고 차가운 물이 솟아난다. 이 물은 황지천을 이루고 낙동강과 합류하여 경상남북도와 부산을 거쳐 남해로 흘러든다.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등 옛 문헌에 황지가 낙동강의 근원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동국여지승람에는 “황지가 낙동강의 근원지로서 관아에서 제전을 두어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올렸다.”라는 기록이 있다. 매년 7월에 낙동강 발원제가 열린다.


황지 연못에는 ‘황부자의 전설’이 전한다


마을에 매우 인색하고 괴팍한 황씨 성을 가진 부자가 있었다. 하루는 한 노승이 황부자 집을 찾아와 시주를 청했다. 황부자는 시주 대신 쇠똥을 주었다. 이를 본 황부자의 며느리는 노승에게 대신 사죄하고 몸에 묻은 쇠똥을 닦아 준 후 쌀 한 바가지를 시주했다.


노승은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것이니 살고 싶거든 나를 따라 오시오. 그러나 절대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되오.”라고 일렀다. 며느리는 노승을 따라나섰다. 이들이 삼척군 도계읍 구사리에 이르렀을 때 뇌성벽력이 치며 황부자의 집이 땅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그런데 며느리가 노승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황부자는 이무기로 변했고 며느리는 바위로 변해버렸다.


이후 황부자의 집터는 황지가 되었고 며느리는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에 미륵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연못의 한 귀퉁이에 황부자 집터라는 푯말이 보인다.


황지천과 인근의 황지자유시장/ 변영숙

황지연못 옆으로는 복원된 황지천이 흐르고 천변의 태백 중앙로 상점가에서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황부자 며느리 야시장’과 프리마켓이 열린다. 청년들이 운영하는 야시장에서 태백시 물닭갈비, 수제 버거, 태백 한우 등을 맛볼 수 있다.


바람을 타고 오는 음식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소리와 파도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 여름밤을 기분 좋게 수놓는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해발 900m의 고원에서 울려 퍼지는 바이올린 선율은 마법처럼 태백을 천상의 도시로 만들어 놓는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에도 가을처럼 선선하다.


구문소, 한반도 고생대 지질 변화의 타임머신 


태백 도심에서 경상북도 봉화군으로 가는 31번 국도변 구문소동에는 구문소(求門沼)라는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신비한 지형이 있다. 구문소는 ’구멍’, ‘굴’의 고어인 ‘구무’와 늪을 뜻하는 ‘소’가 합해진 말로 산을 뚫고 흐르는 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강은 산을 넘을 수 없다고 했지만 구문소는 강이 산을 뚫고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진귀한 지형이 아닐 수 없다.


구문소는 이른바 ‘도강산맥(渡江山脈)’인데, 황지에서 발원한 물이 흐르며 석회암을 녹여내고 마침내 바위까지 뚫은 것이다. 황지천과 철암천이 구문소의 단층선을 따라 침식작용을 하다가 지하에 생성되어 있던 동굴과 관통돼 황지천이 흘러들면서 기어히 산맥을 뚫고 흐르는 것이다.


구문소 위쪽의 삼형제 폭포/ 변영숙

높이 20~30m, 폭 30m의 거대한 무지개 모양의 석회암으로 이뤄진 구문소의 풍경이 이채롭다. 구문소 위의 크고 작은 삼형제 폭포는 으르렁대며 물살을 쏟아낸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고문헌에는 구멍이 뚫린 하천이라는 뜻의 ‘천천(穿川)’으로 기록돼 있으며, 강이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뚫은 내)’라고도 부른다.


구문소 남쪽에는 자개문이라는 거대한 바위문이 서 있는데 이 길을 통해 봉화, 영주 등을 오갔다고 한다.


황지천이 머물렀다 가는 구문소에는 효자 엄씨의 용궁 전설이 전한다. 예언서 ‘정감록’에는 이상향의 마을로 들어가는 석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밖에 중국 하나라 우왕이 단군에게 치수를 배우면서 구문소의 산을 칼로 찔렀다는 전설, 황지천의 백룡과 철암천의 청룡이 낙동강 지배권을 놓고 다투다가 백룡이 기습하면서 바우를 뚫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암벽을 뚫어놓은 도로가 나지 않았을 시절에는 구문소는 신비의 땅이자, 신선들이 사는 무릉도원으로 여겨졌다.


구문소 위쪽으로는 구문소공원과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등이 조성돼 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석고혼, 생혼 구조, 습곡 구조 등 황지천변의 다양한 지질 유형을 관찰할 수 있다.


구문소 일대는 하부고생대에서 상부고생대의 부정합 관계를 관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석회암 층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퇴적 구조와 삼엽충 등 고생대 화석들이 잘 보존돼 있다. 한반도 고생대(약 5억~3억 년 전)의 퇴적 환경과 생물상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지역이다. 이러한 가치가 인정돼 구문소는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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